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청년신자'만이 아닌 '청년'을 찾아야 한다
모든 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청년들 돌봐야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원장 함세웅 신부)은 지난 24일 오후 2시 명동 가톨릭회관 1층 강당에서 ‘청년과 교회, 미래를 묻는다 - 청년사목의 진단과 성찰’이라는 주제로 정기 심포지엄을 열었다.

‘교회안에서 실종된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들의 다양한 현실을 공감하고 교회와 청년이 어떻게 만날것인가에 대해 모색하고자 마련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대학강사, 청년공동체 활동가, 가톨릭학생회 회원, 청년 사목자 등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청년의 입장으로 살고 있는 이들이 각자의 경험을 통해 이 시대의 청년과 교회에 대해 함께 성찰하고 나눴다. 

▲ 10월 24일 기쁨과희망사목연구소 정기 심포지엄이 '청년과 교회, 미래를 묻는다'를 주제로 열렸다.


사회적 맥락을 통해 청년을 들여다 봐야, “우리는 어떤 청년을 바라보고 있는가?”

▲ '양극화 시대의 '청춘' 탐구'를 주제로 발제한 오찬호씨(동덕여대, 아주대 강사).
우선 오찬호(동덕여대, 아주대 강사)씨는 교회를 포함한 한국사회에서 ‘청년’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양극화 사회’를 제시했다.

그는 “청년들이 양극화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청년’에 대해 진단이 지금처럼 허망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과연 어떤 청년, 어떤 청춘을 바라보고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또 “‘꿈을 갖는 것부터가 보통일이 아닌’ 청년, 노골적인 계급 불평등 사회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파도 참으라’는 희망고문이 아니라 ‘이들이 왜 창조적으로 살 수 없게 되었는가’, ‘이 사회의 청춘은 왜 불안해졌으며, 왜 막막해졌는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라고 말하면서, “청년들에게 바늘구멍을 뚫고 나갈 의지가 없음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뚫고 나갈 구멍자체가 사라졌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청년 세대,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현실로 존재

▲ 토론자 김은주씨(대학생, 예수살이 공동체).
이에 대해 현재 대학생이며, 청년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은주(예수살이 공동체 청년 활동가)씨는 “스스로 ‘88만원 세대’, 실크세대, 오천원족, 삼포세대 등으로 불리는 ‘청년’ 세대에 속해있고 때론 공감하지만, 어떤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구체적인 현실과 다양한 상황이 존재한다. ‘청년문제’, ‘20대 문제’라고 한꺼번에 포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20대의 문제가 대학생 문제와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아르바이트를 하는 10대 시절을 거쳐 비정규직으로 30대를 맞이하는 것이 일반화된 현실에서 삶 자체가 정치적 투쟁임을 깨달아야 한다”면서, “청년이란 그 범위를 넓고 다양하게 포함해야 하며, 어쩌면 동일한 구조의 모순을 겪는 이들은 모두 한 세대일수도 있다. 당사자로서 청년의 자각도 필요하지만, 이전 세대들이 청년과 같은 시선과 입장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교회, 청년을 '존재'가 아닌 '소유'의 대상으로 보는가?
모든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정은정(단국대 강사, 농촌사회학)씨는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통해 교회 공동체를 경험했고 그 기억으로 지금까지 교회안의 실천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교회안에 청년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청년들에게 교회는 ‘기억의 공동체’여야 한다. ‘과연 교회는 청년들에게 기억을 허락하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 '교회안에 청년은 존재하는가?'를 주제로 발제한 정은정씨(단국대 강사).
정은정 씨는 ‘교회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억을 갱신하며, 추억이 아닌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의 공동체’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과연 교회는 청년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스스로 의미화하고 기억의 코드를 구성할 수 있는 자율성을 허락하고 있는가? 단지 교회가 원하는 방식대로 기억하고 단지 예수를 추억하기를 바라지 않는가?”라고 청년들을 바라보는 교회의 시선에 대해 되물었다.

또 청년들은 이미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는데, 교회 안에 청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청년을 ‘존재’가 아닌 ‘소유’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교회 밖에 있는 청년들, 교회 안에 부재하는 청년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면서, “학비를 벌다가 참혹한 죽음을 맞은 청년을 애도하지 않는 교회,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는 청춘들에게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 교회가 과연 청년 문제에 접속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정은정 씨는 “교회는 모든 고통 받는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전하면서, “노예해방과 부채탕감을 행한다는 대희년을 10년이나 넘겼지만 교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시급 4천원의 생활에서 해방시키지도 못했고, 등록금과 생활비로 인한 빚은 여전히 쌓이고 있다. 잃어버린 희년, 잃어버린 10년을 찾는 것이, 교회가 청년들에게 행할 첫 번째 의무”라고 못박았다.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말하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가장 시급한 것은 청년의 존재 회복

이에 대한 토론에서 백승덕(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전 부의장)씨는 “교회는 청년세대 내부의 이질성과 갈등에 관계없이 한 덩어리로 청년을 부른다”고 진단했다.

