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눔전도사, 제주 라파엘약사회 성길홍

▲ 제주 라파엘약사회 성길홍 회장.

“사랑은 고정되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서 어느 순간은 이것이 사랑이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저것이 사랑이라는 것. 그 사랑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그건 내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선문답 같은 라파엘약사회 성길홍 회장의 대답은 그의 노숙인 무료투약봉사 체험에서 나온다. 모든 약은 정해진 용량이 있다. 그런데 노숙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을 더 달라고 보채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 성 회장은 정해진 양을 주는 것이 사랑일지, 더 많이 주는 것이 사랑일지 헷갈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주는 것도 사랑이고, 안 주는 것도 사랑”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정말 관심을 두고 그 사람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그래서 정말 이 사람에게 약이 많이 필요하면 많이 주는 것이 사랑이고, 그렇지 않다면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성 회장은 “어느 날 항상 약을 두 세 개씩 더 달라는 노숙인에게 ‘약이 더 필요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대답을 듣게 됐다”고 말한다.

영어공부에 관심 있는 약사들과 이주노동자 치료를 크게 한다는 소식을 듣고 라파엘 클리닉에 참가했다가 라파엘약사회까지 만들었다는 성길홍 씨. 2004년 5월 1일 제주교구 소속으로 모임을 설립한 이후 줄곧 회장을 맡아왔다.

그의 사랑은 끝을 모를 정도로 움직였다. 처음에는 1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봉사하다가 회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가정폭력쉼터, 지역아동센터, 노숙인에게까지 무료투약봉사를 확장했다. 그의 사랑은 약품에만 담기지 않는다. 옷이 필요하면 옷을 구해주고, 텔레비전, 옷장, 책상, 침대, 세탁기에 이르기까지 여건이 되는 한 모든 노력을 다했다.

언제나 도움을 주는 이들의 마음을 살피기 위해 노력한다는 성길홍 회장. 명절이 되면 특히 가정폭력쉼터에 신경이 쓰인다. 국제결혼을 했다가 가정폭력 때문에 쉼터를 찾는 이들에게 명절은 더욱 쓸쓸한 기간이다. 성 회장은 “명절인데 친정도, 시댁도 갈 수 없는 처지가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약국으로 들어오는 명절 선물들을 모아서 이들과 나눈다”고 말한다.

▲ 10여 명으로 시작한 라파엘약사회는 현재 30여 명으로 회원이 늘었다. ⓒ대한약사회

자발적인 모임, 열린 단체

성 회장이 말하는 라파엘약사회는 자발적이며 열린 단체다. 라파엘약사회가 제주교구 소속이지만 천주교인으로만 구성돼 있지 않은 점이 단적인 예다. 성 회장은 “되도록 열린 단체를 지향한다. 회원 중에는 개신교 신자, 종교가 없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도와주는 곳도 성당뿐 아니라 개신교회에도 가고, 얼마 전에는 강정마을에도 의료봉사를 다녀왔다”고 말한다.

해군기지에 대해 찬반으로 갈라진 강정마을에 의료봉사를 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물어봤으나 성 회장은 “의료봉사는 찬성 반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약사가 모자라니 와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주저 없이 회원들에게 연락했고, 마음이 맞는 이들과 함께 갔다”고 답했다.

라파엘약사회는 회원의 자발적인 참여도 중요시한다. 성 회장은 “단체가 너무 커 버리면 움직임이 둔해진다. 할 수 있는 사람만 하고, 쉬겠다는 사람도 자유롭게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도록 열어놨다”고 말한다. 라파엘약사회의 속도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와는 달랐다.

나눔 문화의 확산을 위하여

성길홍 회장이 운영하는 개인약국은 나눔을 위해 제주 각지에서 보내주는 의약품과 책이 오가는 근거지 역할을 한다. 본인의 약국은 제대로 운영하는 것일까? 성 회장은 그저 “너무 무리하지 않게 틈틈이 일한다. 약국 일이든 약사회 일이든 주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는 머슴이라는 생각으로 임한다”라고 답할 뿐이다.

나눔에 대한 성 회장의 관심은 대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길홍 회장은 대학교 시절 88올림픽 때문에 쫓겨났던 상계동 철거민들을 만나면서 어려운 형편에 놓인 사람들에 관심을 두게 됐다. 특히 포콜라레 운동을 만나면서 이웃을 섬세하게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말한다. 성 회장은 “포콜라레는 내가 하는 활동의 근본적인 힘이 돼준다”고 강조한다.

성 회장이 라파엘약사회를 통해서 추구하는 것도 ‘나눔 문화’의 확산이다. 특히 약사 같은 전문직종의 사람들은 어려운 처지인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고, 자연스럽게 소외된 이웃들에게 관심을 두기 어려워진다. 성 회장은 “라파엘약사회를 하는 가장 큰 목적은 나눔을 통해서 그런 느낌을 같이 공유하고, 자발적으로 마음이 열리는 데 있다”고 말한다.

성 회장은 마더데레사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우리가 주변을 좀 더 둘러보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알게 되고, 도와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여기>가 그런 문화를 만들어가는 도구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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