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데스크-한상봉]

최근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저작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톨릭성가>에 포함되었던 최병철 교수의 작곡, 편곡 작품에 대한 저작권 시비가 법정소송으로 치닫고 있으며, 그밖에도 소송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생활성가와 CCM을 둘러싼 크고작은 저작권 분쟁이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참에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성음악소위원회의 위원인 이상철 신부(서울교구 마장동성당)가 지난 추계 주교회의를 앞두고 열린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에 ‘한국가톨릭음악저작권협회’ 설립제안서를 제출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제안서는 비록 상임위에서 안건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교회 일각에서 저작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이다.

교회음악을 해서는 기초적 생활도 못한다

<평화신문> 2011년 10월 16일자에서 이상철 신부는 “제가 담당하는 한국가톨릭작곡가협회 소속 작곡가들을 만나면 다들 한숨부터 쉽니다. 창작의욕을 상실했다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교회음악을 해서는 기초적 생활도 못한다는 거지요”라고 말하며 “아무리 복음선포를 목적으로 하는 교회음악이라 하더라도 창작자의 지적 재산권은 보호돼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이상철 신부는 교회 안의 저작권 분쟁을 조정하고 저작권을 위탁관리하는 ‘한국가톨릭음악저작권협회’를 설립을 주장하면서 “교회음악 저작권 보호문제는 한 개인이나 교구 일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문화복음화와 직접 관련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한 저작권 시비로 인한 악화될 수 있는 교회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논란이 불거진 것은 <평화신문> 10월 6일자에서 저작권 문제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하고 있듯이, 저작권을 둘러싼 여러 문제가 누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제들과 일반 신자들은 “비영리 종교행사와 선교를 목적으로 이용하는 교회음악에 저작권 요구가 웬말이냐”는 정서가 여전히 지배적이지만, 현재 각 교구에서 자체적으로 발행해 사용하고 있는 성가책들이 대부분 저작권 승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제작되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저작권 시비에 휘말릴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현재 교회 안에서 공공연히 사용하고 있는 성가 가운데 개신교 곡을 번안하거나 무단 사용하고 있는 곡이 상당히 많아서 최근 개신교의 ‘한국크리스천음악저작권협회’(KCMCA)와 ‘한국교회저작권협의회’ 등 저작권위탁관리 단체들이 천주교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위기의식을 반영하듯이, <평화신문>에서는 세 차례에 걸쳐 교회음악저작권 문제를 다루었고, 사설에서도 성음악은 “교회 내 다른 표현예술들 가운데 매우 뛰어난, 그 가치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보고(寶庫)”(전례헌장 11항)라면서 시급히 교회 안에 저작권협회를 설립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작곡가나 연주자가 되려면 꽤 오랜 시간과 큰 돈을 투자해야 가능하지만, 가톨릭교회는 봉사 명목으로 이들을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못해 교회음악이 지체현상을 빚고 있다. 개신교는 예전부터 교회음악에 많은 투자를 해 왔으며, 불교조차도 '찬불가' 등 대중문화와 불교를 접목시키려는 노력 속에서 음악에 투자하고 있다. 

활용할뿐 투자하지 않는 교회, 성음악 발전 기대 못해

이처럼 교회음악 문제가 심각해진 이유는 먼저, ‘저작권’ 개념에 대한 교회의 몰이해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교회가 교회음악의 실용성만 따질 뿐, 교회음악의 생산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성가대 지휘자는 “사제들이 성음악을 전례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하고, 성음악의 고유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비판했다. 이는 성가대 지휘자를 대한 각 본당 사제들의 대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본당에서는 통상적으로 성가대 지휘자와 반주자들을 무급으로 활용하거나 최소한의 수고료를 지급하며 ‘봉사’를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회음악 생산자인 작곡가와 작사가 역시 교회 안에서 충분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평화신문> 사설에서도 이를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성음악을 10년 가까이 공부하고 돌아온 전문가라 하더라도 교회 안에서 기량을 마음껏 펼치기가 어려운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동안 재능과 열정이 있는 음악인들이 열악한 여건에 실망하고 타종교 또는 다른 분야로 넘어가는 것을 많이 봐왔음에도 교회는 그들에 대한 대우나 보상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저작권협회 설립을 ‘고무적인 소식’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런 배경 때문이다.”(평화신문 2011.9.25.)

이 문제와 관련해 최병철 교수는 “교회 안에서 성미술이나 건축하는 이들에게는 꼬박꼬박 인세와 비용을 지불하면서 왜 음악하는 사람들에게는 교회가 인색한지 모르겠다”며 “작곡을 하려면 오랜 시간동안 공부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음악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봉사만 강요해 온 것이 교회의 관행”이라고 비판했다. “음악가 역시 신앙인이면서 동시에 직업인”이라고 말하는 최병철 교수는 이어서 교회가 음악가들에게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음악이 발전하지 못하고, 좋은 작곡가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성음악 작곡에 '가톨릭신자 제한' 둘 필요 있을까

한편 현실적으로 충분한 작곡능력을 보유한 가톨릭음악인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작곡가가 가톨릭신자가 아니라 해도 성음악을 의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 보급되고 있는 <가톨릭성가>의 작곡 및 선정기준을 보면, 4항에 “곡은 한국적이며 신심 깊은 신자의 작품을 우선으로 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그러나 유럽음악의 연원이 대부분 교회음악이었고, 음악의 속성 자체가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성음악 작곡에 ‘신자’라는 제한을 둘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오히려 다양한 작곡가들이 교회 안에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야 교회음악도 발전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어느 작곡가는 “규정에서 말하고 있는 ‘신심 깊은’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기준도 모호하고 자의적일 위험이 있다. 결국 사제들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듣고,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만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결국 교회 자신이 성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비신자인 작곡가들을 관리할 자신감의 결여를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결국 한국 가톨릭교회의 성음악 발전을 위해 교회는 먼저 성음악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사제양성을 위해 신학생들에게 투자하듯이, 성음악기금을 마련해서라도 교회내 음악가들에게도 충분히 투자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권리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우리 곁에 현존하고 계시듯이, 음악의 선율은 눈에 뵈지 않으나 신자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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