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김대원]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묻혀 조용히 지나가고 말았지만, 올해에도 일본 공립학교 졸업식에서 기미가요 기립제창에 반발한 50여명의 교사들이 징계를 받았다. 1999년,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일본의 국가와 국기로 법적 공식지정. 2003년,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국기게양 및 국가제창, 그리고 제창시 기립 등을 의무화. 그 뒤 적지 않은 교원들이 이를 거부하는 끝 모를 싸움을 계속해 왔고, 애매한 처벌규정에 대한 법정투쟁이 계속되어 왔지만, 올 5월 일본최고재판소가 교육위원회의 징계에 대해 합헌판결을 내림에 따라 교육계의 국가주의 교육 강화 움직임은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졸업식장의 풍경이 유치할 정도이다. 기미가요 제창시 교사들의 성량을 체크하기도 하고, 기립하지 않은 교사와 학생을 체크해 실적이나 성적에 반영하기도 하며, 식장에 의자를 설치하지 않고 시작부터 모두 세워 둔 채로 졸업식을 진행한 학교도 있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 이와 같은 일본의 보수화 즉 군국주의의 부활 움직임에 격분하기는 하지만, 실제 기미가요의 어느 부분이 어느 정도 문제가 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을까? 아마도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의외로 일본의 학생들조차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사가 옛말로 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다지 대단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긴 하다.

기미가요의 가사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의 세상이 천대까지 팔천대까지,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이게 전부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짧은 국가가 아닐까. 노래로 해도 40-50초 정도이다. 이 한 줄만으로는 제국주의와 일왕에의 충성 맹세를 알아채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 노래는 원래 10세기 초에 편집된 ‘고금단가집’에 수록되어 있는 일본 고대가요이다.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노래로 경축연 등에서 불리다가, 명치(明治)정부에 의해 새로운 곡조가 붙여져 애국가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할 때까지 기미가요의 첫머리는 그 뜻이 분명했다. ‘당신의 세상’은 곧 일왕이 다스리는 세상’이라는 뜻이었다. 그 외의 해석은 있을 수가 없었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각종 집회나 음악회, 각 학교의 조회시간 등을 통해 이 노래를 하루에 한 번 이상 부르거나 듣도록 강요당했다. 이른바 황민화 정책. 또한 중국인들에게 이 노래는 점령국 군대의 군가일 뿐이다. 일본 군대가 중국의 도시들을 점령해가면서 즐겨 부르던 군가였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독립투사들을 죽이고 간도 대학살을 저지른 뒤에도 기뻐 불렀을 노래이다. 지금도 일본의 극우단체 회원들은 자주 군복을 차려입고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전범들에게 참배하며 이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를 일본인들은 지금 국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이나 불의에 대한 저항은 있는 법. 이에 저항하다 2000년 이후 매년 평균 100여명의 교직원이 징계 받았으며, 2010년에는 200여명이 대거 징계받은 바 있다. 올해에는 50여명으로 줄었지만, 학교측에 의해 졸업당일 옥외의 안내업무 담당으로 명령받은 경우가 많았고, 중복징계가 두려워 스스로 휴가를 신청하고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은 교원도 많았다. 소극적인 저항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올해는 교직원 뿐 아니라 학생들의 움직임도 있었다. 동경 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교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은 몇 명의 학생이 갑자기 단상의 마이크를 쥐고 다음과 같이 외쳤다. “더 이상 선생님들이 괴롭힘을 당해서는 안된다. 특히 기립하지 않은 학생 수로 교사를 처분하는 것은, 교사를 인질로 학생의 사상을 통제하는 것이다. 생각 있는 학생으로 성장하자. 문제라고 느끼면 행동하자.”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날 학생들은 기미가요 제창시 기립하지 않으면 교사에게 피해가 가므로, 교장 훈화시 기립하지 않는 것으로 불복했다. 몇몇 학교에서는 졸업식 당일 교문 앞에서 성명서를 배포하다 체포된 학부모도 있었다. 처분되는 교원의 수가 줄어들어도, 교육위원회의 명령에 불복하는 교원의 수는 줄어도,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상 일본의 국가제창 강요와 기립 의무화, 불복교사들에 대한 탄압 등의 배경에는 우경화 즉 국가주의 강화와 함께 표현의 자유나 기본적 인권에 대한 몰이해가 있다. 그럼, 우리는 이로부터 자유로운가? 국기게양과 국가제창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고 비난하고, 이에 저항한 이들의 피해를 안타까워 하지만, 우리는 그 국가주의로부터 자유로운가?

독립운동과 해방의 상징이었던 태극기가 독재정권에 의해 국가에 충성을 요구하는 전체주의의 상징으로 이용되는 것을, 우리는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런 국가주의가 기득권과 지배계층을 유지하기 위해 활용되는 데에 저항하지 않았던가. 조례를 하면서, 하교길에, 영화 관람 전에 그저 무의식적으로 일어서거나 멈추어 서서 예를 표하고는 했다. 때로는 이유 모를 감정으로 가슴이 벅차 오르기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국가대항 운동경기가 시작되기 전, 아니면 금메달을 딴 뒤 경기장에 울려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며 울먹거려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국가의 존재와 의미와 가치, 막연한 애국심, 그리고 국기 혹은 애국가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우리 애국가 자체에는 아무런 유감이 없다. 과거 자국의 군국주의 역사를 경험한 적이 없으면서도, 그리고 피해국가의 국민이 아님에도 기미가요 제창을 반대하며 징계를 무릅쓴 일본 젊은 교사들의 용감한 저항에 박수를 보내면서, 어릴 적 박정희와 전두환의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칠 각오를 했던 자신이 너무 억울하고 창피할 뿐이다. 아무 반성 없이 지금도 계속되는 있는 것 역시.

김대원 신부 (성공회, 일본 릿교대학교 교수)

<기사제공/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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