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모니터링 자료는 5월 4일자 968호 <평화신문>과 2597호 <가톨릭신문>이다.

가톨릭신문 1면과 7면

▶ 「커버스토리」눈에 ‘확’ 들어온다.

<가톨릭신문>은 1월 1일자 2580호에서 올해를 ‘문화’와 ‘영성’의 두 축을 중심으로 삼아 다양한 기획을 마련한다고 말한 바 있다. 두 테마를 풀어가는 기획으로서는 ‘바오로 로드를 가다’, ‘쉽게 보는 교회미술/ 쉽게 듣는 교회음악’,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 ‘2020 한국교회를 말한다’, ‘미디어 교육’등을 예고하였다. 현재 진행 중인 기획물에 대한 것은 다음 기회에 말하기로 하고 5월 4일자 2597호에 등장한 「커버스토리」가 오늘의 주제이다.

<가톨릭신문>은 공을 무척 들인 기획특집을 갑자기 공개하는 당당함(?)을 보였다. 그리고 그 의미를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그 실천을 위한 더 깊은 고민을 위해 시대의 징표를 탐색하는 기획을 ‘커버스토리’의 제하로 시도해 보고자 한다.” 라며 말했다. 또한 “기존의 기획특집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고, 진지한 신앙과 삶을 모색하는 새 기획에 깊은 관심”을 요청했다. 그리고 첫 회의 주제를 많은 이가 염려하고 고민하는 ‘한국교회, 가난한가?’로 잡았다. <가톨릭신문>은 1면에 취재팀장이 화두를 잡았고, 이어 7면 ‘교회가 중산층화 되고 있다.’ 8면 ‘교회에 있어 가난은?’ 9면 ‘특별기고/ 가난 그리고 교회’ 등 무려 24면 중 4면을 할애하여 그야말로 집중적인 기획특집을 선보였다.

먼저 특집 내용을 떠나서 <가톨릭신문>의 시도에 대하여 경의를 표한다. 독자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지는 못하더라도 효자손을 곁에 가져다주는 것이 언론의 모습이다. 그런 일에는 일반언론과 교회언론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교계제도로서의 교회가 가는 길과 ‘교회의 기관지’이지만 교회언론의 관점은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 독자들이 그렇게 교회신문을 통해서 대신 웃어주고, 울어주고 그야말로 서로 공감하는 통행로가 생긴다면 예비독자인 다른 교우들도 그 신문을 보지 않을 까닭이 없다. 어쩌면 홍보주일에 ‘홍보’는 교회언론의 새 모습 찾기에 첫걸음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가톨릭신문>이 ‘커버스토리’를 매주 하는 것인지, 한 달에 한 번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현재의 의도를 가지고 주제에 접근한다면 ‘한적한’ 주간신문이 아니라 ‘빡신’ 주간지의 역할도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교회신문에서 「한겨레21」의 ‘표지이야기’나 「시사IN」의 ‘커버 특집’을 보는 것이 꿈이 아니라 이젠 현실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하나를 보고 너무 성급한 판단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커버스토리’ 기획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 이 기획이 계속 생명력 있게 나가려면 ‘주제’ 선정에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무엇보다 독자와의 교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이번 기획의 9면에 나온 것처럼 주교, 교구신부, 수도자등 교회내부인(?)에 국한되지 않는 현장의 소리를 좀 더 지면에 반영해 주길 바란다. 참고로 지금은 폐간된 <사목>지의 특집과는 달리 교우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할 수 있는 교회신문이 지닌 큰 장점을 활용한다면 더 좋은 ‘커버스토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신문>의 표현대로 “깊은 관심”을 표한다. 


그런가하면 홍보주일을 앞두고 <평화신문>은 2면 사설 ‘교회미디어 성장 밑거름은 후원과 격려’와 3면 ‘홍보주일 제안-교회 미디어, 이젠 활용하자’를 실었고, <가톨릭신문>은 4면 사설 ‘진리를 선포하는 미디어’와 11면 ‘홍보주일 기획-주보가 진화한다’를 실었다. 문제는 교우들이 교회매체를 듣고 보게 하는 것이다. <평화신문>의 말대로 ‘활용’에 대한 고민을 일선 사목자와 미디어 제작자간에 치열한 방법모색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교우를 당연한 언론소비자가 아니라 선택적 소비자로 생각하는 겸허함이 필요하다. 아울러 교회미디어가 ‘성령’의 다양함을 담을 수 있는 각고의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김유철 200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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