또 “교회는 ‘아픈 청년 양들이여, 우리가 너희를 위로해줄 수 있는데 왜 너희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느냐?’고 하면서,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곤란함, 어려움은 관심 밖이다. 또 등록금과 생활비를 버느라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을 언젠가 돌아올 ‘탕자’로 바라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 토론자 백승덕씨(대학원생,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전 부의장).
이어서 “청년들이 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가 교회다’라고 외치면서 교회 안에 머무르고자 하지만, 해야 할 일들과 알아야 할 것들은 여전히 부담스럽고, 결정권자들은 선을 긋는다”고 설명하면서, “교회의 공공영역에서 요구하는 교의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는 신분과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나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교회’라며 발언하는 청년에게 그들의 무지함만 탓한다면, 교회는 계속 ‘청년들은 어디 갔느냐?’고 탄식만 하게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백승덕 씨는 교회가 청년들이 ‘어떻게 듣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청년들이 당장은 무지하거나 모순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청년 사목’이라는 과업의 성과가 지체되거나 폐기될 것이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감수해야 한다. 사목적 과업보다는 청년 존재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서 “가장 시급한 것은 존엄성을 위협받는 청년들이 존재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데, 이러한 믿음은 교회의 가장 큰 덕목이다. 신뢰를 갖고 말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교회, 여유롭게 기다려줄 수 있는 교회가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회, 청년이 찾아들 수 있는 교회”라고 강조했다.

청소년 사목의 가장 큰 장애는 ‘아직 괜찮다’는 안이함
평신도 사목자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

세 번째는 주일학교 내 청년의 문제에 대해 최윤경(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연구원)씨가 ‘그 많던 주일학교 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이었다.

▲ '그 많던 주일학교 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를 주제로 발제한 최윤경씨(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연구원).
최윤경 씨는 무엇보다 청소년 사목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아직 우리에게 가진 것이 많다’거나 ‘아직 괜찮다’는 안이함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제는 ‘청소년들이 어디로 갔는가’라는 질문에서 ‘어떻게 찾아올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주일학교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은 주일학교나 청소년 사목에 대한 교회의 기대가 전반적으로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교회안에서 청소년은 교회의 미래라고 하지만, 당장은 교회가 사목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없는 대상”으로 취급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청소년 사목을 온전히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모든 탓을 입시로 돌리고 있지만, 입시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2년에 한번 씩 담당사제가 바뀌고 교사의 평균 연령은 19~20세, 평균 경력은 2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라고 성토했다.

최윤경씨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평신도 사목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과 연속적이고 연계적인 사목 체계라고 제안했다.

현재 청소년 사목은 사제가 권한을 쥐고 평신도들에게는 봉사 수준만 요청하고 있지만, 봉사할 자리가 아니라 평신도들이 전적인 직업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청소년 사목의 문제점 중 하나는 본당, 지구, 교구 차원에서 전혀 연계되지 않고 연속성 없이 이뤄진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장기적 사목계획과 그것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사목 계획이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떠난 것은 교회인가, 하느님인가? 
사목과 사업, 분명히 구분해야

▲ 토론자 노우진 신부(살레시오회, 강원도 중장기 남자청소년 쉼터 소장).
이에 대해 노우진 신부(살레시오회, 강원도 중장기 남자청소년 쉼터 소장)는 청소년 사목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사목 활동을 사업으로 인식한다는데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현재 청소년들이 교회 안에 없다고 하지만, 만약 그들이 돌아온다면, 지금 당장 그들을 감당할 능력이 되는지 묻고 싶다”고 성토했다.

노우진 신부는 “교회의 청소년 사목은 주일학교 출석률의 문제가 아니다. 그 둘을 동일시하는 인식이 청소년 사목 정착의 가장 큰 장애”라고 비판하면서, 청소년,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 것인지, 하느님을 떠난 것인지 다시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참석자들은 청년은 교회안 ‘청년회’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하고 있으며, 교회는 이들의 다양한 상황을 포용해야 하고 그들의 존재를 회복시키는 몫을 다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교회 내 청년, 이 시대의 청년에 대해 구체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자리였고, 그동안 교회가 청년의 개별성, 청년이 살아가는 시대성을 외면한 채, 그저 교회 담 안으로 불러들이려 했다는 혐의를 확인했다. 늘 그렇듯 대안은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교회는 이제부터라도 더 개별적이고, 더 다양하고 더 구체적인 청년들의 삶을 만나기 위해 교회의 지평을 넓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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