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도 매향리의 시선으로 제주 강정을 보살피시라!

▲ 양운기 수사
서 신부님, 신부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벌써 11년입니다. 몸이 모두 소진되어 죽음이 임박했음을 눈치 재치 못할 정도로 힘없는 농민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시고 늘 함께 하셨던 신부님은 그 뜨거웠던 매향리 쿠니(KOON-NI) 사격장 앞에서 미국의 만행에 저항하며 당신의 몸을 마지막까지 태우셨습니다.

2000년의 봄, 여름은 무척 뜨거웠습니다. 그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미국 물러가라, 사격장 폐쇄하라’를 외치고 경찰들과 대치하던 어느 날 제가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작전에 꼼짝없이 포위되어 위기에 처했을 때 신부님은 저를 고립시키는 경찰들을 밀어내고 그 억센 손으로 저를 구출했습니다. 신부님께서 저의 허리춤을 잡고 경찰들에게서 빼낼 때 오히려 저는 신부님의 그 팔뚝의 힘에 놀랐을 정도입니다. 제가 신부님의 팔뚝에 대롱대롱 매달렸으니까요. 순간 ‘아! 신부님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이렇게 구출하면서 살아 오셨 구나’ 하는 생각이 저의 머리를 스쳤습니다.

미 대사관 앞에서 소파(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어느 날 길바닥에 드러누웠을 때, 경찰들이 끌고 가려고 우리들의 사지를 잡아 끌 때, 최종수 신부가 신부님의 목을 껴안고 버틸 때, 우리는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어 있다고 말하면서 한참 웃었습니다. 180이 훨씬 넘는 키, 몸무게 100은 충분히 넘고도 남을 신부님을 경찰들이 끌고 가려고 낑낑 들어 올리는 모습은 한편의 코미디였습니다.

매향리 쿠니 사격장 앞에서 ‘록히드 마틴’이라는 회사에 대하여 저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신부님, 미국 동부 메릴랜드 주에 소재하는 군수회사, 해마다 거액의 정치자금을 미 의회에 기부하고 있는 회사, 이 회사에서 만든 전투기들이 쿠니 사격장을 사용하고 있음을 저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나, 뉴욕에서 태어났어..그러나 분쟁이 있는 곳에 항상 미국이"

▲서 로베르또 신부. 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 ‘나, 뉴욕에서 태어났어, 록히드 마틴에 근무하는 내 친구가 다 말해줬어, 뉴욕 아래 메릴랜드가 있잖아, 미국은 세계의 모든 전쟁을 주도하는 전쟁광이라니까, 록히드 마틴에게 돈을 받아먹었으니까 그 무기를 팔아 줘야 잖아, 미국이 없어도 한국은 충분히 살 수 있다니까, 평화를 깨트리고 분쟁이 벌어지는 곳에는 반드시 미국이 있잖아, 소파는 노예협정이라니까’ 어눌하지만 무리 없이 우리말을 구사하면서 사격장 폐쇄를 소리치던 어느 날 신부님은 무서운 병마가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음을 갑자기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신부님은 우리와 이별을 준비했습니다.

수많은 한국의 수도자, 성직자들이 무관심할 때,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패배주의에 빠져 꼼짝 않고 움직이지 않을 때, 오히려 쓸데없이 반미 활동을 한다고 손가락질 할 때, 계란으로 바위치지 말라며 조소를 보냈지만 신부님은 끝내 눈을 감기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병세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구급차를 타고 가면서도 소파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결국 그 질문이 신부님의 유언이 되었습니다. 질문으로 유언을 대신한 신부님이 떠난 후 그렇게 온몸을 불사르신 신부님의 노력이 있어서 사격장은 폐쇄되었습니다.

신부님, 사격장이 폐쇄된 것 하늘에서 보셨지요? 매향리 주민들 기뻐하는 것 하늘에서 보셨나요? 신부님도 기쁘셨지요? 명동성당 장례 미사 때 매향리 주민들 흐느끼는 소리는 들으셨나요? 구급차에 실려 강남 성모병원에 온 날, 신부님의 마지막 날, 급히 강남 성모병원으로 달려간 문정현 신부님의 그 황망해 하는 표정은 보셨나요?

매향리로 접근하는 사람은 모두 차단하는 경찰 작전 때문에 논두렁을 건너고, 산을 넘고 매향리를 찾아 오셔서 ‘주한 미군 물러가라’ 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셨던 신부님, 신부님께서 그렇게 애쓰셔서 폐쇄시킨 매향리 사격장은 또 다른 모습으로 제주도 강정에 해군기지로 변장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쿠니 사격장 앞, 뜨거운 길 위에서 신부님의 동지로 함께 살았던 문정현 신부님은 제주도 강정에서 경찰에 체포, 연행, 구금을 반복하면서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데 저는 자꾸만 서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문 신부님과 함께 서 신부님이 계시다면 경찰들과 대치하면서, 미군과 투쟁 하면서 깔깔 웃고, 함께 분노하고, 또 웃고 --, 그런 모습들이 자꾸 제 눈앞에 아른 거립니다.

