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을 보고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감독, 2010
여러분이 지금까지 한 것은 정확하고 분명한 문제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답을 찾는 거였어요.
하지만 이젠 완전히 다른 모험을 시작할 것입니다.
아주 어려운 주제를 다룰 것이며
그건 항상 또 다른 어려운 문제를 낳게 될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듣게 될 것입니다.
왜 가망 없는 일을 하느냐고.
여러분에겐 자신을 옹호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면 너무나 복잡한 얘기니까요
순수 수학... 고독의 땅에 잘 왔습니다.
- 니브(잔느의 교수)가 수업 시작 전에 한 말 

영화의 모든 장면이 끝이 나고 음악이 멈추고 자막이 다 올라가고 불이 켜진다. 사람들은 서서히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그러고도 한참을 움직이지도 않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갔을 때 쯤 정신이 돌아온 듯 주섬주섬 짐을 챙기면서도 멈칫하며 생각에 잠겼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처음 꺼낸 한마디는 “레바논에 못가겠다”라는 말이었고 들려온 말은 “지금 (비행기) 취소하면 수수료는 얼마 나올까?”였다. 조용히 극장을 빠져나와 밥이라도 함께 먹자며 식당을 찾으면서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레바논에서 열리는 집속탄금지협약 두 번째 당사국회의에 참가하기로 한 세 명이 만났을 때의 일이다.

너는 진실 앞에 침묵할 수밖에 없을거야. 알아.
- 나왈 마르완


영화를 본 후에 계속 이어지는 질문들로 이틀 동안은 꿈자리마저 뒤숭숭했다. 과연 평화가 가능할까? 내가 뭐라고 전쟁과 폭력의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평화니 화해니 떠들어댈 수가 있을까? 이 원고를 쓰겠다고 결심한 다음날 나는 극심한 복통으로 한의원을 찾았다. 아픈 곳을 손으로 짚어주니 한의사는 내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아픈거라면서 최근에 무슨 일 있었냐고 묻는다.

내과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위염이라고 한다. 사랑니를 뽑았고 그러느라 한시간 동안 턱이 빠진 채로 있었고, 그래서 먹고픈 것도 못먹고 좋아하는 술도 못먹고, 그리고 구럼비 바위가 파괴되는 사진을 봤고.. 심지어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청탁받고 다시 이 영화를 생생하게 떠올렸다. 같이 사는 친구에게 <그을린 사랑>에 대한 원고를 써야한다고 하니 바로 얼굴을 찡그리며 그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을 수 있겠다고 한다.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복통이 명치 쪽으로 움직인다.

넌 못 알아볼거야. 아주 아름답거든.
- 나왈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어설프게 잠들었다가 깨서는 카타르의 도하에서 환승을 위해 내렸다. 공항 안에 기도실이 있다. 여기는 중동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쓴 여인네들이 화장품 진열장에서 이러저러한 화장품을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구경 중인 낯선 풍경. 베이루트행 비행기를 타려면 공항건물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했다. 그 버스에서 예쁘게 생긴 젊은 여자가 말을 건다. 레바논의 트리폴리 출신인데 몇 년 전에 호주로 이민가서 살다가 휴가차 가족과 함께 가는 중이란다. 이름은 나왈이라고 했다.

이름을 듣고는 속으로 쿵!하고 뭔가 내려앉았다. 나왈은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다. ‘영어로 그을린 사랑의 원제가 뭐더라?’ 하는 사이 버스가 도착했고, 우리는 눈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부모로 보이는 나이든 남자분과 히잡을 쓴 여성분이 있었다. 나왈은 히잡을 쓰지 않았다. 물어볼 영어실력이 될 리가 없다. 다만 다시 한 번 영화를 떠올리며 작은 한숨을 내쉰다.

만약 나왈 마르완의 딸이라면 여기서 환영 못받으니까 돌아가시래요.
- 사미아


영화는 한 여인의 유언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이 영화를 볼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영화를 본다면 반전에는 초점을 두지 말아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반전(反轉)이 아니라 반전(反戰)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쌍둥이에게 쌍둥이의 아버지와 자신의 큰아들을 찾아 편지를 전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어머니의 황당한 장례식 주문에 화가 난 시몬과 달리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잔느는 어머니의 고향으로 향한다.

