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주말 영화] <완득이> 이한 감독, 2011

트리플 위기. 가난, 장애(아버지), 거기다 필리핀인 엄마까지. 가출하기 딱 좋은 조건이다. 그래서 완득이는 집을 나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자신의 가출 쪽지를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었다. 채칼 팔러 지방 장터에 간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완득이는 떠나봐야 할 것도 없는 하류인생, 그냥 여기서 사는 게 낫다.

요기까지 보면, 달동네에 사는 가난한 십대 아이, 그들 둘러싼 다문화, 장애인 차별, 타락과 방황, 딱 머리 아프다. <도가니>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신념으로 경건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영화가 세상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영롱한 이상을 따라 영화를 봤던 그대여. (아, 물론, <도가니>는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도 아주 뛰어난 영화다. 올해의 작품상을 안겨주고 싶을 정도니까.) 이제 <완득이>가 있다. 이 영화에는 딱 머리 아픈 현실이라는 어마어마한 무게를 뛰어넘는 훈훈함과 싱싱함이 있다. 그러니 착하고 명랑하게 즐길 거리를 찾는다면, 이 영화 <완득이>가 딱 좋겠다.

김려령의 베스트셀러 원작의 뚜렷한 개성에 <내 사랑>이나 <청춘만화> 같은 경쾌하고 말랑말랑한 청춘영화들을 만들었던 이한 감독이 결합하니, 영화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웰메이드 성장드라마가 되었다. 워낙 원작이 훌륭했고, 완득이를 연기한 유아인의 매력과 선생 동주를 연기한 김윤석의 탁월한 에너지에 옥탑방 이웃들의 생기넘치는 캐릭터화는 시너지를 발휘하여,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 그 사회적 무게에 헐떡이지 않으면서 유쾌하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 <완득이>, 김려령, 창비
완득이의 아버지는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척추 장애자이고, 어느 순간 가족이 된 삼촌은 어디가 좀 모자란다. 게다가 갑자기 나타난 엄마는 필리핀인. 학교에 가면 “죽이고 싶은” 말썽꾸러기 담임 동주 선생이 자꾸만 삶에 간섭한다. 라면과 햇반을 보조받는 생활보호대상자인 게 티 나는 것도 쪽 팔린데, 선생은 가난이 쪽 팔린 게 아니라 그것도 못 받아 먹는 게 쪽 팔린 거라 한다.

동주를 죽여달라고 교회에서 기도해봤자, 교회 장로인 동주의 기도발이 더 큰지 그는 죽지도 않는다. 담임 동주는 원치도 않는 엄마와의 만남을 멋대로 주선하고, 아버지를 모욕하는 이웃의 욕쟁이 화가 아저씨와의 싸움을 부추기기나 하며, 억지로 햇반 상자를 들고 가게 하더니 그걸 뺏어 먹으려고 걸핏하면 “얀마, 도완득”을 부른다. 싸우다가 정든다고. 싸움꾼 기질의 껄렁한 완득이가 격투기에서 출구를 찾을 때, 그를 도와주며 어느새 둘은 담임과 제자 관계를 넘어 끈적한 멘토 관계가 된다.

귀족 출신 톨스토이가 전 재산을 농민들에게 나누어줄 때, 의사 아들이자 자신도 의사였던 체 게바라가 혁명을 위해 국경을 넘어갈 때, 기득권을 버리고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은 멋있다. 담임 동주는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 아버지가 싫어 스스로 옥탑방의 삶을 선택한 멋진 인물이다. 돈이 많으니 교회를 사버리고 이를 마을문화센터로 바꾸어 다문화 교육과 소통의 장을 실현하지 않는가.

이게 뭐 현실에서 가능한 일이겠냐만은(없는 건 아니다. 자기 집을 무슨 ‘역사적으로 섭섭한’ 연구소에 줘버리고 자신은 월셋방을 선택해버린, 최근 뜨는 노안의 누군가가 있긴 하더라), 이런 일도 수시로 벌어지길 바라는 대중적 열망이 이 허구의 인물에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이로써 가난한 어린 주인공의 불행한 성장기는 ‘완벽하게 유쾌한 성장기’가 되었다.

큰 상업영화처럼 서사가 긴밀하거나 촘촘하지 않아 어쩌면 밋밋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싹트는 소소한 즐거움들이 영화에는 넘쳐난다. 매력 넘치는 가난한 캐릭터들 중에 악당이란 없다는 점, 눈물을 짜내는 에피소드를 자제 한다는 점, 애매하게 음악으로 포장하는 않는 담백함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30년 후, 영화의 환영성과 엔터테인먼트적인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한 영리한 하층민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한국영화의 진화를 몸소 깨닫게 해준다. 80년대의 진지하고 전투적인 모드를 웃음과 패러디로 뛰어넘는 <써니>처럼, 빈곤과 차별 문제를 “그게 뭐 어때서” 한마디로 훌쩍 뛰어넘는 쿨한 <완득이>에 별 불만 없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EBS 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 동국대, 숭실대 출강 중.
쉽게 정보가 눈에 뜨이지 않는 영화들 추천을 통해
영화로 닥치고 소통하는 명랑한 공동체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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