▲ 강정 합동취재팀. 박철순, 트위터 아이디 @ez2dj81

강정에서 해군기지로 변장한 매향리

서 신부님, 지난 여름 강정 구럼비를 지킨다고 제주에 갔습니다. 문득 11년 전 여름 저희들 곁을 훌쩍 떠나버린 신부님 생각이 떠올라 바닷가 구럼비에서 혼자 숨죽여 울었습니다. 사람들이 볼까봐 바닷가 바로 앞에까지 내려가서 눈물을 훔치는데 신부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던 ‘록히드 마틴’이 제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신부님은 떠났으나 ‘록히드 마틴’으로 시작하여 '미국정부-한미상호방위조약-한미주둔군지위협정-한국 정부와 해군-이지스(AEGIS)함-강정해군기지'로 이어지는 거대한 범죄조직의 체계는 유령처럼 한국 백성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격장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더 큰 욕망의 덩어리로 버젓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록히드 마틴’은 쿠니 사격장을 관리했던 그 술수와 음흉한 미소로 한국정부와 해군을 움직이는 모습이 잔잔한 바다 물 위에 비쳐졌습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거대하고 무서운 폭력을 재생산하는 미국과 그를 충실하게 추종하는 전쟁 세력들은 틈만 나면 호시탐탐 우리 삶을 파괴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나고 우리 민족의 아픔이 하염없는 크기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 신부님의 동지인 문 신부님과 예수회의 박도현 수사님과 이영찬 신부님이 해군기지 부지 앞에서 기지건설에 항의하다 다시 경찰에 체포, 연행, 구금되었습니다. 기지 앞에 신부님이 함께 계셨다면 경찰들에게서 저를 구출할 때처럼 왜소한 박 수사님을 경찰들 품에서 신속히 낚아채셨을 것입니다. 왜 하늘에서 얼른 내려오셔서 저를 구출 할 때처럼 세 사람을 구출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녕 보고만 계실 것입니까? 제가 대롱대롱 매달렸던 그 팔뚝으로 한번 구출해 주시면 안 된단 말 입니까? 그 무쇠 같은 팔뚝 한 번 더 쓰면 안 된단 말입니까? 한 팔은 이 신부님을, 한 팔은 박 수사님을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는데 말입니다.

서 로베르토 신부는 미국에서 태어나 1959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로마교황청 그레고리안대학에서 유학하고 성골롬반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1964년 한국으로 왔다. 그 뒤 빈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본당신부 생활을 하다가 88년부터 99년 5월까지 충남 당진의 한 시골마을에서 작은 오두막에 살며 농촌사목을 했다. 직암암으로 2000년 7월29일 선종했다. ⓒ한겨레신문

로베르도 신부님 이승 떠나시던 날...산산조각이 난 영정
"신부님, 강정에서도 뭐라 할 말씀하셔야"


11년 전 여름, 신부님 떠나시는 날 우리는 신부님께서 소리치셨던 미 대사관 앞에서 명동성당까지 걸어가는 기습시위를 계획 했습니다. 제가 신부님의 영정을 들고 광화문 거쳐 을지로까지는 진입했으나 명동 롯데 백화점 근처에서 경찰에 막혀 난타당하고 신부님의 영정은 길 위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신부님은 그렇게 삶의 마지막까지 길을 지키셨습니다. 밀고 밀리는 싸움을 하며 우여곡절 끝에 명동성당에 도착했을 때 미사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성당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성당 마당 저쪽 한 구석에서 숨죽여 흐느끼던 충남 당진 농민들이 있었습니다. 신부님, 그들의 흐느낌을 보셨습니까? 지금 강정에서 농민들이 흘리는 눈물도 신부님께서 그토록 아끼셨던 당진 농민들의 눈물과 똑 같은 눈물입니다. 신부님,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 그토록 농민들과 함께 살고 싶으셨던 신부님, 왜 강정 농민들의 절규는 들리지 않으십니까? 동네가 다르다고 그러십니까?

정녕 외면하고 싶으신 것입니까? 신부님의 몫이 아직도 남아 있음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매향리 쿠니 사격장이 강정 해군기지와 다를 바 없음을 신부님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전쟁터 같은 강정마을 보이시지요? 매향리 전만규와 같은 마을대표 강동균을 비롯하여 매향리에서 함께 싸웠던 평통사 처장 김종일, 고유기 집행위원장등이 구속된 상황을 알고 계시지요? 구금, 구속, 벌금 등 주민들의 삶이 이미 더 이상 황폐할 것도 없습니다. 주민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공동체는 파괴된 것 다 보고 계시지요? 신부님, 뭐라고 한마디 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신부님, 가을 바람타고 강정 앞바다 구럼비 위에 한번 나타나셔서 ‘해군기지 중단하라, 록히드 마틴 물러가라, 나쁜 미국 놈들 물러가라, 나만 빼고’라고 껄껄 웃으시면서 한번만이라도 소리쳐 주실 수 없으십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 그래 주시기만 한다면 강정 농민들과 함께 애쓰는 사람들의 지난 4년의 슬픔을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신부님의 동지인 문정현 신부님도 더욱 힘이 솟을 것입니다. 당신이 애타게 그리운 이유입니다.

양운기 수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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