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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아름다운 어머니, 이소선
[지금여기 데스크] 이소선 어머니 영전에 바칩니다

   

이제 이소선 여사에게 ‘아름다운 어머니’란 호칭을 붙여드릴 차례다. 1995년 박광수 감독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를 개봉했을 때, 그것은 남루한 노동자의 때묻은 옷깃이 눈물나게 아름답다는 현실을 온전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이미 조영래 변호사가 남긴 <전태일 평전>을 통해 마음을 적시고 있던 나의 젊은 시절에, 전태일은 다시 영화 엔딩자막 속에서 거명되는 수없이 많은 시민들의 이름 속에서 실체가 드러났고, 다시 사람의 숨결을 사로잡았다.

그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고로 인해서 자연히 다른 감정에도 잘 동화되며 남자인 내가 불쌍한 광경으로 인해서 코언저리가 시큰할 때가 많으니까 말입니다.”(전태일 평전에서)

모진 사람은 오래 살아 업을 더하고

   

슬픔에 대한 공감능력이야말로 전태일을 아름다운 인간으로 만들었다. 누군가 ‘심약하다’ 탓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니 노무현 같은 이도 바람결에 자살한 것이라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모진 사람만이 오래 살아남아 보속의 길을 닦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 타인과 자신에 대한 슬픔을 헤아리는 공감능력이 없는 자들은 대부분 오래 살아 업보를 거듭할 뿐이다.

전태일은 삼각산에서 그 슬픔에 마침표를 찍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전태일이 급기야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분신했을 때 이런 기사가 실렸다.

"13일 하오 1시 30분께, 서울 중구 청계천 6가 피복제조상인 동화시장 종업원 전태일씨(23, 성북구 쌍문동 208)가 작업장 안의 시설 개선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려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제지당하자 온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기도, 메디컬센터를 거쳐 성모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날 밤 10시께 끝내 숨졌다"(한국일보 1970년 11월14일자)

예수보다 10살이나 어린 나이였다. 이 기사를 읽고 생애의 방향을 튼 이들 가운데 문익환 목사도 끼어 있었다. 그는 전태일에게서 예수를 보았다. 당시 KSCF 사무총장 오재식은 〈기독교사상〉에 ‘어떤 예수의 죽음’이라는 추모사를 썼다.

“너는 죽을 때 '목이 마르다'라고 했다. 이미 죽는 마당에 물은 찾아서 무슨 소용인가. ... 네가 죽은 후 예수여! 엉뚱한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생면부지가 헌화를 하는구나. ... 네 초상화가 복사되고 네 생애가 돋보이고, 드디어는 네가 스승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죽음의 벽이 당분간은 누리를 덮었지만 그 밑으로, 고동소리, 희망이 그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 너는 죽어서 많은 예수를 낳고 그 예수들이 다 같이 예루살렘 거리에 서는 날, 너는 우리에게 부활의 의미를 가르칠 것이다.”

   

‘불법’복제되는 전태일들..그리고 어머니

장기표를 비롯해 이 당시 전태일의 죽음에 동조하는 수없이 많은 전태일이 ‘불법’ 복제되었다. 개신교와 천주교인들이 합동으로 추모기도회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 김재준 목사는 “우리 기독교도들은 여기에 전태일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나태와 안일과 위선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다”고 말했다. 예수가 사라진 교회에 전태일은 ‘예수의 죽음’을 다시 읽어내도록 자극했다.

<전태일 평전> 앞머리에서 문익환 목사는 “젊은 노동자 전태일의 이야기는 6천만 겨레의 눈물이 되어야 합니다. 앞을 죽음처럼 가로막는 절벽을 무너뜨리며 흐르는 민족사의 물줄기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은 땅 속을 흐르는 이 물줄기 속 한 물방울로서...”라고 말했다.

급기야 문익환 목사는 “전태일이야말로 예수였다”고 선언하였는데, 전태일 “나인 너여!”라고 호명했던 것처럼, “우리가 전태일이 아니면 누가 전태일이겠느냐”하며 천지사방의 목숨들이 모두 ‘전태일’이라고, 전태일이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전태일’이란 시를 지었다.

한국의 하늘아
네 이름은 무엇이냐
내 이름은 전태일이다

한국의 산악들아 강들아 들판들아 마을들아
한국의 소나무야 자작나무야 칙덩굴아 머루야 다래야
한국의 뻐꾸기야 까마귀야 비둘기야 까치야 참새야
한국의 다람쥐야 토끼야 노루야 호랑이야 곰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은 전태일이다

백두에서 한라에서 불어오다가
휴전선에서 만나 부둥켜안고 뒹구는
마파람아 높파람아
동해에서 서해에서 마주 불어오다가
태백산 줄기에서 만나 목놓아 우는
하늬바람아 샛바람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이라고 뭐 다르겠느냐
우리의 이름도 전태일이다
깊은 땅 속에서 슬픔처럼 솟아오르는
물방울들아
너희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이라고 들어야 알겠느냐
한국 땅에서 솟아나는 물방울치고
전태일 아닌 것이 있겠느냐

가을만 되면 말라
아궁이에도 못 들어갈 줄 알면서도

   

봄만 되면 희망처럼 눈물겨웁게 돋아나는
이 땅의 풀이파리들아
너희의 이름도 전태일이더냐
그야 물으나마나 전태일이다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죽음과 맞서 싸우는
미싱사들 시다들의 숨소리들아
너희의 이름이야 물론 전태일일 데지
여부가 있나
우리가 전태일이 아니면
누가 전태일이겠느냐

그러니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이다. 전태일은 이승을 떠나면서 “엄마, 내가 죽어서 캄캄한 세상에 좁쌀만 한 구멍이라도 뚫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야 해요”란 유언을 남겼다. 그때 “그래, 아무 걱정마라.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라고 말한 이가 어머니 이소선 여사였으며, 그 약속을 81세로 이승과 하직할 때까지 살아온 분이 그분이다.

