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깨달음-변경환]

1.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대안학교에 있다 보니 많은 아픔을 접하게 된다. 북한에서 넘어온 아이들을 보듬어 주는 학교에서는 한반도 역사 속에 묻어있는 죄 없는 아픔들을 만났다. 그리고 소위 ‘학교 부적응’이라는 공교육의 낙인 때문에 난민처럼 여기저기 쫓겨 다니는 아이들의 아픔도 만났다. 또 어떤 학교에서는 부모님이 안계시거나 주변 도움 없이는 배울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과 살 붙여 가며 살기도 했다. 아이들과 여러 ‘아픔’을 겪어가면서 첫째로 필요한 마음은 아픔의 공유였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과 관계 맺기가 어렵고 껍데기만 선생이 되기 때문이다.

2. 아이들에게 사랑은 주어도 생각을 주어서는 안 된다.
-보리편집부,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중 칼린 지브란의 말
 

아이들에게 사랑은 주어도 생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교실에서는 생각하는 틈 없이 우리는 줄곧 지식을 넣어주고 문제를 풀어준다. 아이들은 단지 문제를 풀어야 하는 머리만 지니면 된다. 아니 좀 더 깊은 지식과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대학 논술 기출문제에 맞춘 생각하는 힘이면 충분하고, 삶이 담긴 것보다는 주어진 정답만 찾아내는 생각이 절실한 현실이다. 조금이라도 어른들의 기대에 빗나가는 생각이 있으면 “옳지 않아, 틀렸어, 그건 아니야, 하지 마! 안돼!”라는 잣대를 만들어준다. 자, 우리는 아이들의 생각을 어떻게 지켜주어야 할까? 아이들의 생각을 우리가 눌러버리고 있지는 않을까? 선생으로서 아주 민감한 부분이면서도 늘 챙기며 살아야 할 것이다.

3.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 출 수 없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 출 수 없다>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준비하는 시기는 어느 때부터일까? 주위 부모들의 자녀교육을 보니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좋은 대학을 준비하고자 일주일에 다섯 개 정도의 학원에 보내고 있다. 부모의 맞벌이 때문 아이들이 집에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그래서 더욱 학원으로 돌린다. 그러면서도 학원비를 대기 위해 맞벌이를 또 해야 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시간낭비를 할까 두렵고, 공부를 못할까 두렵고, 경쟁에서 뒤쳐질까 두렵다. 그럼, 우리의 아이들은 무엇이 두려울까? 그런 부모를 둘까봐 두렵겠다. 두려움으로 진짜 배워야 하는 것들은 못 배우는 우리 아이들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4. 따로국밥 교사들에게 고함
-이명호, 대안교육 전문지 <민들레> 45호

두메산골에 사는 이로서 ‘오지(奧地)점수’ 때문에 찾아오는 공교육 교사들과 오지점수 정책에 대한 소견을 밝힌 글이 있다. 젊어서 두메산골 오지에 근무를 해야 평점이 높아지고, 교감 및 교장 승진에 유리하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게 되면서 도시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커진다. 시골학교일수록 경력 있는 교사들이 사라지고 설령 있다 하더라고 이내 마음은 도시에 있는 교사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이촌향도’의 문제점을 가르치고 시골이 살기 좋다고 가르치고 농촌을 살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오지일수록 교육에 열의를 가지고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교사들이 오는 것이 낫지 않을까? 몸 따로 마음 따로 움직이는 교사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오지의 부모와 학생들은 더 큰 상처를 받는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5. 일과 놀이와 배움
-김종휘, <일하며 논다 배운다-노리단 이야기>


오래 전에는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옆에서 놀면서 그것이 또한 자신의 일이 되는 시절이 있었다. 예수님도 아버지 요셉을 따라 목수 일을 배우고, 돌을 깎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도시의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살펴보자. 놀이터? 학교 운동장? 피씨방? 무엇부터 우리들 머리에 떠오르는지……. 제대로 놀 줄 알고,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이 되는 시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인지…….

육체노동을 힘들게 하면서도 정당한 대가를 받고 그것이 대를 이어 배움이 되고 어려서부터 놀면서 배울 수 있는 상상을 해본다.

6. 참다운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보리편집부,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중 비노바 바브의 말


인도의 독립을 위해, 그리고 교육적 가치를 살려간 비노바 바브가 한 말이다. 참다운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가르치지 않지만 옆에서는 그를 보고 배우고 있음을 말한다. 누가 뭐래도 교사는 교사인가 보다. 가르치려고 억지로 몰아넣고 주입하고 설득하는 것이 가르침이라고 교사들 대부분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텔레비전도 교사이고, 컴퓨터도 교사이겠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깊이 생각을 해본다. 자연은 가장 큰 스승이고 어머니이고 교사라는 생각. 대자연은 우리를 가르치려고 교실에 넣어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참다운 교사도 그렇게 할 것이다. 난 선생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지만 참다운 교사로서 더 참답게 살고 싶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늘 가르치려고만 매달리는 것 같아서 그렇다.

몇 가지 교육적 사색(思索)은 계속 된다.

변경환/ 베드로, 지평선고등학교(특성화대안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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