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안수찬]

최루탄은 1980년대 초 한국에 상륙했다. 그 시기가 1981년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80년 광주항쟁에 놀란 전두환 정권이 시위진압용으로 수입했다. 이후 수많은 집회·시위 현장에 살포됐다. 80년대 한국 주요 도시의 대기는 차량 배기가스가 아니라 최루탄 가스로 오염됐다. 최루탄의 주 성분은 클로로벤즈알말로노나이트릴(C10H5ClN2)이다. 이것의 화학식을 풀어 그 성분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내 능력 너머의 일이다.

그것은 상온에서 고체(가루)로 존재하는데, 가루 상태의 그것을 뿌려봐야 바람에 날려 목표물 조준에 효과가 없다. 그래서 용매제인 디클로로메탄에 녹인 뒤 기체(근접거리에선 액체) 형태로 방사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CS 가스라는 간단한 이름도 생겼다. CS는 1928년 이를 개발한 미국인 벤 코손(Corson)·로저 스토턴(Stoughton)의 성씨 첫 글자다.

CS 가스는 살상용이 확실히 아니다. 최루액·최루가스·최루가루에 노출됐다 하여 현장에서 죽지는 않는다. (곧바로 죽음에 이르진 않지만, 그 성분이 치명적 발암물질이라는 분석은 오래 전에 나와 있다. 그 즉각적 고통이 너무 강력하므로 ‘언젠가 이것 때문에 암에 걸릴지도 몰라’ 따위의 걱정을 하는 이가 드물었을 뿐이다.) 다만 그것은 인간의 오감을 마비시킨다.

우선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눈을 뜰 수가 없다. 눈을 떠도 아프고 눈을 감아도 아프다. ‘아프다’는 말로 그 고통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코와 목에 대바늘 수백 개를 집어 넣어 함부로 쑤셔대는 고통과 함께 폐 전체를 먹물로 채운 듯 숨을 쉴 수가 없다. 노출된 피부 전체, 즉 얼굴·목·팔·다리가 불에 데인 듯 따갑고 뜨겁다. 최루탄에 노출된 손으로 사타구니라도 만지면 종족 번식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최루탄은 사람을 완전히 무릎 꿇린다. 개가 되라면 기꺼이 개가 된다.

▲ 한미FTA 비준안이 날치기로 통과되자 분노한 시민들이 당일 저녁 명동일대에 집결해 시위에 참여했다.

최루탄을 겪어본 사람들은 이상의 설명이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최루탄은 ‘하나의 최루탄’이 아니라 ‘일련의 폭력체계’로 구성된다. 우선 그것은 실제로 ‘탄환’의 구실을 한다. 경찰은 45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지 않고, 정면을 조준해 최루탄을 발사한다. 그것을 맞으면 최루 가스와 상관없이 그 충격 때문에 죽는다. 1987년 연세대생 이한열이 그렇게 죽었다. 최루탄이 등장하면, ‘직격탄’을 피해야 한다는 공포부터 시작된다. 설령 그것이 ‘곡사포’의 형태로 발사된다 해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 탄환은 중력가속도의 레일을 따라 언제든지 시위대의 정수리를 타격할 수 있다.

최루가스·최루액·최루가루에 노출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무기력이 곧 죽음은 아니다. 그러나 ‘백골단’으로 불리던 무장경찰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은빛 투구에 날렵한 청재킷을 입은 그들은 군화와 곤봉과 주먹으로 시위대를 무차별 가격한다. 태권도·유도·합기도 등으로 단련된 그들의 육체는 치명적 흉기다. 그들에게 얻어맞다가 죽을 수 있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와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그렇게 죽었다.

그들의 모진 매질에서 살아남았다 해도 체포·구금·구속의 공포가 남아 있다. 최루탄을 마시고 널브러져 시위 현장에서 잡히면 그들의 마음대로(그들은 ‘법대로’라고 주장하지만) 인신을 요리한다. 군대로 끌려가거나 몇 년씩 감옥에 갇히는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정신, 양심, 육신에 대한 한시적 사망선고다. 최루탄을 겪어본 사람들은 이러한 일련의 공포 체계를 종합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탄환’이 아니라 ‘거대하고 무자비하고 체계적인 폭력’이다.

과거 시위현장에 단골로 등장했던 것은 ‘지랄탄’이다. ‘페퍼포그’(Pepper Fog)로 불리는 장갑차의 정수리에서 다연발로 발사돼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지던 ‘지랄탄’은 먼 거리에서 시위대를 무력화시키는 경찰의 무기였다. 일단 땅에 떨어지면 반경 수십 미터를 미친x 지랄하듯 요동치며 노란 최루가스를 끝없이 게워냈다. 아스팔트 위를 쏜살같이, 그러나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튀어다니는 그것에 맞아 발목이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그걸 손으로 잡아 전경에 되던지려다가 뜨거운 열기에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지랄탄이 쏟아지면 그것으로 그날의 시위는 끝장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더 공포스러워 했던 것은 ‘사과탄’이었다. 한 주먹에 잡히는 사과탄은 오직 가까운 거리에서만 사용됐다. 80·90년대의 시위대를 가까운 거리에서 경찰이 진압할 일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들은 시위대를 ‘토끼몰이’ 방식으로 거리 구석에 몰아놓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사과탄을 툭툭 까넣었다. 땅에 엎드려 개처럼 기면서 두 손으로 머리와 목덜미를 감싸 쥐는 것이 시위대가 취할 수 있는 방어의 전부였다. 백골단은 우리의 어깨와 허리와 머리를 지근지근 군화발로 밟으며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듯 툭, 툭, 툭 끝도 없이 사과탄을 까서 아비규환의 틈바구니에 굴려 넣었다. 눈에 파편이 박히고, 고막이 터지고, 얼굴에 화상을 입는 이들이 있었으나, 심지어 죽어 나가기도 하는 시절에 그들의 희생은 사람들의 기억에도 남지 않았다.

