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1992년 6월 28일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 사제직을 떠나 평신도의 진지로

11월 13일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평신도로 복음적 진실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그러나 사제 역시 복음적으로 살기에 제한이 많아서 고심하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가장 좋은 것은 주교단과 일치하여, 특별히 교구장과 일치하여 일하는 것이겠지만, 때로 당혹스러울 때가 많은 까닭입니다.  이 참에 중남미 해방신학의 입장을 대변해 온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가 1992년 6월 28일 사제직을 버리고 평신도가 되면서 전 세계의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합니다. 이 편지는 <한겨레> 1992년 8월 9일자에 실렸던 것입니다. -편집자

사제직을 버리되 교회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 스스로 달라져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그런 처지입니다. 나는 투쟁을 포기하지 않되 방법을 달리합니다. 사제직을 버리되 교회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나는 교회의 보편성과 일치운동 정신이 배인 한 가톨릭 신학자임에 늘 다름이 없습니다. 이 정신을 나는 가난한 이들의 시각에서, 그들의 가난을 거슬러 또 그들의 해방을 위해 실행합니다.

우선 내가 나가는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자유를 지키기 위함이요 끝내는 몹시 어려워지고 만 나의 일을 계속하기 위함입니다. 이 일은 지난 25년동안 신명을 바쳐 온 내 삶의 의미입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근거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은 품위를 잃고 본연의 정체를 구기게 됩니다. 나는 그러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그러기를 원하시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나는 지난 세기의 이름난 쿠바의 사상가 호세 마르티의 말을 상기합니다.

“하느님이 사람의 머리에 생각을 심으셨거늘 하느님만 못한 주교가 이를 표현하지 말라 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70년대부터 여느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나는 복음을 사회 불의와 억눌린 이들의 외침을 생명의 하느님과 관련지어 설명하고자 애써 왔습니다. 이리 해서 생겨난 것이 해방신학이라는 처음으로 보편성을 띤 라틴아메리카 신학입니다. 해방신학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신앙의 해방력을 되찾고 예수에 대한 ‘위험한 기억’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교를 권력자들의 이익에 묶어 두고 있는 쇠사슬을 깨뜨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위험한 기억’

▲ 레오나르도 보프(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이런 열성에 이끌려 우리는 ‘가난하게 변두리에 사는 이들’이라는 ‘학교’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복음을 배웠습니다. 더 사람다워지고 더 민감해졌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낳는 원인인 구조적 장치들도 더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노여움’에 의하여 연대적인 실천과 참여적인 성찰에 이른 것입니다. 재래 그리스도교를 특권 보전의 동맹쯤으로 여기며 대다수에게는 무질서일 따름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핑계를 일삼는 그런 사회 집단들의 비방을 우리는 그들과 더불어 견디어 냈습니다. 우리 믿음의 형제들에게조차 이단자로 또 마르크스주의 연루자로 지탄받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언제나 나는 여자를 차별하고 평신도를 멸시하며 근대적 자유와 민주주의 정신을 불신하고 지나치게 중앙집권화한 신성 권력을 성직자들의 손에 쥐어 놓는 그런 모든 구조와 행동방식을 교회 자신의 삶에서 극복할 때라야 참으로 교회가 억눌린 이들의 해방과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자주 궁리해 온 명제를 여기서 되풀이하건대, 삼위일체론에서 오류인 것이 교회론에서 진리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위계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 삼위일체의 가르침입니다. 종속론은 무엇이나 이단입니다. 하느님의 삼위는 위엄도 품성도 능력도 똑같습니다. 삼위일체의 가장 깊은 본성은 고독이 아니라 친교입니다. 생명과 사랑의 관계로 하느님의 삼위가 그처럼 철저히 맺어져 있기에 우리는 세 신이 아니라 하나이신 하느님을, 하느님 공동체를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위계가 근본요소이며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하느님의 안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위계(Hierarchy)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한 정당한 문화적 속성일 수도 있는 그런 위계가 존재할진대, 그것은 신학적으로 좋은 의미에서라면 으레 섬김과 책임의 위계일 터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가 교회는 하느님 삼위의 모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아버지와 스승이 한분 뿐이라고 예수는 또렷이 말씀하셨는데(마태오 23, 8-9 참조) 교회에 아버지와 스승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다지도 많고 보면 형제 자매의 공동체라는 예수의 꿈은 어디에 남아 있습니까? 현존하는 교회조직 형태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오누이 되어 사는 예수와 사도들의 이상향을 실현하고 촉진하기 보다는 도리어 차등을 조장하며 반영하는 편입니다.

잔인하게 검열당하는 목소리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바티칸 교도권의 날카로운 감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직접으로든 중간 권위를 통해서든 감시는 점점 옥죄어 오더니, 끝내는 교수로서, 설교자로서, 조언자와 문필가로서의 나의 신학활동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1971년부터는 줄곧 경고와 제약과 징계 조처들이 담긴 서한들을 받고 있는 터입니다.

