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최후의 보루 ‘두물머리 진지’를 가다

벌써 사흘이 지났나, 지난 19일(월) 처음으로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과 양서면의 강변길을 밟아보았다. 살아 온 세월이 제법 긴 편이니 ‘두물머리’ 강변길이 처음은 아니지만 4대강 파괴사업으로 강이 온통 호수로 변해버린 이후로는, 그리고 4대강 파괴사업 저지를 위해 두물머리 강변에서 매일같이 ‘생명평화미사’가 거행된 이후로는 처음 밟는 길이니 ‘처음’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아! 강을 잃은 이후로는 정말 처음이다.

사사로운 얘기를 하나 곁들이지만, 19일은 내 모친의 88회 미수(米壽) 생신이었다. 폐암 말기와 임파선 암, 암세포가 엉덩이뼈로 전이되어 확장되면서 바로 그 부위가 골절되어 몇 달 동안 일어서지도 못했던 노친이 기적같이 완쾌되신 이후에 맞으시는 미수 생신이니, 노친을 모시고 사는 나로서는 당연히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런데 나는 그날 먼 길 출타를 하게 되었다.

▲ 간절한 기도. 매주 월요일 저녁의 여의도 '거리미사'에는 지금까지 마흔한 번을 계속 참례했지만, 매일 거행되는 두물머리 생명평화미사에는 한 번도 참례하지 못하여 무거운 죄의식을 안고 살아야 했다. 9월 19일 드디어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강변을 찾았다. 모시고 사는 노친의 88회 미수 생신에… ⓒ 지요하

그동안 늘 두물머리를 생각하며 살았다.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 강변에서 지난 2010년 2월 17일부터 매일같이 오후 3시에 ‘생명평화미사’가 거행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29일 이후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만사제폐하고 서울 여의도를 가서 7시 30분에 거행되는 ‘거리미사’에 참례하는 생활을 줄기차게 이어오면서도(지금까지 마흔한 번을 갔다),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에는 아직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거운 죄의식마저 가지게 했다.

그런 죄의식 속에서, 오는 9월 26일(월) 오후 2시에 거행되는 전국 집중 생명평화미사에는 반드시 참례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다. 26일 이전에 두물머리를 한 번 다녀오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26일의 전국 집중 생명평화미사는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참례를 하거나 취재를 하고 또 글을 쓸 터였다. 그러니 그 일은 그 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미리 두물머리를 가서 총체적인 취재를 한 다음 26일의 전국 집중미사를 좀 더 도울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합당하리라는 생각이었다.

4대강 반대세력 어디 있느냐고?

충남 태안에서 경기도 양평군 강변을 가는 일은 수월하지가 않았다. 시간은 2시간 남짓 걸렸지만 유료도로를 여러 번 바꾸어야 했고, 내비게이션 아가씨의 안내에도 순간적으로 길을 놓쳐 좀 더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운전을 하면서 <조선일보>의 박정훈이라는 이가 쓴 글을 떠올리곤 했다. 사회부장을 지낸 기사기획에디터라고 했다. 9월 14일치 신문에 난 <4대강 난리 난다던 사람들의 침묵>이라는 칼럼에서 그는 4대강 비판세력을 행해 “지금은 어디 있느냐”고 일갈하면서 “오류를 인정하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기고만장’의 실체를 접하는 느낌이었다. 사실을 마구 왜곡하면서 정부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따르고 전하는 그는 이미 ‘승리감’에 취한 것 같기도 했다. 철없는 충성 독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복창을 해댄 “4대강 반대세력 어디 있느냐”는 일갈에는 청맹과니들의 속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4대강 반대세력에는 한 번도 제대로 관심을 주지 않았으면서, 다시 말해 반대세력의 눈물겨운 움직임들과 뜨거운 주장들을 한 번도 지면에 ‘자세히 정직하게’ 반영하지 않았으면서 느닷없이 “어디 있느냐”고 소리치는 것은 너무도 뻔뻔스러운 망발이 아닌가. 또 그것은 언어도단의 전형이 아닌가.

