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종로에서 살았다. 당시 어른들은 종로를 중심으로 하는 핵심 구역을 문(門)안, 그리고 동대문과 남대문, 서대문을 경계로 그 밖의 구역을 문(門)밖이라고 불렀고 나는 종로 이외의 구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도통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의 어린 시절은 종로, 그리고 나머지로 구분되는 세계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자랑스런 종로 사람이었다.

화신 백화점과 신신 백화점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그곳에는 아이들을 겁탈하는 변태들이 득실거린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화신 백화점의 꼭데기(아마 6층인가 되었을 텐데)에 있던 영화관에 몰래 드나드는 짜릿함을 즐겼으며,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 들어갈 때, 교복을 신신 백화점에 있던 ‘신생’이라는 교복집에서 맞춰 입었던 기억도 난다. 가끔은 아버지와 함께 새벽 목욕을 하고(당시 목욕탕을 사람들은 목간통이라고 불렀다) 선지국으로 아침 식사를 했던 기억도 있다. 선지국을 먹던 허름한 그 음식점이 바로 지금의 청진옥이다.

당시 나는 수송국민학교라는 공립학교를 다녔는데 말이 공립이지 부모님들이 엄청나셔서 그 직업이 국회의원부터 의사.. 심지어 영화배우까지 엄청 다양했고 매사 성미가 불같고 괄괄하신 어머니는 그 양반들에게 주눅 들지 않으려고 시시때때로 선생님들을 찾아뵙곤 하셨다. (당시 말로 그것을 ‘와이로 먹인다’라고 했다)

아무튼.. 나는 지금도 당시 어른들의 상고머리와, 공단부터 광목에 이르기까지 갖은 천으로 만들어 입었던 치마저고리, 생뚱맞은 양산과 고데머리, 말이 끌고 다니던 달구지, 지프차, 새나라 택시에서 코로나 택시에 이르기까지의 택시들, 보신각 종소리와 산타의 장화 한 쪽에 담겨 있던 크리스마스 종합선물 등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제 나도 오십이 넘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종로에 일주일에 한 번 갈 일이 있다. 그리고 갈 때 마다 슬프다....

종로, 칙칙하고 슬픈 노인들의 해방구 

지금의 종로통에는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 있다. 아직도 그 화려함을 유지하고 있는 종로 2가의 양안(兩岸)을 지나 3가 쪽으로 항해를 하다 보면 탑골 공원부터는 무조건 그 분들이 계신다. 앉아 계시고 서 계신다. 그래서 그런가.. 낙원상가 일대의 음식점에서는 음식 값이 비싸야 4000원을 넘지 않는다. 물가 때문에 아우성을 쳐 대는 이 순간에도 거기 물가는 잘 오르지 않는다. 앉아 계시고 서 계시던 그 분들이 고객인 이상 물가를 올려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말하자면 물가 해방구다. 칙칙하고 슬픈 해방구다...

종로 3과와 4가 사이에 퍼져 있는 이발소에서는 이발비가 3500원이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값을 올려봐야 의미가 없다. 이발소 안에서는 서글픈 도롯도가 흘러나오고 꾸벅꾸벅 조는 손님을 위해 같은 또래의 이발사가 땀을 흘린다.

그 분들은 일이 없다. 사회는 그 분들을... 말하자면 다 썼다. 그 분들은 폐기되었고 아무도 그 폐기물을 재생하거나 수거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허거거걱....

이 무시무시한 문제의식은 나를, 매우 당연하게도 ‘노인 문화’라는 명제로 이끌었다. 4년 전 발을 들이게 된 시니어 연극 운동(말하자면 노인연극 운동)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은 그래서 너무나 다행이었다. 물론 70 넘어 80이 되시는 ‘헹님’들을 모시고 연극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나는 지금 55세 이상의 누님들과 헹님들을 모시고 연극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분들이 70이 되시고 80이 되실 때 까지 함께 하자고 약속을 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나이 들어서 ‘타의에 의한 쓰레기 매립’을 당하기 싫다. 나이가 들면 그 나이가 가질 수 있는 여유와 향취를 마음껏 발산할 것이며 즐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연극쟁이인 것이 너무 기쁘다. 연극의, 아니 연기의 능력은 물론 훈련과 작업에서 발견되고 길러지기도 하겠으나, 그 어떤 훈련과 작업을 다 합쳐도 ‘생의 연륜’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지금 나와 함께 연극 작업 하시는 헹님 누님들은 모두 수십년의 엄청난 ‘생의 연기 훈련’을 하신 분이고 나는 바로 그런 ‘준비된 배우’들과 작업을 하는 것이 지나치게 즐거워지기 시작하고 있다. 왜 즐겁냐고? 그 냥반들... 정말 지나치게 연기를 잘 하시니까...

▲ 연극 '의상실 판타지' 공연 사진.(사진출처/영시니어 아카데미 카페)

헹님 주나들의 '의상실 판타지' 공연

지난 6월 초.. 헹님 누님들과 함께 사고를 쳤다. 홍대 앞 CYC 건물 지하의 소극장에서 3일간 공연을 해 버렸다. ‘의상실 판타지’라는 공연이었는데 내용은 누님들의 워크샵을 합친 것이었고 내가 정리해서 대본을 만들었다. 1시간이 살짝 넘는 공연 중에 헹님, 누님들이 대사를 까먹거나 실수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고 관객은 울다가 웃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대성공이었다. 그리고 그 분들과 나는 지금도 작업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정말 사고를 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한다.

탑골공원에서 종묘 공원에 이르는 곳 여기저기서 더러는 술에 취해, 더러는 그저 멍하게, 극히 일부에서는 화대를 흥정하며 시간을 죽이는 그 분들은 진정, 그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 그 분들은 자기들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숨 가쁘게 이 나라를 일구어 온 분들이다. 그저 출근했고 퇴근했으며 먹었고 길렀다. 내라면 냈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하며 치열하게 살아낸 끝이 고작 보도블록 위의 막걸리 잔이라면 이건.... 너무 슬프다.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노후대책인지 사람들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돈? 글쎄.... 많이 가져보지 못했지만 그게 많다고 노후가 행복한 것은 아마 아닐 것이다. 과연 어떻게 늙어갈까? 그리고 늙어서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것인가.....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키가 그 길을 알려줬고 레닌은 역사의 일획을 그었다. 우리는?

변영국(토마스 아퀴나스)
서울 수송국민학교를 졸업했으며 희곡 쓰고 연출하는 연극인인 동시에 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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