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모니터링자료는 가톨릭신문 2580~1호와 평화신문 952호이다.

▶기획보도의 완성도와 충실성

교회신문이 새해를 맞아 의욕적인 기획기사를 예고하였다. 가톨릭신문은 1월 1일자 2580호에서 ‘문화’와 ‘영성’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다섯 가지 기획물을 소개하였다. ‘바오로 해 기획 바오로 로드를 가다/ 쉽게 보는 교회미술, 쉽게 듣는 교회음악/ 정영식신부의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 2020, 한국교회를 말한다/ 미디어 교육’이다. 평화신문은 1월 6일자 952호에서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며 역시 다섯 가지 기획물을 예고했다. ‘격동의 현대사 20선/ 지금 우리 교회는/ 이 땅의 평화/ 유학(儒學) 따라 떠나는 신앙여행/ 소록도 이야기’이다.

사실 교회신문은 매체의 특성상 특집과 기획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연초에 ‘알림’을 통한 기획 말고도 연중에 이루어지는 기획기사들은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물론 때로는 완성도나 충실성에 있어서 떨어지는 기사들도 없지 않다.

2007년 가톨릭신문에서 의욕적으로 시작한 ‘공의회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기획물은 공동기획자인 한국사목연구소의 해체로 흔들거리더니 결국 연재는 7월을 넘어가지 못했다. 그야말로 “끝나지 않은” 어정쩡한 상태에 있다. ‘교회학술단체탐방’ 역시 기획의도(2007년 3월 8일)에서 밝힌 것과는 달리 5회만 연재하고 사라졌다. 그렇지만 가톨릭신문이 타 신문에 비해 기획물에 있어서 한 발 앞선 것은 평가를 한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아시아교회가 간다/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사 80장면/ 교부들로부터 배우는 삶의 자세/ 세계 가톨릭신학과 한국신학의 창조적 소통을 위하여’ 등은 의미 있는 기획물이었다.

평화신문의 기획물중 가장 큰 히트(?)를 올린 것은 2003년 5월부터 무려 63회를 이어간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이다. 그 여운을 잊지 못하고 2007년 평화신문은 19주년 특집기획으로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그 후’를 5월 13일부터 연재했지만 한달을 못 넘기고 5회로 중단되었다. 역시 ‘속편’은 1편보다 못하다는 충무로 징크스가 여기에도 해당되는 모양이다. 만약 그것이 중단이 아니라 종결이었다면 독자에게 시작과 끝은 알려줘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의 ‘가톨릭 등록문화재(자랑스런 신앙유산)와 평양교구 80주년’ 기획등의 노력에는 좋은 평점을 준다.

기획기사들은 신문사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알려주는 중요한 보조수단이다. 또한 독자들에게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신문사의 역량을 모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다 치밀한 기획과 자료수집으로 완성도를 높이고, 데스크가 처음의 마음으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충실성은 기자의 눈이 아닌 독자의 눈을 간직할 때 가능하다.

▶읽어서 남 주자

다른 지역에 가서 길을 잘 모르면 물어서 가거나 지도보고 확인하고 가는 것이 안전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사람 엉뚱한 길로 보내어 고생시킨다. 이것은 기사 작성 및 제목 붙이는 것에도 예외는 아니다. 보도 자료에 따른 인용에 익숙하다보면 관성에 젖어 확인하는 노력이 떨어지게 되어있다.

가톨릭신문 1월 6일자 3면 하단에 ‘부로 용원, 서포본당 신설’이란 마산교구 기사가 나와 있다. 편집기자가 제목을 이렇게 달아놓고는 기사를 보지 않은 모양이다. 기사내용은 이렇다. “마산교구는 2007년 12월 26일부로 용원본당과 서포본당을 신설했다.” 이제 아시겠는가? 띄어쓰기가 잘못되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되는 것이다. 기사를 기자가 읽지 않고 보도 자료에 의지하다보니 날짜를 뜻하는 일부(日附)라는 표현이 엉뚱한 지명이 되어 마산교구 어디에도 없는 ‘부로 용원’이란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새해 들어 웃음을 주는 것은 고맙지만 자기가 작성한 기사의 첫 번째 독자는 기자 자신이다. 읽어서 남 주자!


/김유철 200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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