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에 고향을 찾은 떼제의 수사, 신한열


지난 11월 19일 저녁, 합정동에 있는 예수살이 공동체 밀알의 집에서는 프랑스 떼제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신한열 수사를 초대하여 떼제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궁금한 것을 풀어나가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떼제 공동체(The Taize Community)'는 프랑스 동부 클뤼니 근처 작은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떼제 공동체'의 창설자인 로제수사는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화해'를 구체적으로 이루어가는 봉헌된 삶을 사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 생각했다. 2차대전으로 유럽이 분열되고 폐허가 되어가던 1940년, 그는 '화해'의 구체적 징표가 될 수 있는 수도공동체를 프랑스 '떼제'에서 시작한 것이다.

처음 입회한 6명의 형제들은 모두 개신교 신자였지만, 1969년부터는 가톨릭 신자들도 입회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해 1960년, 1961년에는 가톨릭 주교들과 개신교 목사들이 한자리에 초대되었는데, 이러한 회합은 종교개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한다. 떼제에서는 교리를 설법하지 않는다. 다만 겸손과 청빈과 화해이 삶을 살면서 촛불이 켜진 조용한 성전에서 그저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신의 초라함을 고백하는 '침묵의 기도'를 드리고, 노래하며, 빵 한 쪽과 코코아차를 나눠 먹음으로써 일치를 경험한다.

신한열 수사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3개월 여정으로 단순한 마음으로 떼제로 향하였으나, 이내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서 약 2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한열 수사는 떼제의 지나간 역사보다 ‘오늘’의 이야기를 하길 원했다. 떼제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희망과 신뢰에 관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처음 떼제공동체를 시작한 로제 수사는 1940년 “왜 그리스도인들은 나누어져 있을까”하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화해, 그리고 용서를 지향하며 형제들의 공동체를 창설하였다. 떼제공동체는 기부를 받지 않고 스스로 일해서 번 것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자본을 축적하지 않기 때문에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어려운 지역에 학교를 설립하는 경우에도 경영이나 관리는 하지 않고 인도적인 지원만을 한다고 한다.

신한열 수사

떼제 공동체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청년’이다. 억압의 전통을 거부하는 것과 동시에 세상과 교회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떼제 공동체는 1974년 부활절에 ‘젊은이들의 공의회’를 개막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각국의 젊은이들은 떼제로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부활시기에 떼제를 찾는 젊은이만도 매년 약 3천 명에서 5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그는 “떼제 공동체는 ‘신뢰의 순례’를 하고 있는 공동체인데, 신뢰는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엄청난 힘이 아니라 매일매일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떼제는 가난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 다음으로 교회 내에서 발언권이 적은 청년들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떼제는 질서보다는 조화를 살아내는 공동체로 일을 잘 못하는 젊은 형제에게도 기회를 준다고 한다. 신 수사는 “맡기는 것, 그것이 곧 신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왜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떼제로 몰려오는 것일까? 그 이유를 신 수사는 ‘함께 사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에 대한 갈망 때문이라고 답한다. 나누어져 있으면 복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어와 교회, 그리고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고 경계를 뛰어넘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고 떼제공동체는 삶으로 가르친다. 한편 신 수사는 떼제공동체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일뿐 떼제가 중심이 아니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떼제는 작아지고 낮아져야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떼제’를 프랑스에 있는 어느 작은 마을에 국한해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교회와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신한열 수사가 이 땅에서 밝은 희망과 신뢰를 찾으셨을지 자못 궁금하다.

/배은주 200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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