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 목사의 아내, 정용숙 여사 선종

이소선 여사(전태일 모친)의 죽음으로 연일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은 이소선 열사가 “살아서 내려오라”고 간절하게 말을 전했던 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선 김진숙 씨에게로 이소선 열사의 영정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간다. 김진숙은 또 다른 전태일이요 그분의 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 9월 7일에는 장례식이 열린다. 이 기막힌 어르신들의 죽음을 생각하는데, 또 다른 전갈이 왔다. 이현주 목사의 아내인 정향 정용숙 여사의 죽음이다.

정용숙 여사는 그동안 대장암으로 몸을 다스리다가, 지난 9월 2일 저녁 9시 30분에 이승에서 여정을 접었다. 5일 새벽 충주 영광장례식장에서는 평소 교분을 나누던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용숙 여사의 영결식이 열렸다. 이현주 목사 내외분이 사시는 충주시 엄정면에 있는 추평교회 담임목사인 이기록 목사는 영결식을 진행하면서, “정용숙 님은 하느님의 뜻을 남김없이 이루어드리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정용숙 여사가 말기암 선고를 받고 치료 중에 이현주 목사는 지인들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낫게 해달라, 치료해달라, 그렇게 기도하지 않았으면 해. 아내와 제가 원하는 것은 이 작은 몸을 통해 하나도 남김없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라네”

이 말을 두고 이기록 목사는 노자가 “누가 흐린 것과 어울리면서 고요함으로써 그것을 천천히 맑게 해줄 수 있으며, 누가 가만히 있으면서 움직임으로써 그것을 천천히 생겨나게 하겠느냐”고 하였는데, 정용숙 씨가 그런 분이었다며 “당신의 사랑은 크셨지만,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고 칭찬받는 것을 싫어했다. 대신에 몰래 숨어서 그 사랑을 주셨다. 우리 모두 그 사랑의 수혜자들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샤를 드 푸코 성인이 지은 ‘의탁의 기도’를 노래로 불러 고인을 위로했다.

▲ 고 정용숙 여사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 위에 이루어진다면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에 사랑을 다하여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하느님은 내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 이현주 목사.

▲ 지인들은 영결식에 참여하며 고인이 평소에 품었던 하느님 사랑과 남몰래 베푼 자비를 되새기며 헌화했다.

이어 이현주 목사는 아내를 떠나보내며 영정 앞에서 다음과 같이 추모사를 전했다. 여기 그 전문을 소개한다.

“정향 내 사랑하는 아내요 친구요 애인이요 누이여 어머니인 당신,
40년전 서울 젠센기념관에서 유동식 선생님을 주례로 모시고
우리 서로 손을 잡았는데 오늘은 그 손을 놓게 되었구료.

잡은 날이 있으니 놓는 날도 있으리라 짐작은 하였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니 허전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소.
그러나 지금 내 가슴의 허전함을 채우고도 남을 만한 감동이 있기에
여기 많은 증인들 앞에서 내가 그 이야기를 해야겠소.

예수의 탄생은 그가 어머니의 품에 안기기 위하여
어머니 몸에서 떨어져 나온 사건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소.
그렇다면 그의 죽음은 그가 당신 어머니와 다시 하나 되려고
어머니 곁을 떠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당신의 죽음은 바로 그런 것이오.
당신이 내 중심으로 들어와 나와 다시 하나로 되기 위하여
40년 동안 잡아온 손을 놓는 날이 오늘이란 말이오.

당신이 내 중심으로 들어와 나와 하나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이제 당신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하느님 품에 안길 터인즉,
그 하느님이 다른 어디가 아닌 바로 내 중심에 계시기 때문이라오.

정향, 40년 세월 내 사랑하는 아내요 친구요 애인이요 누이요
그리고 어머니로서 같은 길을 걸어온 당신,
그동안 잠정적으로 잡았던 육신의 손을 쿨하게 놓고
내 중심이자 당신의 중심이요
우주의 중심이신 어머니 하느님 품에서 하나가 됩니다.

나 또한 이 몸을 벗고 명실상부로 당신과 하나되는 그날까지
당신을 내 가슴에 품고 여태 그래왔듯이
당신과 함께 남은 길을 걸어가겠소.

아무래도 이제는 당신의 눈이 내 눈보다 밝을 터인즉,
시시콜콜 잔소리하던 버릇 제발 버리지 말고
내 삶의 구석구석을 간섭하며
내가 주님의 뜻을 잘 따를 수 있도록 코치해 주시오.

그렇게 해서 내 종신 매니저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감당해주길 바라오,
자 이제 time to say goodbye, 안녕이라 말할 때가 되었소.
어느 시인이 그랬지.
헤어지는 인사말도 되면서 만나는 인사말도 되는 안녕이란 한국말이 참 근사하다고.
그 두 가지 의미를 담아서 당신에게 말하오.
정향 안녕.

2011년 9월 5일 이현주

영결식을 마치고, 정향숙 여사의 시신은 화장 후 수습해서 가족들이 의논해서 수목장 등을 할 예정이다. 유골을 수습하는 중에 이현주 목사는 조문객들에게 ‘안녕’을 고하며 “아내는 지금 지상에 올 때 입고 왔던 단벌 옷을 태워버리고 있는 중입니다. 아내는 이 옷을 벗고 영혼은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오히려 조문객들을 위로했다.

장례식은 내내 숙연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으나, 조문객들은 이승을 떠나 '어머니이신 하느님' 품으로 가는 정용숙 씨에게 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 정용숙 여사가 이승을 떠나던 날...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