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이찬수]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자유 없이 일방적으로 통과되었다. 불균형적인 산업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채 ‘자유롭게 무역하자’는 협정 자체가 모순이었는데, 자유를 저당 잡아놓고는 자유 협정을 체결하는 모순이라니,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 자괴감만 커진다.

자유가 무엇이던가. 자유는 “스스로(自) 말미암음(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행위의 원리와 원인을 자신 안에 두는 상태를 자유로 규정했다. 자유는 타자에 의한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다. 자신 안에 있는 원리에 따라 자기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 즉 타자의 의존성으로부터 벗어난 “~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자유이다.

물론 다른 차원의 자유도 있다. 하나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타자와의 관계 안에 스스로를 구속시킬 줄 아는 자유, 즉 “~으로의 자유”(freedom to)이다. 전자가 소극적, 개인 중심의 자유라면, 후자는 적극적, 타자 지향의 자유이다. “~으로의 자유”란 타자를 억압하는 자유가 아니라, 자신의 자유에 기초하면서 타자의 자유를 신장하기 위한 자유이다. 대단히 성숙한 자유이다.

▲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단독처리한 22일 오후 본회의장 전광판에 재석 170인, 찬성 151인, 기권 12인이라고 적힌 표결 결과가 표시돼 있다.(사진출처-한겨레)

사실 이 두 자유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적극적 자유의 차원에서 보면 이 둘은 단계적 혹은 연속적이다. 인간이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한, 도리어 그 어떤 것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안에 자신을 구속시킬 수 있는 능력도 동시에 지니기 때문이다. “~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으로의 자유”도 불가능하다. 당연히 오늘날 성숙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것은 소극적 자유를 소화하고 넘어 적극적 자유를 구현하는 것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한다:

적극적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떠남’이 아니라 ‘무엇으로의 향함’이다. 적극적 자유는 무엇을 위해 자유로움, 무엇을 위해 열려있음, 따라서 무엇을 위해 자기를 열어놓음, 무엇을 통해 자기 자신이 규정되도록 함, 스스로 무엇에 헌신함이다.

소극적 자유를 발판으로 하되, 타자를 위해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할 줄 아는 적극적 자유의 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오늘날 시민사회의 기본이자 목표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상황은 반대로 가는 것 같다. 얼핏 보면 자유가 확대되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때의 자유라는 것이 주로 개인적, 자기집단 중심적 자유이다 보니, 그것은 늘 그리고 결국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을 전제로 한다. 희생은 숨기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자기중심적 욕망을 확대 재생산시킨다. 그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가 확장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근대 사회적 시스템의 필연성이기도 하다.

중세 계급사회가 타파되고 근대 시민사회로 진입하게 된 것은 시민 계급(부르조아)이 탄생하고, 그 자유가 확대되어간 과정이자 결과이다. 하지만 그 자유를 추동하는 힘이 대량생산을 통한 자본 축적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그런 자유의 확대가 환영해야만 할 일은 아니다. 근대 문명의 기초는 자본의 확대가 다지고 만들어놓았다. 이런 기초 위에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추동하는 그 엄청난 힘은 자본이다. 그리고 자본을 소비하려는 욕망이다. 자본을 좌우하는 권력이 개인적 혹은 자기 집단 중심적 욕망으로서의 자유를 추동하는 힘이 되었다. 자유라는 이름의 억압이 거의 모든 곳에서 횡행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반기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른바 ‘자유무역’을 환영하는 이들도 제법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일수록 “~으로의 자유”를 곱씹을 수 있는 기회가 잦았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공연한 희망일 것이다. 애당초 들리지 않는 구조 속에 안주해 있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희망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자유라는 감옥의 빗장을 여는 일이 이 시대 진정한 자유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찬수 (강남대 교수)

<기사제공/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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