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변진흥]

오늘 이 시대를 특징짓는 갖가지 형태의 염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정치염증이다. 염증이란 “어떤 장애성 자극에 대한 생체조직의 방어반응”을 뜻한다. 즉 비정상적인 현상이 거듭되는데서 오는 피곤함과 짜증이 불러일으키는 무기력한 반응이 염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 반응은 결국 반응을 일으키는 주체의 어느 한 구석이, 아니면 가장 중요한 기능이 장애를 가져올 것이라는 명백한 예고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히 예상되는 장애현상에는 눈감아버리게 만드는 마력. 그 마력을 지닌 점도 불가사이하다. 아마도 그것은 오로지 권력을 유지하고 되찾기 위해 무슨 짓이든 일으키고 벌여나가는 ‘어둠의 세력’이 그 염증을 불러오는 동시에 이에 중독되도록 만들어, 그 어둠이 불러오는 재앙 앞에 우리 자신은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증에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중독성이 깊어가는 21세기, 그 시작과 끝을 알고 싶다.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정치도 종교도, 스타도 언론도 모두 한곳으로 쏠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뻔히 눈에 보이는 재앙의 싹을 키워나가는 모습에 넌더리나는 보통사람, 무지렁이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또 쌓이는 최후의 은신처가 염증이라고나 할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좋아하고 손뼉치던 1박2일의 강호동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수 천 수 만 명의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던 인순이 마저 주저앉히는 ‘돈’의 마력 앞에 누군들 바로 서 있을 수 있겠는가 싶다.

이제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선을 시작으로 총선과 대선 바람이 불 것이다. 9월 초에 태풍처럼 불어와서 3일 돌풍으로 매듭지어진 ‘안철수 신드롬’은 그 거센 바람의 전조일 뿐이다. ‘안철수 현상’으로까지 회자되고 있는 이 새로운 충격은 정치염증의 심각성을 느끼게 만든 예방주사이긴 하지만, 이젠 어떤 예방주사에도 만성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고질병 즉 ‘한국병’을 치유할 새 ‘판’을 짜는데 까지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비정치적 정치’가 기존의 ‘정치적 정치’를 위협하게 만들었다는 지적과 함께 그 동안 선거 때만 되면 색깔론을 앞세워 ‘좌우이념의 바벨탑’을 쌓아온 허상의 기성 정치 행태를 ‘상식이 통하는’ 새로운 행태의 정치로 바꾸지 않고는 정치염증의 빙하를 깨뜨릴 수 없다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뿐. 이에 그저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에게 한숨을 내쉴 짬을 내준 것이 고마울 뿐이다.

9.11 10주년, 그 재앙의 그림자

▲ 2011년 9월14일과 21일 추석 합본호로 발간된 뉴스위크 특집 한글판의 표지.

21세기의 슈퍼파워 미국인들도 우리들처럼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9.11 10주년을 맞이하여 토해내는 한숨도 바로 그런 정치염증을 불러온 재앙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2011년 9월14일과 21일 추석 합본호로 발간된 뉴스위크 특집 한글판의 표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쌍둥이 빌딩인 뉴욕무역센터에 납치된 비행기가 충돌하여 무너지는 참혹한 모습의 사진이 자취를 감추고, 예상과 달리 “공포 복수심 사라지고 희망을 되찾다.” 라는 표제와 함께 파란 하늘을 여객기가 나르는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그 메시지가 너무도 간명하고 신선했기 때문이다.

과연 미국인들에게 9.11은 무엇이었고, 또 무엇을 남겼는가? 사실 9.11은 미국에만 재앙이었던 것이 아니다. 21세기를 맞는 지구촌 모두에게 재앙이었다. 아니 미국은 이를 ‘지구촌 모두의 재앙’으로 만들어 버렸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은 9.11사태를 겪고 두려움과 불안에 떨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 결과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최소 세 개의 이슬람 국가 정부를 직 간접적으로 넘어뜨렸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인들은 10년 전보다 더 힘이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유력 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를 ‘잃어버린 10년’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9.11이 가져온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애초에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된다.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정도의 모든 정보와 힘을 가진 미국이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일까?

뉴스위크의 앤드류 설리번 기자에 따르면 이런 잘못은 9.11 이후 선포된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이 미국을 끝없는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 이웃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한데서 비롯되었다. 가장 힘 있는 자가 주위의 모든 이웃을 의심하고 적으로 돌려버리는 그곳에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평화를 지켜야 할 자가 평화를 파괴하는데 앞장섰을 때 누가 이에 대항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숨죽여 염증만 키울 뿐이다.