그가 유치한 거짓 글을 쓰고 있는 시각에도 여의도 강변에서 ‘시대의 횃불’은 계속 타오르고, 두물머리 강변에서는 ‘강의 고통’을 끌어안고 있는 십자가가 매일같이 계속적으로 메시지를 발현하고 있건만, 그는 왜 그 쪽으로는 전혀 눈을 주지 않는가. 오늘도 수많은 국민들이 강의 파괴와 상실을 뼈아파하며 강의 원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이유를 그는 왜 외면하며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는가.

먹물의 한계에 사로잡혀 사는 <조선일보> 기사기획에디터 박정훈에 대한 연민도 한 가슴 끌어안은 채 나는 양평군 땅에 들어서면서, 양평군은 이제 강이 없는 고장, 강 대신 호수만을 가진 동네임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두물머리 프란치스코 수도회’

▲ 강변 경작지의 십자가들. 두물머리 유기농단지 농민들은 강변 경작지들에 수많은 십자가를 세워놓고 두물머리 보존을 위해 기도하며 농사를 짓는다. ⓒ 지요하

서종면 문호리의 한 강변 음식점에서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윤종일 신부와 최 수사를 뵈었다. 서해 바닷가에서 온 사람이 강에서 나는 생물이 아닌 갈치와 고등어 따위 바다 생선으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좀 서운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식사 후 근처에 있는 꼰벤두알 프란치스코 수도회(한국본부)를 난생 처음 구경하고, 성당에서 잠시 기도를 했다. 윤종일 신부는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라는 이름을 이제는 스스로 ‘두물머리 프란치스코 수도회’로 바꿔 부른다고 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그만큼 두물머리와 일체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였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창설자로 모시고 있는 수도회는 꼰벤두알, 카푸친, 작은형제회 등 3개인데,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꼰벤뚜알 수도회는 특히 양서면 두물머리 일대의 유기농업단지 농민들과 형제적 공생 관계로 연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꼰벤뚜알 수도회는 위치적으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와 강변 일대 유기농단지를 끼고 있는데다가, 수도회 창설자인 프란치스코 성인은 동식물들과도 대화를 나눈 분으로서 유난히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고 실천한 성인이었다. 그러므로 두물머리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두물머리 수호’에 앞장서는 것은 거의 ‘운명’인 셈이었다.

두물머리 강변, 4대강 파괴사업에 맞서는 최후 진지

경기도 앙평군의 두물머리 일대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의미심장함을 지닌 곳이며, 한국천주교회와 연관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조선 실학의 거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지와 묘소가 있는 ‘마재’, 한국천주교회의 발상지인 천진암(경기도 광주), 또 한국천주교회의 큰 초석이 된 권철신 5형제의 집터가 있는 양근(陽根) 마을이 모두 지척으로 삼각을 이룬 형태다. 그 삼각형 안에 두물머리가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두물머리는 조선 실학과 천주학(서학)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시작된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조선 실학과 천주학의 접합 지점이기도 하니, 역사적 지리적 학술적 종교적 의미의 꽃을 한껏 피워내고 있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조선 실학과 천주학이 처음 만나던 시기는 일본의 명치유신보다 60년이나 앞선 때이다. 조선 실학과 천주학이 함께 어울려 조선을 개혁하는 역사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일본의 명치유신보다 60년 앞서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잡았을 거라며 윤종일 신부는 아쉬워한다.

그런 두물머리에서 거의 터줏대감이 되어 오랫동안 살아온 윤종일 신부는 이명박 정부가 벌이고 있는 4대강 파괴사업의 실체를 보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피조물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파괴와 상실의 실상을 목도하면서 수도회 창설자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세계교회의 ‘생태계 주보성인’임을 상기하고 4대강사업 저지를 위한 일에 앞장서게 된다.