노동자의 횃불, 전태일.. 노동자의 빛, 이소선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승천하기에 앞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세 번이나 물었다고 한다. “예”라는 답변을 듣고, 예수가 남긴 말은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하는 말씀이었다. 전태일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분신인 노동형제들을 맡겼으며, 어머니는 그 길을 온전히 걸었다. 전태일에게 어머니는 엄마이면서 동지이면서 누이면서 애인이었다. 이를 두고 신영복 선생은 “전태일 열사가 우리 사회의 감추어진 얼굴을 들추어낸 ‘횃불’이었다면 이소선 여사는 노동자의 ‘빛’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소선 여사는 지난 40여 년을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았다. 엄마로서 품에 안았을 뿐 아니라 누이로서 이야기를 나누고, 동지로서 투쟁했다. 최초의 민주노조라 할 수 있는 청계피복노조를 이끌며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결성’ 등을 요구했으며, 정보기관에 쫓기던 재야인사들을 숨겨주고, 자신처럼 아들을 바친 어머니들을 모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도 만들었다. 그동안 경찰에 연행되기를 수백 번, 옥살이도 3년이나 했다.

최근에는 부산 한진중공업을 찾아가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 씨를 걱정하며 “제발 죽지 말고 내려와서 같이 하자”고 말했다. 6일 이소선 여사의 영정이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을 방문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모두가 마침내 살아 새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마리아가 처음부터 거룩한 어머니, 성모는 아니었다. 마리아는 순박한 시골처녀에 불과했지만, 아들을 객지로 보내고, 결국 아들의 죽음을 통해 “가슴이 비수에 찔리듯 아팠다.” 복음서에서, 예수가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한 것은 그 제자가 곧 ‘예수의 분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리아는 또 다른 예수‘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마리아가 성모인 까닭은 마리아가 예수를 제 몸으로 낳았기 때문이 아니다. 마리아가 아들 예수의 뜻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성모, 아름다운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가 바라던 바를 갈망했으며, 예수가 사랑하던 이들을 사랑했다. 마찬가지로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이 바라던 바를 갈망했으며, 전태일이 사랑하던 이들을 사랑했다. 마리아는 마니피캇에서는 이렇게 노래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니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로다.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능하신 분이 큰일을 내게 하셨음이요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로다.
그 인자하심은 세세대대로 당신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미치시리라
당신 팔의 큰 힘을 떨쳐 보이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도다.
권세있는 자들을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셨도다.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주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자비하심을 아니 잊으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으니
이미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위하여 영원히
우리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바로다.


마니피캇의 내용을 보고 어떤 이들은 “이거 공산당 선언이네” 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별히 가톨릭교회는 아무리 보수화 경향이 짙다고 해도, 가장 대중적인 신심단체인 레지오 마리애에서조차 항상 외는 ‘까떼나’을 바치면서 이 구절을 읽어야 하는 만큼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소선 ‘어머니’가 ‘성모’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간적인 약함에도 불구하고, 이소선 ‘어머니’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러했듯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특별히 노동자들을 품어 안았기 때문이다. 요셉과 예수가 목수의 작업대를 성화했듯이, 전태일과 이소선 ‘어머니’는 미싱과 쪽가위를 성화했다. 미싱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작업대와 현장을 성화하고, 급기야 세상의 모든 가련한 인생들 편에 서서 싸우고 옥에 갇히고 연대하고 기도했다.

   

그뿐 아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말씀대로 누군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맞이하였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와주었다. 예수가 믿었던 하느님은 ‘신앙고백’을 먼저 논하지 않는다. 그 행위를 묻는다. 누군가 돌보아 주었는지 묻는다. 그러니 여기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자는 복되다. 이소선 ‘어머니’는 전태일이나 예수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 안에서 주변부 인생이었다. 늘 꼴찌인생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세상의 꼴찌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꼴찌들과 더불어 부자와 공권력의 멸시를 받았으며, 때로 자리에서 밀려나고, 때로 아픈 눈물을 흘려야 했다. 제 상처로 아파하기보다 또 다른 전태일‘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다.

토마스 머튼은 “성인(聖人)이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서 온전한 사람이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세상 어디선가 눈물 글썽이며 슬퍼하는 사람이 있을 때 편한 잠 이루지 못하는 감수성이 인간을 천상으로 인도한다. 사람이란 누구나 상처와 흠결을 지니기 마련이지만, 상처를 아름다운 무늬로 뒤바꾸는 힘은 언제나 타인 안에 머물 때 이루어진다. 그래서 지극한 아름다움은 눈물겹다. 이소선 ‘어머니’는 눈물겨운 아름다움 안에서 살았고, 또 그렇게 눈물겨운 사람들의 전송을 받으며 이승을 떠나고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어머니, 이소선’이다. 그분이 이제 꿈에 그리던 아들을 만난다 하니, 자못 축하드릴 뿐이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당신” 하고 지긋이 발음해 본다.


▲이소선 어머니 추모의 밤 영상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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