대학 시절, 나는 어떤 논쟁에 격렬히 가담한 적이 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쇠파이프·화염병 등을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논리 싸움이 붙었다. 나는 ‘비폭력투쟁’은 말도 안 된다는 쪽이었다. 확실히 그 시절의 나는 피가 뜨겁다 못해 물불을 가리지 않아 무모했다. 집회·시위의 목적은 우리의 뜻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인데, 경찰의 폭력으로 집회·시위 자체가 원천 봉쇄되는 상황에서 ‘비폭력’을 고집하다 고스란히 잡혀 들여가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나는 떠들었다. 시민을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공간을 확보하고, 시위대의 핵심역량을 공권력의 폭력에서 지켜내려면, ‘최소한의 자위 수단’이 필요하다고, 나는 떠벌렸다.

실은 무서웠던 것이다. 그런 대의명분은 나중의 일이고, 나는 시위를 하다가 직격탄, 지랄탄, 사과탄, 그리고 곤봉과 군화에 맞아 죽을까봐 무서웠다. 그것이 개죽음인 것 같아 더욱 두려웠다. 나중에 ‘물대포’가 등장했을 때, 나는 ‘최소한의 자위 수단’에 대한 주장을 거둬들였다. 노즐을 조정해 자유자재로 직사·곡사를 넘나들고, 형광액을 묻혀 시위참가자를 색출하며, 한번 맞는 것만으로도 하루종일 무기력해지는 그 가공할 장갑차의 최루액 살포를 맞닥뜨린 뒤, 나는 우리의 무기가 사소한 자위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내려놓고, 그저 책만 읽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가짓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처리를 규탄하는 시민, 학생, 노동자들이 지난 22일 밤 서울 중구 명동 남대문세무서 앞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진압에 나섰다.

2011년 11월은 최루탄 역사의 대단원 또는 또 하나의 절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경찰은 국내 등장 20년이 지난 CS 최루액을 “내년 중에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들은 “만약에 있을지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해 보관하던 것을 없애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염두에 뒀던 ‘비상사태’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비상사태’ 개념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했다.

경찰 발표 이튿날인 11월22일, 김 의원은 FTA 날치기 처리 현장에 최루가루를 뿌렸다. 기자 출입까지 봉쇄한 상태에서 벌어진 사태이므로 그가 사과탄을 터뜨렸는지, 그냥 최루가루를 뿌렸는지는 아직 정확치 않다. 어쨌건 그것은 클로로벤즈알말로노나이트릴이 공개 장소에서 사용된 마지막 사건이 될 것이다. 같은 날 저녁, FTA 날치기 통과 반대 시위대를 향해 경찰은 물대포를 쏘았다. 그 물대포의 최루액이 구래의 CS 가스인지, 덜 유해하다는 ‘켑사이신’ 성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겪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든 일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최루탄은 맞아봐야 안다. 국회 날치기 현장에서 터진 사과탄 또는 최루가루에 대해 조중동은 일제히 ‘테러’라고 1면 머릿기사를 썼다. <위키백과> 한국어판은 테러에 대해 “정치·종교·사상적 목적을 위해 민간인한테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국회의원은 민간인이 아니다. 민간인은 대대손손 국민 모두의 운명을 좌우할 한미FTA를 날치기 통과시킬 권능이 없다. 김 의원은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날치기를 시도하는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특수 집단’을 겨냥했다. (겨냥이 정확치 않아 제 몸에 더 많은 최루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기는 하다. 그럼 ‘자폭 테러’인 것인가?)

물리력을 동원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으니 김 의원의 행동이 폭력인 것은 맞지만, 그건 ‘테러’가 아니다. 지난해 예산안 날치기 통과 때,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를 ‘정권’으로 수차례 가격한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의 폭력에도 못 미친다. 주먹으로 인중을 맞으면 현장에서 즉사할 수도 있지만, 까짓 최루가루 조금 흡입했다고 절대로 죽지 않는다. 김 의원은 폭력 행사 이후, 청와대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김 의원의 의도가 무엇이건, 덕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최루탄의 맛을 보았다. 그런데 그들이 맛본 것은 겨우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직격탄, 지랄탄, 토끼몰이, 사과탄, 구타, 체포, 구속, 전과자의 낙인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폭력체계를 모두 겪어봐야, “아, 이래서 최루탄 최루탄 하는구나"”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지경까지 겪지 못하였으니,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그날 저녁 명동 성당 앞에서 물대포 맞으며 오들오들 떨면서도 FTA 반대를 외치던 3천여 명의 시위대를 끝내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과탄에도 불구하고 날치기 하는 국회의원과 물대포에도 불구하고 날치기를 규탄하는 시민 사이에 아직 공감을 위한 경험의 공유가 부족하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빌려 말하자면, “내가 최루탄 맞아봐서 아는데” 국회 의사당에 지랄탄 몇 개쯤 터져야 힘없는 이들이 공권력의 폭력에 대한 공포를 무릅쓰고 광장으로 광장으로 밀려나오는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안수찬 (한겨레 탐사보도팀장)

<기사제공/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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