▲ 580번째 생명평화미사. 두물머리 강변 비닐천막교회에서 거행된 19일의 제580차 ‘생명평화미사’ . 수원교구의 서상진 신부와 김형중 신부, 예수회의 김연수 신부가 공동 집전했다. ⓒ 지요하

그는 두물머리 강변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파괴사업에 맞서 싸우는 진지(陣地))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어쩌면 ‘두물머리 진지’가 최후의 보루, 마지막 격전지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4대강 파괴사업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일회적이고 단발적인 방식보다는 끈질긴 지속성도 필요함을 느꼈다. 그 지속성을 위해서는 열기를 유지시키는 ‘군불’이 필요했다. 그 군불의 역할을 두물머리 프란츠시코 수도회가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윤종일 신부와 두물머리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도자들은 2009년 11월 24일 수원교구 최덕기 주교와 함께 두물머리 강가에서 창조질서보존을 위한 생명평화미사를 봉헌한데 이어 12월 15일 ‘4대강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이하 천주교 연대)를 창립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리고 두물머리 프린치스코회 수도자들은 생태계 주보성인인 프란치스코의 ‘피조물의 노래’를 부르며 릴레이 단식기도에 들어간다. 맨 먼저 윤종일 신부가 3주 동안 단식을 했다. 이어서 7명의 수도자들이 각기 3주씩 릴레이 단식을 하여 150일을 채웠다.

150일간의 릴레이 단식기도를 마친 다음에는 매일같이 천주교 연대 사제들과 함께, 또 유기농단지 농민들과 더불어 미사를 지내기로 하고 첫 미사를 2010년 2월 17일 봉헌했다. 그 후 두물머리 강변미사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어 기자가 두물머리를 방문한 9월 19일에는 제580차 미사가 봉헌되었고, 기자도 580번째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다.

두물머리 강변미사는 수도권 교구들, 즉 서울·인천·수원·의정부교구 사제들이 번갈아 미사를 집전하며 두물머리 프란치스코 수도회 사제들을 비롯하여 각 수도회 사제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기자가 방문한 19일의 오백여든 번째 미사는 수원교구 서상진 신부와 김형중 신부가 주례와 강론을 맡았고, 예수회의 김연수 신부가 공동 집전을 했다. 또 ‘성가소비녀회’ 수녀들과 수원교구 과천 성당, 용인 보라동 성당에서 온 신자들 20여 명이 함께 했다.

26일의 ‘전국 집중 생명평화미사’와 ‘강변가요제’

두물머리 강변미사 장소는 두 곳으로 되어 있다. 한 곳은 비나 눈이 올 때를 대비하여 비닐천막이 씌워진, 말하자면 ‘천막교회’이고, 또 하나는 제대와 의자들만이 놓인 그야말로 노천교회다. 천막교회보다 노천교회가 더 넓고 강과 더 가깝다.

가끔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이 많이 부는 관계로 기자가 간 날은 천막교회 안에서 미사를 지냈지만, 기자는 노천교회의 제대 뒤 십자가를 가까이에서 보는 순간 아! 하고 탄성을 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 팔뚝 정도 굵기의 나무로 만들었으되, 노천에 세워진 그 십자가는 그 어느 십자가보다도 크고 절절한 느낌을 안겨주는 것 같았다.

십자가에 매달린 나뭇가지는 그대로 처절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윤종일 신부는 “저 십자가는 두물머리 십자가이며, 두물머리 십자가는 4대강의 고통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 두물머리 십자가를 바라보며 성호를 긋고 한동안 침묵했다.

▲두물머리 강변의 십자가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두물머리) 강변 노천교회 제대 뒤에 서 있는 '두물머리 십자가'는 4대강의 고통을 상징한다. ⓒ 지요하

두물머리 강변교회로 가는 길은 다소 힘들었다. 좁은 비포장도로를 굴러가느라고 승용차는 요동을 치곤 했다. 그리고 주변에는 비닐하우스가 즐비하여 유기농단지임을 쉽게 실감시켜 주었다.

