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김인국]

맏아들이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싫습니다.”(마태 21,29)

당신도 알다시피 지금 제주 강정마을에 1조원대 초대형 건설프로젝트가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안전제일’이라는 입간판 옆에 ‘국익’과 ‘안보’라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습니다. 해군이 앞장서고 정부가 힘껏 밀고 있습니다만 아시는 대로 허수아비들을 앞세워 노다지를 만지는 귀한 손들은 따로 있습니다.

삼성물산과 대림건설과 같은 재벌 건설사들 그리고 결코 얼굴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군산복합체는 이번에도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모르긴 해도 이렇게 귀여운 어리보기들이 또 어디 있으랴, 할 것입니다. 마음껏 파먹고 빼먹고 통째로 들어먹어도 그저 희희낙락 찬양일색이니 말입니다. 쪽빛 바다가 결딴나고 거기 살던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우리 마음이 그 쪽으로 쏠리진 않습니다. 우선 내 처지부터 아슬아슬하거니와 그런 일쯤이야 일상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개가 사람을 물었다면 뉴스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지겨운 생각마저 듭니다. 평택 대추리에서 보았고 용산에서 신물이 나도록 겪었던 일입니다. 하도 지긋지긋하니까 지금 강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고 지냅니다.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 좀 하여라.”(마태 21,28)

하지만 마음 깊은 데서 치밀어 오르는 화만큼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당신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눈멀고 귀먹은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분통이 터집니다. 이러다가 다 망하고 다 죽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대로 놔두면 전멸입니다. 이번 주일에 들은 복음말씀 때문에 저도 마음이 몹시 불편합니다. “아들아,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 좀 하고 와야겠다!” 하시던 대목 말입니다.

대뜸 “싫습니다!”하는 외마디가 튀어나갈 뻔 했습니다만 곧바로 “왜 너희는 하루 종일 이렇게 빈둥거리며 서 있기만 하느냐?”(마태 20,6) 하는 꾸짖음이 메아리치더군요. 못 본 체 하면서 좀 편하게 지내고 싶은데 이런 목소리가 정신을 흔들어 깨웁니다. 짜증스럽고 야속합니다만 이게 우리 운명이니 어쩌겠습니까.

마음 여리고 착하신 그대여! 실망에 낙망이, 낙망에 절망이 겹쳐서 힘드실 줄 알지만 우리 강정마을에 가봅시다. 제주는 한국천주교회의 막내가 아니던가요? 다른 형제도 아니고 막둥이가 저렇게 혼자 울도록 내버려 둘 순 없습니다. 고맙게도 평소 제주의 아리고 슬픈 역사를 어루만지시던 주교님이 강정의 평화를 천명하시며 마치 전군비상령을 내리듯 전국에 기도를 호소하셨는데 어찌 강 건너 불구경만 하시겠습니까?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마태 21,29)

뜬금없는 소립니다만 세상의 ‘팔십’이 허구한 날 ‘스물’에게 얻어맞고 사는 이 얄궂은 까닭을 아시는지요? 같은 맥락인데 해방 이후 친일파 세력이 어떻게 부활했으며 또 오늘까지 이 나라의 실질적 지배권을 손아귀에 넣고 있는지 아십니까? 저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던 이승만의 말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배운 놈들, 가진 놈들, 힘센 놈들은 언제나 똘똘 뭉쳐 불법을 저지르면서 성실한 자세까지 견지하고 게다가 늘 연구하고 궁리한단 말입니다. 반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소한 이유로 갈라지고, 상심하고 낙심하여 주저 않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실력과 근력의 차이가 오늘의 불공평과 불의를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도 알고 보면 너무나 간단합니다. 곧 한국시리즈가 시작될 텐데 야구장에 모이는 사람들이 하룻저녁만 잠실 대신 서울광장에 다녀오면 반값등록금은 금방 해결됩니다. 단풍놀이 떠나는 사람들이 하루만 산 대신 강으로 나가면 저 끔찍한 사대강 문제도 대번 해결됩니다.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상상력의 빈곤입니다. 야구장의 함성으로 외치거나 관광버스의 흥으로 노래 한 번 불러보세요. 그러면 청와대 뒷산은 대번에 경건한 반성의 처소가 될 것입니다.

자, 사랑하는 그대여! 말과 글은 차고 넘칩니다. 이제 행동합시다. 딱 한 번만 다녀옵시다.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는 형제들에게 날아갑시다. 손 한 번 잡아주고, 미사 한 번 드려주고 같이 별 헤면서 밤을 보내고 돌아옵시다. 그것이면 족합니다. 부산쯤 가서는 삼백일이 가깝도록 크레인 사투를 벌이고 있는 ‘소금꽃’ 김진숙 님과 동료 노동자들을 향해서 손 한 번 흔들어 주고 옵시다.

김인국 신부 (청주교구 옥천성당,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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