낯선 이방인을 반기고 외국어로 인사를 하며 재밌어하던 어머니의 고향 동네 아줌마들은 ‘나왈 마르완’의 이름과 사진을 보고는 표정이 변한다. 전쟁이나 내전이나 분쟁의 고통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말하기 힘들다. 나왈도 자신이 알게 된 진실 앞에 입을 다물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켜보는 사람들, 다른 세대의 사람들의 숙명인 거리가 오히려 진실을 보는 데는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자신들의 겪은 이야기 속에는 자신들의 평가가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샤르벨 삼촌은 말과 책이 평화를 가져올 거라 생각했어요.
나도 그랬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걸 배웠죠.
- 나왈
 


비행기에서 내 좌석은 오른쪽 창가자리였다. 높은 곳에서 땅을 구경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러면 뭔가 초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집착들이 내려놓아진다. 땅에서는 심각한 일들이 고도가 높아지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아무렇지도 않아진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에서부터는 도시와 길들 그리고 나머지는 사막이다.

아무 것도 없는 황토색의 땅. 길이 보이다가도 황토색으로 먼지를 뒤집어썼는지 지워진 부분도 보인다. 사막에서는 유일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책에서 읽은 말들을 떠올린다. 그러다가 푸른 빛이 돌기 시작하더니 바위로 된 지형이 바로 아래에 펼쳐진다. 가파르게 멀어지는 땅. 곳곳에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도시가 펼쳐진다. 베이루트다.

도하에서 만난 나왈이 알려준 대로 레바논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해오던 지역으로 고대 이집트 사원과 로마시대의 유적과 십자군 요새가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비블로스에 가보려고 했으나 중간에 포기했다. 시내 중심가에는 로마시대 목욕탕 유적지가 있다고 했다. 폭격을 맞은 자리를 치우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근처에는 시계탑을 중심으로 정부청사 같은 건물들과 이웃한 블록에는 명품 쇼핑몰들이 자리잡고 그 뒤편으로 공사 중인 건물들이 보였다. 그리고 곳곳에 총탄과 폭격의 흔적이 보였다.

폭격을 맞은 채로 쓰러져가는 빈 건물들도 있었다. 그리고 물가는 예상보다 더 비싸고 수도인 베이루트에선 더했다. 한참 개발 중인 명품 쇼핑몰과 폭격으로 방치된 건물들만 눈에 들어온 건 아니었다. 아랍어로 쓰인 성경,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히잡을 쓴 채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 도심 한가운데 있던 바리케이트와 총을 들고 지키고 선 군인, 그리고 총탄자국이 남아있던 교회의 모습이 레바논에 도착한 첫날 본 것이었다. 낯선 것 투성이었다.

터무니가 없으면 당연히 질문을 해서 알아봐야지.
안 그러면 마음이 안 편할거야.
- 니브
 

3명이 하루 60달러의 방을 빌렸다. 그나마 저렴하게 어렵게 구한 방이다. 침대 3개가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낮에는 정전이 되었다. 무선 인터넷이 된다는 로비는 TV소리와 담배냄새와 아랍어로 떠들어대는 수다와 와이파이 접속이 자주 끊겨 괴로웠다.

회의장은 횡단보도가 없는 거리를 두 번 건너는 곳에 위치한 아주 비싼 호텔이었다. 회의 동안 일기를 쓰고 엽서를 쓰고 가끔 사진을 찍고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는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다. 통역에 대한 배려가 없는 회의였고, 같이 간 친구들은 하루하루 소식을 전하고 언론에 보낼 글을 쓰느라 바빴다. 이곳에 내가 왜 온 걸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답답해하며 읽을 수 있는 자료들을 조금씩 읽기도 했다. 그러다가 집속탄의 폭격 후 오염되어 제거작업이 진행 중인 나바티예 지역으로 갔을 때 받았던 동화책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어린이들에게 집속탄의 위험을 알리는 내용이었는데, 나의 조카에게 일상적으로 산과 들로 다닐 때 조심하라는 경고로 가득찬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 충격으로 말도 안되는 일상이 현실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기 위해, 그리고 희망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잔느가 홀로 어머니의 고향에 찾아가 어머니가 겪은 일들을 알아내고 어머니의 유언이 어떤 뜻인지 알아내었던 것처럼.

