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창립 50주년 기념 행사, 역곡 가톨릭대 성심교정에서 열려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자기 소개를 시작한 박명자씨는 1956년 서울대학병원 간호사로서 처음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JOC, 이하 가노청)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이미 백발이 된 노인이다. 벌써 50년이 더 지난 세월동안 조셉 카르댕의 정신을 따라 살아왔던 사람이다.

지난 11월 2일, 역곡에 있는 서울가톨릭대학 성심교정 운동장 한편에서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창립 50주년 기념 선후배 만남의 날’ 행사가 있었다. 400여 명의 노동청년회 선후배들이 모여서 기념미사도 봉헌하고 음식도 나누고 공연도 하고 반가운 인사도 오랜만에 얼굴도 바라보고 못 다한 말도 마저 나누었다.

이날 11시에 시작한 기념미사는 황상근 신부의 주례로 김정대, 김현배, 주수욱, 임경명, 김일회, 구요비, 김성길, 오기백, 최종수, 호인수 신부 등 11명의 사제가 공동집전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가노청 지도신부를 역임했거나 노동사목에 종사했던 사제들인데, 한결같이 언제 어디에서 회원들과 ‘동반’했다고 표현하였다. 직책은 ‘지도’이지만 “평신도를 선두로” 내세웠던 카르댕 추기경의 정신대로 사제들이 노동청년들의 협력자로서 일했음을 밝히는 대목이다.

기념미사에서 강론은 박창순씨(대전)와 황상근 신부가 나란히 하였다. 박창순씨는 1975년부터 83년까지 대전에서 활동했으며, 방황하던 청년기에 가노청 회원이 되어 “작업장이 제대요, 작업이 곧 미사”라는 카르댕추기경의 말씀에 감명을 받아 이제껏 ‘사람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어디서든 사람을 만나고 조직하고 신앙과 사회적 실천을 결합시키려고 혼신을 다해 애쓰며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황상근 신부(인천교구 제물포 성당)는 성당에서 요즘 국화축제를 하고 있다면서, “큰꽃에는 파리만 많고 작은 꽃은 냄새(향기)가 짙다”고 하면서, “민중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인정과 인간미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항시 JOC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프라도회를 창립한 슈브리에 신부가 “나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내가 복음화되었다”고 고백했던 말을 인용하며 JOC에게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많다고 자평하였다. 카르댕 사상은 기본적으로 교육에 관심이 많아 복음적 가치관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는데, JOC회원들이야말로 예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격려하였다.

미사 중에는 사도신경 대신에 “나는 이후부터 나의 신앙, 나의 가정, 나의 이웃, 나의 일터 또는 내일의 생활 준비에 있어서, 가톨릭노동청년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하여 매일같이 생활에 충실할 것을 선서”한다는 내용의 투사 선서문을 낭독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의 기도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제일 먼저 기도하였다. 그후 이어진 공연과 식사 등은 가노청의 축제 한마당이 되어 쌀쌀한 날씨에도 참석한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 주었다.

/한상봉 2008-11-03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청년 노동자들의 자발적 주체적인 운동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정신에 입각하여 청년노동자의 전인적 지속적 교육에 참여하고 노동계에 복음을 전도하며 정의와 사랑과 희망을 전파하고 실현하고자 한다.

2. 약사와 활동

가톨릭노동청년회는 (이하 J.O.C) 1958년 1월 서울 대학교 부속병원 간호원 10명이 가노청에 대한 소개책자를 연구하다가 당시 가톨릭 신학대학 교수인 박성종(프란치스코) 신부를 지도신부로 회합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뒤 한국을 방문한 J.O.C의 창설자 조셉 까르딘의 주례로 11월 17일 명동 대성당에서 첫 투사선서식과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60년 12월 20일 서울교구 연합회가 결성되었고 1961년 부터는 점차 지방교구로 확장되어 10월 21일 서울, 대구, 전주, 대전 교구의 남녀 대표들로써 전국 평의회가 조직 되었다. 이 해 11월 2일에는 한국주교회의에서 정식으로 가톨릭 평신도사도 단체로 인준을 받는 한편, 국제가톨릭노동청년회에도 정식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한국J.O.C의 초기활동은 빈민촌 무료진료를 비롯하여 근로재건대 활동, 윤락 여성선도, 노동자를 위한 실비식당운영, 서독 파견광부들을 위한 활동, 해외 이민문제에 대한 활동, 가정부 생활실태조사 등이 있다.

1964년에는 수원교구와 인천교구의 연합회가 발족되어 한국 가노청이 9개 교구로 확장되었고 1965년 1월에는 성인 J.O.C이 발족되어 뒤에 가톨릭 노동장년회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1965년 10월 제5차 전국평의회에서 J.O.C 농촌부를 창설하였다가 다시 1966년 8월 제6차 전국평의회에서 가톨릭농촌청년회(J.A.C)로 독립되어 농촌실정에 맞는 청년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또한 1966년 10월에는 춘천교구 연합회에서 원주교구 연합회가 분리, 독립하였다.

이 당시는 5.16후 정부가 추진한 경제개발정책의 수행과정에서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노사문제등 각종 사회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이에 따라 한국 J.O.C의 활동도 각 산업체의 노동조합결성, 임금인상 등 처우개선 활동, 직업여성 실태조사, 노동강좌, 버스 안내양교육, 이향노동자 상담활동 등 노동자들의 인권신장과 복지활동을 위한 활동이 중심이 되었다.

한국 J.O.C는 '비 인간적 상황의 인간화', '노동자들의 단결의식 강화'를 목표로 회원들의 의식계발 교육과 회원, 노동자들의 개별적인 조직의 확대, 핵심 지도자 양성, 지도투사의 자질 향상과 J.O.C의 내적역량등에 힘썼다. 이와함께 한국 J.O.C는 마산 수출자유지역 실태조사 및 체불임금 지불요구활동, 이향노동자 실태조사 및 대책활동을 통해 한국사회의 노동현실을 고발하고 개선을 촉구하였다. 또한 구체적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때마다 이에 항의하고 사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꾸준히 벌여오고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 1985. 한국교회사연구소발행 1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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