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모니터링 자료는 11월 18일자 평화신문 945호와 가톨릭신문 2574호이다.

‣ 역사적으로는 평가한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곤란하다?

퀴즈로서 모니터를 시작하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선언된 것은 1974년 9월 26일 명동성당의 ‘순교찬미 기도회’였다. 그렇다면 이보다 먼저 이 명칭을 사용한 언론은? 그리고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언론은 어딜까? 그 언론은 다름 아닌 ‘가톨릭신문’이다. 가톨릭신문에서는 현재 ‘한국교회사 80장면’이라는 기획기사를 연재중이다. 그 기획물의 25회였던 2006년 12월 17일자 신문에는 “사회 정의 구현할 전국 사제단 출범”이라는 어깨제목으로 비장한 어투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기획기사는 당시 ‘가톨릭시보’의 보도문을 전해준다. “조국과 정의와 민주회복, 옥중의 지주교와 고통 받는 모든 이를 위한 기도회가 11일 오후 7시 명동대성당에서 열렸다. 2백여명의 신부들과 5백여명의 수도자를 비롯, 1천5백여명의 신자들이 참여한 이날 기도회는 예기치 못했던 지학순 주교의 옥중 메시지 공표와 ‘정의구현사제단’의 결의문 발표로 그 절정에 달했다.” (가톨릭시보 1974년 9월 22일자 1면 중에서)

지난 10월 29일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정구사)이 기자회견을 했다. 일반 언론에서는 난리가 났다. 물론 큰(?) 신문들은 축소 혹은 은폐, 왜곡보도 하느라 더 난리가 났다. 정구사는 11월 5일과 12일 연이어 같은 장소에서 2차, 3차 기자회견을 하고 뇌물자금의 조성과 일부 사용처 및 문제의 기업 2세의 재산 불법축적과정을 밝혔다.

정구사의 공식명칭사용 이전에 이를 자신의 신문에서 먼저 사용했다고 자랑스러워하고 우쭐대던 가톨릭신문(2006년 12월 17일 한국교회사 80장면)이 놀랍게도 정구사의 연이은 세 차례의 기자회견에 대해서는 3주간에 걸쳐 초지일관 벙어리다.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 기업의 로비가 유명한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교회신문에도 작업이 들어가는가? 아니면 자발적 함구인가? 그 기업과 관련된 일이야 일반 언론의 몫이지만 정구사의 활동을 일반 언론에 내어주어서야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시사IN'이라는 주간지의 11월 13일자에는 “군부독재 부순 힘으로 자본 독재에 맞서다”란 제목으로 정구사에 대한 특집기사를 쓰고 있다. 남의 집에서는 우리 집안의 사람에 대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데 집안에서는 멀뚱하게 보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언론의 자유는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이면서 동시에 자본으로부터의 자유임을 명심해야 한다.

‣ 세 명의 기자 고생했다. 그러나...

평화신문은 943호부터 945호까지 매 주간 이와 관련된 사실보도를 단신으로 전했다. 평화신문 조직을 참조하여 말하면 신문국에서 2명, 보도국에서 1명등 무려(?) 세 명의 기자를 투입하여 기사를 작성하였다. 동종 업계 한 신문의 외면에 비하면 평화신문의 보도는 스트레이트성이지만 평가받을 만하다. 아니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그러나 세 명의 기자가 각개전투식의 단신보도가 아니라 팀을 이루어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보도였으면 하는 아쉬움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아무리 기자회견장에 있었다고 한들 보도자료에 의존하거나, ‘카더라’의 인용보도와 일방보도에 그친다면 독자의 알권리는 여지없이 사라지고 만다.

알권리는 신문사나 데스크 혹은 일선기자가 관심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독자의 알권리를 말한다.
냉장고 광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대가 언론이라는 것이다. 

/ 김유철 200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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