두물머리를 포함한 팔당유기농단지는 2천만 수도권 인구에게 각종 채소를 공급해주는 곳이다. 유기농이란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무공해 친환경 농법을 이르는 말이다. 유기농의 중요성과 그 가치성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어느 정도는 알았는지 이명박은 한나라당 후보이던 대선 시절 팔당유기농단지를 방문하여 유기농단지를 계속 보존하겠다고 호언하며 농민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또 경기지사 김문수는 로마까지 가서 제17차 세계유기농대회를 경기도 남양주시에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오는 9월 26일부터 남양주시를 비롯한 팔당호 주변에서 펼쳐지는 세계유기농대회는 농업의 올림픽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행사다.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리는 이번 한국 대회에는 110개국에서 20만 명의 관계자가 참가하리라고 한다.

그런데 열흘 동안의 세계유기농대회가 끝나면 이명박 정부는 곧바로 두물머리 유기농단지를 굴착기로 밀어붙이고 4대강사업을 마무리(?)하리라는 예측이 무성하다. 4대강의 모든 강변 지역들 중에서 두물머리 강변은 아직 굴착기가 들어오지 않은 유일한 곳이다. 그래서 두물머리 강변은 ‘최후의 보루’인 셈인데, 그만큼 마지막 최대 격전이 예상되기도 한다.

두물머리 강변 유기농단지에는 처음 30여 농가가 진을 치고 있었지만 이제는 네 집만이 남아서 결사 항전을 각오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유기농대회를 유치까지 한 경기지사 김문수가 이제 와서는 4대강 사업을 빌미로 40년 역사를 가진 유기농을 일러 토양을 오염시키는 농법이라느니, 발암물질을 생성시킨다느니 얼토당토않은 말까지 했다며 분개한다.

두물머리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유기농단지 농민들은 두물머리 유기농단지를 보존시키기 위한 대안을 마련했다. 보존의지와 개발의지가 서로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 국토환경연구소 최동진 교수에게 의뢰하여 <상생을 위한 위한 두물머리 대안연구>라는 논문을 마련했다. 4대강 사업 추진으로 두물머리 유기농 단지에서 떠날 것을 강요받고 있는 두물머리 지역의 농민들을 배려하여 4대강 사업의 수변공원 조성 구상 대신에,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터를 닦고 살아온 농민들의 염원을 반영하는 대안을 만든 것이다.

▲ 두물머리 유기농단지의 푯말. 두물머리 강변의 한 안내판은 이곳이 유기농단지임을 명백히 알려 준다. ⓒ 지요하

이 대안은 21일 국회에서 발표되었다. 아직 그 대안 발표에 대한 논의는 접수하지 못했지만, ‘천주교 연대’는 21일 국회에서의 이 대안 발표에 이어 26일 남양주시에서 열리는 제17차 세계유기농대회와 함께 두물머리 강변에서 전국 집중 생명평화미사를 거행함으로써 4대강 파괴사업에 대한 천주교의 의지를 세계에 천명하기로 했다.

천주교가 처음 4대강 파괴사업 반대 의사를 표명할 당시 1차 서명에 응한 사제와 수도자는 1천 명 정도였다. 그 후 2차 서명 때는 5천 여 명의 사제와 수도자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차원에서 반대 성명을 냈으나 2010년 춘계 주교회의에서 전체 주교들의 의견을 집약시켜 주교회의 차원에서 반대성명을 발표했으니 천주교의 태도는 그때 이미 분명해진 셈이다.

이런저런 과정과 상황을 거쳐 왔기에 26일(월) 두물머리 강변에서 거행되는 전국 집중 생명평화미사는 관심과 열기가 부쩍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의 4대강의 고통을 상징하는 두물머리 강변 노천교회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러 모여들 것이다.

26일 오후 2시에 거행되는 미사 후에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노래마당이 펼쳐진다고 한다. ‘노래하는 신부’로 알려진 대전교구 김선태 신부를 비롯하여 여러 신부와 수녀들, 그리고 노래하는 신자들이 강에 바치는 노래와 강을 그리워하는 노래들을 부른다고 한다.

26일 오후 두물머리 강변에서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의 주례로 거행되는 천주교 ‘전국 집중 생명평화미사’와 미사 후 펼쳐지는 ‘강변가요제’가 대성황을 이루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지요하
막시모, 소설가, 대전교구 태안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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