9.11 이후 10년간 미국은 대테러전쟁에 9천억 달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추가로 2조6천억 달러를 퍼부었다. 이로 인해 오히려 미국은 실업과 부채에 시달리게 되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등장시킨 금융상품들은 결국 미국발 금융위기를 불러와 전 세계경제를 강타했다. 아시아와 유럽연합을 휩쓰는 경제위기도 미국의 대테러전쟁 비용이 전가된 것. 그 여파가 어디에까지 미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미국은 ‘대테러전쟁’보다 더 두렵고 상시적인 재난에 봉착해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온난화로 인해 거대 공룡으로 변해버린 허리케인과 태풍, 해일은 테러도 멈추지 못했던 뉴욕지하철을 멈추게 만드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것이다. 대자연이 테러보다 더 무섭게 새로운 공포의 적으로 등장하는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이제 점차 9.11이 불러일으킨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깨우치고 있다.

설리번 기자는 9.11이 불러일으킨 분노가 국토안보부라는 공룡 관료조직을 신설하게 만들고, 세계 곳곳에 고문 수용소를 세워 역겨운 고문 기법을 대통령과 부통령이 승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이로 인해 전 세계에서 미국의 도덕적인 지위는 추락하고,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빈 껍데기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는 “이를 ‘승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네오콘 뿐이다.”라고 말한다. 설리번은 이제야말로 미국은 공포와 복수심을 버리고 희망을 되찾는 새로운 결단이 요구되고 있다고 말한다.

▲ 3.11 쓰나미는 천재(天災)와 인재가 결합된 복합재해였다.


3.11, 그 재앙의 그림자

미국의 9.11이 온전히 인재(人災)였다면, 일본의 3.11은 천재(天災)와 인재가 결합된 복합재해였다. 금년 3월11일에 일본 동부지역을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이로 인해 파괴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사상 유례가 없는 자연재해였지만, 이보다 더 큰 끔찍한 인재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진도 9.0에 이르는 대지진과 그 여파로 밀어닥친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 해안 500km를 초토화시켰다. 이는 강릉에서 부산까지 동해안 전체를 초토화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그 결과 2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1만여 명에 달하는 부상자, 8만 명이 넘는 피난민이 발생했다. 항시적인 재난에 대비해온 일본사회에서 이처럼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다.

더구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는 더 심각한 재난을 불러왔다. 제1호기와 3호기의 수소폭발, 제2호기의 연료봉 노출 그리고 제4호기의 화재는 현재도 방사능물질을 파생시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레벨 7단계의 심각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1천2백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우리들은 거의 무신경한 상태.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경우 방사능이 1천4백km 까지 퍼졌다는 통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에는 지구의 자전방향으로 편서풍이 불어서 안심해도 된다는 것 같은데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지..... 우리 원전에 대한 불안감을 의식한 또 하나의 중독현상 유포는 아닐까.

최근 일본 정부는 쓰나미 쓰레기 경보를 발표했다. 한편으로는 일본 정부가 원전사태 후유증을 치유하는데 철저한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지만, 어쩐지 미국을 의식한 제스처로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태평양을 사이에 둔 것이 아니라, 불과 1천km 정도 떨어진 한국 국민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식도 설명도 없는 일본 정부. 아니 이는 고사하고, 오히려 한일감정을 넘어서 즉각적인 구조대 파견과 인도적 지원을 서둘렀던 한국민의 재난 복구지원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던 일본 정치인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사회는 3.11이후 커다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산하 국제사업단(IPCR)이 지난 9월15일부터 17일까지 올림픽파크텔에서 개최한 국제회의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건립과 종교인의 역할’에서 류정길 에코 붓다 대표는 일본이 3월11일에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전후시대로부터의 단절과 재해시대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고하여 참가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한마디로 일본은 아니 일본 국민은 2차 대전 패전국가의 오명을 씻기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오던, 그래서 과거사마저 외면하던 ‘전후시대(戰後時代)’로부터 주위의 따뜻한 시선과 배려의 소중함을 알고 상호의존을 존중하는 ‘재후시대(災後時代)’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일본사회의 의식구조는 천황 중심의 군국주의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사회의 무지렁이들은 과거의 대동아공영권 중독현상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관제데모 아니면 선거를 위한 지지집회만 열리던 도쿄 한복판에서 3.11 일주일 후인 3월17일에 터져 나오기 시작한 원전 반대시위는 지난 4월 원전반대 록페스티벌로 이어졌고, 5월8일에는 일본 시민 1만5천 명이 모여 “깨끗한 공기와 땅을 돌려 달라!”고 외치는 대규모 시위로 확대되었다. 이후 크고 작은 시위가 계속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난 9월19일에는 도쿄 도심에 5만 명이 모여 “더 이상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는 없어야 한다.”, “원전은 필요없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부채로 남는 유산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 이미 일본은 이들의 힘찬 목소리로 원전 재가동을 막아내고 있다.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모두 53개이다. 이 가운데 현재 가동 중인 것은 13곳. 일본 원전은 13개월마다 정기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단하고, 순환 수순에 따라 재가동해 왔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주민들이 자신의 지역 내에 있는 원전 재가동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13곳이 가동하고 있지만, 정기점검을 위해 가동을 차례로 멈추게 되면 과연 어떻게 결말을 짓게 될른지 흥미롭다. 겉으로는 순한 양처럼 국가주의에 이끌려 가던 일본인. 그러나 한번 미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일본인 특유의 기질, 그 끝이 어디인지도 보고 싶은 것이다.