네 자신을 위로해라. 그 무엇도 함께하는 것만큼 아름답지 못하니까.
넌 사랑으로 태어났단다. 함께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건 없단다.
- 나왈 

영화의 시작은 라디오헤드의 노래로 시작된다. 그리고 무장한 사람들에게 이끌려 줄을 서는 겁에 질린 소년들이 나온다. 두려움이 분노로 바뀌는 머리 깎이는 소년은 후에 편지를 받는다. 그 소년은 폭격 맞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소년들을 저격하는 전사가 되고 그리고 다른 편이 되어 잔혹한 일을 하기도 한다. 그 소년은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편지를 받은 후 그 아이의 남은 삶은 어떻게 변할까? 살아갈 수 있을까? 혹은 살아오는 동안 그 사람은 어떻게 지냈을까? 이런 질문을 받을 만큼 그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절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아. 여전히 자취들이 남아있지.
- 메 나다드
 


최근 썩 튼튼하진 않아도 나름 건강하고 병원갈 일이 없을 것 같은 몸에 이상이 생기고, 심지어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마음도 약해져서 몸의 통증에 쉽사리 휘둘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얻게 된 통찰은 고통 역시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바라보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다른 것은 희망이었다. 분노의 끈을 끊겠다는 희망이었고 그것은 다짐이었다.

의사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이라며 무슨 일을 하냐며 물어봤다. 그래. 어쩌면 하려던 일을 제대로 안해서 받게 된 스트레스였을지도 모른다. 그 질문을 받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구럼비가 파괴되고 있는 사진이었다. 주변에서는 간혹 왜 사회의 아픈 곳에 유독 관심을 가지고 삶을 즐기지 않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질문당하는 당시에는 나에 대한 그들의 평가가 불편했으나 조금 지난 지금은 그들의 애정도 함께 보인다. 하지만 나는 나의 다짐을 어길 생각이 없다.

이 세상에 만연한 고통들은 어쩌면 내가 겪을 수도 있을만한 일들이다. 얼마나 참혹한지 예상을 뛰어넘는 비참함에 내가 버틸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다만 그런 순간이 왔을 때에도 믿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나의 고통을 기억해주고 이것을 중단하거나 없애려는 마음을 나누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끝끝내 갖고 싶은 것이다.

이놈의 나라는 전쟁이 끊이질 않아요
복잡한 얘기는 아니죠
노아 시대에 공증인이 있었다면 이렇지 않았겠죠
원래 계약서만 찾으면 되니까
이건 당신 것, 저것 당신 것 다 거기 나올테고
좀 더 얘길 해보면 다들 만족했을 겁니다.
- 레바논 공증인 메 마다드
 

충격적인 이 이야기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팔레스타인에 살던 와합이 고향에서 쫓겨나 레바논에서 난민으로 살아간 것일까? 혹은 기독교도들과 난민을 지원하는 무슬림들의 분쟁? 이스라엘의 건국 때문일까? 홀로코스트 때문일까? 디아스포라 때문일까? 공증인이 없었기 때문일까? 나왈의 말대로 공포에서 시작되었을까? 혹은 대단한 러브스토리에서 시작되었을까? 어쩌면 마지막 질문이 이 영화의 충격을 감동으로 전환시키는 답이 될런지도 모른다.

이걸 알아야 돼. 당시엔 보복에 보복이 이어졌어.
그게 서로의 거침없는 논리에 부합됐으니까
- 삼세딘
 

함께한다는 건 정말로 멋진 일일까? 본인은 말을 잃고 생명을 잃어가면서 자신이 생명을 준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니면 어쩔 것인가? 분노의 끈을 가지고 있어봤자 더 불행해지는 건 나뿐이다. 모든 건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것 역시 선택이다. 분노와 복수를 선택할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와 화해를 선택할 것인지. 증오보다 사랑이 크면 평화는 가능하다. 그리고 아마도 인류 역사상 불행한 길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생존하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그런 선택 때문일 것이다.

너희 이야기는 이 약속으로 시작될 거라 생각해.
분노의 끈을 끊겠다는 약속으로.
- 나왈


아침 (무기제로 + achimgir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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