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추기경연구소 제2회 심포지엄 열어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 사셨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이들의 삶의 상황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그분은 가난했습니다. 즉 그분은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사셨기 때문에 그분은 하느님께서 가난한 이들의 하느님이시라는 구약성서의 계시를 새롭게 하셨고 경이롭게 성취하셨습니다.”(김수환 추기경, 마닐라 국제 선교대회, 1979)

‘하느님을 닮은 인간사랑-김수환 추기경의 사회영성’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김수환추기경연구소(소장 고준석 신부) 주최로 지난 10월 28일 가톨릭대학교 성심캠퍼스 인터네셔널허브관에서 열렸으며, 김 추기경의 인간관, 생명문화관, 경제관 등을 살펴보았다.

▲김수환추기경연구소는 제2회 심포지엄에서 김 추기경의 사회영성을 다루었다.

추기경의 인간회복운동 토대는 ‘인간존엄성’

기조발제를 맡은 박일영 교수(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는 먼저 “그리스도가 왜 하필 오늘도 십자가를 통해서 해방하시고 구원하시는지, 고통과 가난 속에서 우리는 그분을 볼 줄 알아야겠네. 승리 속에 보려고 하면 그분은 안 계시네”라고 적어보낸 추기경의 성탄카드를 소개하며, 김수환 추기경의 사회영성은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인권은 인간존엄성에 바탕을 두고 있고 하느님이 주신 것”이기에 “인권회복은 인간회복이요 하느님의 존엄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정환 교수(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부원장)는 김수환 추기경의 인간관을 살펴보면서, 인간이 존엄한 까닭은 먼저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천부적이고 신성불가침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을 취하신 것처럼,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며, 인간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거룩한 소명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은 존엄하다고 전했다.

강영옥 박사(서강대교양학부)는 김수환 추기경의 생명사상을 소개하면서 낙태의 문제를 다루었다. “낙태를 허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인구조절의 효율성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존엄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태아의 생명을 생명으로 다루지 않을 때, 생명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인간의 가치는 물질보다 하위에 놓이게 됨으로써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가치전도현상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결국 인간생명보다 경제나 물질을 우위에 둠으로써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마저 심화시킨다고 본다.

사제들, 가난을 머리로는 알지만, 받아들일 마음자리 없어

▲유정원 박사.
마지막 발제를 맡은 유정원 박사(수원가톨릭대 신학과)는 김수환 추기경의 가난과 경제정의에 대해 소개하면서, “예수님이 공생활의 첫말씀을 가난한 이들을 향하여, 또 가난한 이들에게서 시작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면서, “예수님의 사랑이 그분 메시지와 현존의 본질이라면, 가난은 메시지와 현존의 모퉁이 돌이며 토대”라고 말했다. 실제로 예수는 가난하게 태어나고 가난한 이들의 벗이었으며,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예수가 문전걸식하던 행려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전수필을 통해 “의무감, 체면상, 우연한 기회, 혹은 공식 스케줄에 의해 가난한 이들을 만나곤 하지만, 교회 제도의 문제로 말미암아 가난한 이들의 고달픈 삶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또한 추기경은 “가난한 사람들만이 다른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건만, 사제들 역시 가난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하며 “자신도 가난한 집안 출신이지만 사제가 된 이후 가난을 차차 잊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이처럼 사제들이 가난하지 않게 되어 가난한 이들 속에 들어가 있지 않으니 가난한 이들의 처지와 고통에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아픔이 없으니 사랑이 없다”고 진단했다. 추기경은 사제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존재를 머리로는 인식하지만, 그들을 받아들일 마음 속 자리가 없게 되었다고 반성한다.

이런 점에서 김 추기경은 예수가 첫 제자들을 부르실 때 세상 재물로부터 정신적으로 이탈할 것을 요구하셨고, 그들은 이에 응답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자기 자신과 사제들과 신학생들에게 물질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마음으로 가난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엄연하고 명백한 진실을 상기시켰다.

추기경, 인간에게 더 가까이 있는 교회상 제시

한편 교회와 관련해서 김수환 추기경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통해 참된 교회상을 제시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89년에 열린 3차 ASIA 모임 개막미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 가난한 이와 함께 하는 교회, 또는 가난한 이의 교회가 될 뿐 아니라, 교회는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유정원 박사는 여기에 김수환 추기경이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에 대응하고 가난한 이들을 품어내기 위해서는, 몇몇 급진적인 사제나 수도자 또는 평신도들만이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데 그쳐선 안된다”며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응답은 복음의 본질 자체이며 예수님의 생활과 말씀, 그분의 의미 자체, 따라서 그분이 교회에 지워준 사명 자체”라고 보았다고 덧붙였다. 즉, 김 추기경이 전망하는 교회상은 “인간에 더 가까이 있는 교회, 그중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당하는 이들 안에 현존하는 교회로서, 예수님과 함께 이 시대에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교회”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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