모든 서한에 나는 회답을 했습니다. 두 번은 내 교수직의 일시 정지에 관하여 다뤘습니다. 1984년에는 로마-가톨릭 교회 교도직의 최고 법정인 ‘청문회’에 불려갔습니다. 1985년에는 나의 의견 가운데 많은 것에 대한 단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뒤에는 ‘정중한 함구령’으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나는 “나의 신학을 가지고 혼자 있기 보다는 교회(가난한 이들과 밑바락 공동체들의 교회)와 함께 있겠다”며 모든 처벌을 달게 받았습니다. <브라질 교회 평론>지 편집도 내놓게 되었고, ‘목소리’(Vozes)출판사의 간행위원도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현행법 밖의 한 특별규정이 강제되었는데, 나의 모든 저술은 이중으로 사전 교회 검열에 제풀되어야 하는바, 하나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내부 검열이요, 다른 하나는 ‘교회 출판물 인가’의 관할권을 가진 주교의 검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두를 나는 받아들였고, 이 모두에 허리를 굽혔습니다. 1991년과 1992년 사이에는 테두리가 더욱 조여들었습니다. 나는 <소리>(1904년에 창간된 브라질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지) 편집에서 쫓겨났고, ‘소리’ 출판사 자체와 이 출판사에서 간행되는 모든 잡지가 검열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새삼스레 내가 쓰는 모든 글과 책들이 사전 검열을 받도록 요구되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무기한으로 정식 신학 교수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교도직 권위와 씨름을 하면서 얻은 주관적인 경험은 이것입니다. 이 권위는 잔인하고 무자비합니다. 아무것도 잊지 않고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나는 담벼락 앞에 다다른 느낌입니다.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되돌아간다는 것은 본연의 정체를 희생하고 여러 해 신명을 바쳐 온 일을 단념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무엇이나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 안에는 모든 것을 싸잡는 일이란 없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예수는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넘어서는 안될 한계선이 있으니 인간의 권리와 존엄과 자유가 그것입니다. 줄곧 허리를 굽히고만 있는 사람은 필경 병신이 되고 사람 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내 삶을 고취하는 동기들은 그대로 존속합니다

아주 쓴맛을 보고 알기 전에, 그리스도 신앙과 희망의 인간적 바닥이 내 안에서 무너지고 각 위격의 친교라는 하느님의 복음적 모습이 내 안에서 위험에 빠지는 꼴을 보게 되기 전에 나는 차라리 길을 바꾸되 방향을 돌리지는 않습니다. 내 삶을 고취하는 동기들은 그대로 존속합니다. 곧, 가난한 이들에게서 시작되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투신, 복음에 대한 열정, 이 세상의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느끼는 연민, 억눌린 이들의 해방을 위한 책임, 비판적인 사고와 극도로 비인간적인 현실 사이의 매개, 그리고 끝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밝히고 실천한 것처럼 창조계의 어느 존재에 대해서나 자상하게 돌보는 다정한 마음들입니다.

나는 교회의 신비롭고 성스러운 특성을 사랑하여 마지 않을 것이며, 필요한 분명한 태도와 관용 정신을 가지고 교회의 역사상 한계성을 이해하기를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는 깊은 위기가 있습니다. 두 가지 기본 자세가 매우 거세게 대립해 있습니다.

첫째는 규율의 힘이며, 둘째는 사태 진전의 내적인 힘을 믿는 태도입니다. 첫째는 교회에 분명한 질서가 필요하며 따라서 모든 이의 순종과 복속에 온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태도를 교회 안에서 중앙 행정을 맡아 결정을 내리는 지위에 있는 대다수가 취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교회가 끊임없이 스스로 해방될 필요가 있다는 데서 출발하며, 그래서 역사를 꿰뚫어 활동하는 성령을 믿고 수천년 늙은 거목인 교회의 몸에 거름처럼 열매를 맺어주는 생명력을 믿습니다. 이런 자세를 제3세계와 브라질에 있는 변두리 교회들의 중요한 부분들이 지니고 있습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나는 둘째 범주에 속합니다.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무방비 상태의 꽃들’과 눈에 띄지 않게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들에 희망을 걸고 있는 그런 이의 하나입니다.

평신도 예수의 사제직

형제 자매 여러분, 희망을 안고 함께 길을 가는 반려 여러분! 여러분의 투신이 나의 처신으로 말미암아 기죽는 일이 없기를 빕니다. 우리는 제도 교회를 도와서 더 복음에 어울리고 더 공감할 줄 알며 더 사람다워지게 하여 하느님 아들 딸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의무를 수행하게 되도록 합시다.

나는 나의 지적 활동을 통하여 한 인디오-아프로-아메리카 그리스도교를 건설하는 일에 진력하고 싶습니다. 우리네 민중들의 몸 속에, 피부 속에, 춤 속에, 고통 속에, 기쁨 속에, 언어 속에 하느님의 복음에 대한 응답으로서 우리의 토착 문화가 된 그런 그리스도교 말입니다. 나는 신도들의 보편 사제직에 계속 머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상기시키는 대로(7장 14절, 8장 4절) 이 사제직은 또한 평신도 예수의 사제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면서 나는 슬프지 않고 차분한 마음으로 우리의 대시인 페르난도 페소아의 시구를 내 것으로 삼습니다.

"무엇이 보람없으랴
혼이 기죽지 않을진대"


내 혼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기죽지 않았다고 나는 느끼고 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