▲ 일본원전.


9.15 정전(停電) 대란, 그 재앙의 그림자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9.11이나 3.11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 역시 자연재해와 인재에 취약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또한 이에 대처하는 능력에 있어 아직도 미국이나 일본에 비할 수 없는 후진국형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었다.

단적인 예로 주요 언론 모두가 9.15 정전대란이 국가안보와 사회기능 유지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중대한 사안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예고 없이 도로의 신호등이 꺼지고, 아파트와 사무실, 특히 산업시설과 가두리양식장에 공급되는 전기까지 차단되어 발생한 민간의 피해도 막대하지만, 전방 기지를 포함한 군 시설 120여 곳에까지 정전이 발생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갑작스런 정전사태에 대비한 대책 마련도 오리무중이란 점에서 우리 사회의 재난대처능력 부재에 대한 우려는 증폭일로에 있지만,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여기에서 염증이 도지고 또 도지는 것이다.

특히 지난 7월에 내린 집중호우와 8월에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무이파 태풍은 올해에만 1조9917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가져왔고, 수도권에서도 산사태로 인명피해를 가져오는 등 엄청난 재난에 직면해 오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자연재해는 앞으로도 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인해 냉해와 집중호우, 태풍 등의 영향력을 키우게 되고, 이로 인해 도시와 내륙지방 그리고 해안에 이르기까지 더욱 더 심각한 형태로 무차별적인 피해를 불러올 것이란 점에서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정해걸 의원(한나라당)은 최근 4년간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한 피해 복구금액이 총 2조8649억13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연도별로는 2008년 44억5900만원, 2009년 689억4700만원, 2010년 7997억9500만 원으로 매년 급증했으며 올해에도 무려 1조9917억 원에 달하는 등 사상 최대의 피해를 초래했다고 9월18일 밝혔다. 여기에 4대강 사업에 투입된 재원까지 합치면 누구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쏟아 부어지는 금액이 얼마가 될지.... 그 천문학적인 수치에 놀랄 뿐이다. 결국 이처럼 피해의 빈도와 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상승시켜가고 있는 자연재해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부실할 경우 우리의 경우도 자연재해와 인재가 합쳐지는 복합재해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 후쿠시마 원전폭발.

반성과 희망의 내일을 향하여

미국 뉴스위크지는 9.11이 미국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두려움을 키워 자멸적인 반응 즉 자신뿐 아니라 세계를 파멸시키는 재앙을 불러왔다는 점을 통렬히 지적했다. 무고한 사람을 고문하고, 헌법을 무시하고, 그러다가 파산 지경에 이른 미국은 미국의 본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앤드류 설리번 기자는 이를 되새김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미국은 하나의 문명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실수의 대부분을 고쳐나갔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이야말로 미국 민주주의가 건재하다는 증거다. 그러나 두려움은 단순한 실수보다 더 극복하기 힘든 적이다. 희망만이 두려움을 이겨낸다. 그리고 희망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 사안이다. 미국이 다시 희망을 선택할 때까지 전쟁은 미국인의 마음속에서 계속된다. 결단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오바마의 미국이 더 이상의 전쟁을 포기하고 희망을 선택할 것인지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차기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가 무기수출시장을 포기하고, 쇠고기, 밀가루, 옥수수 수출시장을 포기하면서까지 ‘21세기 인류사회의 재기(再起)’ 희망을 선택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가이성은 아직도 마비상태이지만, 일본인들의 생존의지를 담은 ‘생존이성’은 조금씩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를 침략하여 식민지화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치며 아시아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일본, 과거사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외면하는 일본, 역사왜곡 독도문제 조어도문제 등으로 아시아 갈등 한복판에 있는 일본에서 벗어나 세계적 대재난을 이웃과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새로운 자각과 희망을 간직하는 새 일본으로의 의식전환을 저 밑바닥에서부터 조금씩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젠 남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를 장애에서, 중독현상에서 풀어내는 일이다. 우리도 좌와 우 모두 한국전쟁에서 저마다 동포를 학살하고 고립시키며 단죄한 과오, 베트남전쟁을 비롯한 해외 파병에서 저지른 과오, 독도문제에 있어서도 저자세외교로 공동규제수역을 수용한 과오 등에 대해 처절한 자기반성과 함께 미움과 두려움이 아닌 진정한 인류애로 장애를 바로 잡고, 그 재앙의 그림자를 벗어나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좌나 우 모두 상대방의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만 노리는 한심한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남북화해와 상생정치의 복원과 같은 바로 그 상생의 길이 지난 수십 년 간 키워온 갖가지 염증을 치유하는 첫걸음이다.

변진흥 (가톨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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