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맹주형]

며칠 전 두물머리 대안연구단 최종 결과 발표회를 마치고 그동안 애써주신 학계와 단체 연구자들과 그날 발표회에 참석한 두물머리 농민들과 뜻을 같이 하는 생협 식구들, 두물머리 농민들이 국회의원회관 신축공사장 옆 건설 현장 식당에 모여 앉았습니다. 저녁밥으로 나온 얼큰한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돼지고기 두루치기 그리고 공기 밥을 나눠먹으며 그동안 서로의 수고를 고마워하며 막걸리 한잔도 나누었습니다.

두물머리 미카엘라, 로사리아 자매님들과 밥 먹으며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옆자리에 계시던 병인 형님이 자리를 옮겨와 한잔하라고 잔을 건네십니다. 병인 형님은 맥주나 막걸리를 드시면 꼭 탈이 나는 것을 아는 제가 “형님은 막걸리 안 드시잖아요?”했더니 병인 형님은 “한잔 먹고 탈나나, 두 잔 먹고 탈나나 괜찮아.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한잔해야지. 자, 맹부장도 한잔해...”하십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경기도 김문수 도지사도, 양평군수도 마련하지 못한 팔당 두물머리 농민들의 대안 모델이 반갑고 자랑스러워 저도 한잔 비웠습니다.


유기농 마을 없는 유기농대회?

지난 9월 7일 두물머리 농민들의 하천 점용권과 관련된 취소 소송 2심이 열리는 서울 고등법원에 갔습니다. 그 자리에 MBC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에서 두물머리 농민들의 이야기를 찍겠다며 VJ가 찾아왔습니다. 내심 지방자치단체 홍보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프로여서, 두물머리 농민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다룰 수 있겠냐는 생각에 별반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 실제 방송된 내용을 보니 두물머리 농민들과 유기농지를 방치한 채 개최되는 세계유기농업대회에 대한 제법 진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왜곡되지 않은 농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무척이나 고마웠습니다.

그날 방송 가운데 두물머리 임인환 농부가 딸기를 심기 위해 밭으로 가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언제 땅을 빼앗기고 쫓겨날지도 모를 판에 왜 또다시 딸기를 심느냐?”는 담당 피디의 질문에 인환 농부, 그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그래도... 심어야지요... 그게 농부의 일이니까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방송 끝나자마자 인환 농부에게 방송 잘 봤다고, 힘내시라고 문자 보냈습니다. 그러자 인환 농부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딸기 밭 만들고 있어요. 내년 딸기... 우리농 실무자 분들 다 오세요. 염원을 가지고 내일 딸기 심습니다..."라고.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

이명박 정권 들어 우리에게서 사라진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뽑으라 하면 저는 ‘치유’를 말하고 싶습니다. 가족의 끼니를 걱정하며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 노숙자들에 대한 치유. 공권력에 의해 상처 입은 시민들에 대한 치유. 자본에 의해 상처 입은 노동자들에 대한 치유. 힘 있는 자들에게 편향된 법질서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치유.

묻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진행된 개발로 파괴된 자연에 대한 치유. 이런 치유가 사라졌고, 치유가 사라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때론 불안의 눈빛 속에, 때론 분노의 눈빛을 삭히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두물머리 마지막 남은 네 농부들이 다시 갈고 있는 팔당 유기 농지를 보며, 다시 심어지는 딸기 모종에서 ‘치유’를 보았습니다. 수 년 동안 이어지는 가공할 공권력과 위협과 회유에서도 다시 고개 숙여 땅을 갈며 모종을 심는 농민들의 얼굴과 흐르는 땀에서 치유를 느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죽이려하는 이들을 끝내 용서하고, 치유하려 애쓰는 예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맹주형 (아우구스티노)
천주교 환경사목위원회 교육기획실장, 4대강사업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 집행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