[사람 사는 이야기-심명희]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에서 가방을 든 아저씨가 탔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가방을 내려놓고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칫솔을 꺼낸다.

“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 나선 이유는 가시는 걸음에 좋은 물건 하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자아~, 플라스틱 머리에 솔이 달려있습니다. 이게 무엇일까~여? 치잇솔입니다. 이걸 뭐 할라고 가지고 나왔을까여? 팔려고 나왔습니다. 처~어넌입니다. 뒷면 돌려 보겠습니다. 영어 써 있습니다. 마데인 코리아! 이게 무슨 뜻일까여? 수출했다는 겁니다. 수출이 잘될까여? 망했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에게 하나씩 돌려 보겠습니다.”

그는 칫솔을 사람들 무릎위에 돌리기 시작한다. 다 돌리고 나서 “자 여러분 여기서 제가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여? 여러분도 궁금하지~여? 저도 궁금합니다. 잠시 후에 알려드립니다.” 나도 모르게 잔뜩 궁금해졌다. “자 여러분 칫솔은 4개 팔았습니다. 얼마나 벌었을까여? 4천원 벌었습니다. 제가 실망했을까여? 안 했을까여? 예 실망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까여? 아니지여. 다음 칸 갑니다!” 그는 가방을 들고 유유히 다음 칸으로 사라졌다. 승객들은 뒤집어졌다.

두어달후 지하철 2호선 합정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는데 낯익은 아저씨가 옆에 서 있다. 신도림역에서 칫솔을 팔던 그 아저씨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아저씨에게 눈인사를 했다. 그런데 이 아저씨 모자를 벗더니 “그때...”인사를 꾸벅한다.

▲ Vincent van Gogh, 1853-1890, 착한 사마리아사람)

곽씨가 노숙인 무료진료소를 찾은 것은 4년전 여름이다. “넘어져서 찢어졌다”며 약제실 문앞에 서서 소독약을 좀 달라고 했다. 오른쪽 눈썹 위에 파스를 붙이고 모자를 푹 눌러썼는데, 얼굴 전체가 퉁퉁 부어올라 있어서 심상치 않아보였다.

진료실에서 모자를 벗고 파스를 떼어내자 모두 깜짝 놀랐다. 길이 5-6cm쯤 되는 상처가 이불 꿰매는 실로 듬성듬성 꿰매져 있었다. 상처에서 고름이 흘러나오고 서툴게 봉합한 곳이 터져 여러 차례 덧 궤맨 흔적이 남아있었다. 더운 날씨 탓에 썩어 들어가는 듯 했다.

“누가 이런짓을!” 기가 막혀 따져 묻자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가 꿰맸다”고 한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 미끄러져 계단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쳐 오른쪽 눈썹 위가 찢어지면서 피가 반공기쯤 쏟아졌다. 순간 아픈 것보다 병원비에 대한 공포가 먼저 그를 사로잡았다. 병원 응급실을 찾는 대신 곽씨는 쪽방에 사는 김씨에게 면도칼과 바늘, 실을 빌렸다.

너덜너덜해진 살을 도려낸 뒤 생살을 더듬거리며 스스로 여섯 바늘을 궤맨 뒤 상처위에 파스를 붙였다. “손등을 쪼매 다쳐서 갔는데 8만원을 냈거든요. 어떻게 병원에 가요?” 상처가 아물길 기다렸지만 실이 녹는 바람에 상처가 자꾸 터졌다. 이틀동안 두 번이나 터진 부위를 다시 꿰맸는데도 고름만 줄줄 나오자 곽씨는 물어물어 무료진료소를 찾아왔다.

곽씨는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나은 보수를 찾아 고향 대구를 떠나 상경했을 때만 해도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내와 두 아들을 대구에 남겨 둔 채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8평짜리 쪽방에 터를 잡은 그는 밥과 김치로 끼니를 때우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노동판에서 번 돈은 두 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 인력소개업자가 건설업체로부터 받아둔 근로자들의 임금을 들고 도망친 뒤에는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일을 주던 소개업자가 도망치자 밥줄이 끊겼다.

임금을 떼이고 빚이 늘면서 쪽방에서 나와 거리에 나 앉았다. 가족에게 면목이 없었다. 소식을 끊었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허탕치고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자 무료급식소에서 얻은 한 끼를 반만 먹고 남은 반을 봉투에 남겨와 또 한끼를 때웠다. 외환위기와 불황으로 날품팔이도 못 구했다. 기댈 데는 무료급식소뿐인 ‘막장인생’이었다.

그날 곽씨는 상처 속에 든 썩은 피고름을 끍어낸 후 총총히 사라졌다. 을지로 역에서 밥차가 오는 시간을 맞춰야 한다고 도망치듯 나갔다. 치료해야 하니까 꼭 오라고 누누이 당부했지만 그 후 감감 무소식이었다.

을지로입구 역을 지날 때마다 시멘트 바닥에 종이박스로 집(?)을 짓고 잠을 청하는 노숙인들 속에서 곽씨를 찾는 버릇이 생겼다. 상처가 덧나지 않았는지, 실밥은 풀었는지, 큰 탈이 나지 않았는지 걱정이 돼서다. 쪼그리고 앉아 후루룩 후루룩 라면을 삼키는 노숙인들이 모두 곽씨로 보인다.

살아있으면 만난다는 기다림 끝에서 7년 만에 곽씨를 지하철역에서 만났다. 그의 이마 위에는 7년 전의 상처가 남아있다. 한때 절망을 상징하던 그 상처는 ‘다음칸 갑니다’로 희망이라는 비밀코드를 새기고 돌아왔다. 곽씨의 아물고 굳은 상처에서 내가 읽는 것은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서 8,24-25)라는 바오로사도의 고백이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2000년 4월부터 2009년 9월까지 요셉의원에서 상근 봉사자로 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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