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인권위 15주년 기념행사 명동에서 열려

지난 10월 29일 서울 명동성당 별관에서 200여 명의 관계자들이 모여 ‘천주교 인권위원회 15주년 기념 미사’가 봉헌하였다. 이번 미사에서 천주교인권위원회(이사장 김형태 변호사)는 ‘인권과 평화의 바람으로 불어라!’는 주제로 지난 활동을 성찰하고, 인혁당 사건 등 활동과 관련된 인사들을 초대하여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리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1988년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모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을 만들었는데,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 단체에서 인권소위원회로 활동하다가 1993년 독립했다. 이 단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 편에 서서 권력과 자본에 억압받고 차별받는 이들을 대변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지난 15년 동안 무료법률인권상담, 사형제도 폐지, 군의문사 진상규명, 인혁재건위 사건을 비롯한 간첩조작사건 진상규명, 구금시설 수용자 인권보호,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등 반전평화, 국가보안법과 사회보호법 등 악법 폐지, 사회복지시설 생활인 인권확보 등을 위해 활동해 왔다.

2002년 10월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좀더 성숙하고 공신력 있는 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사단법인으로 전환하였는데, 당시 창립선언문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천부적 권리인 인권을 수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소외받고 억눌린 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며, 모든 차별과 침해에 대항하며, 공권력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를 통해 인권의 파수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신자들과 국민들에게 교육과 활동기회를 제공하여 다양한 영역에서 함께 인권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고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우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안충석 신부의 주례로 이영우 신부(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와 박정우 신부(생명위원회), 김상식 신부(예수성심전교회)의 공동집전으로 미사가 봉헌되었으며, 이날 강론에서 이영우 신부는 우리가 바라는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안토니오 로저스 수사의 글을 인용하여 “그 나라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이 세상 속에 세우신 나라이며, 사랑과 평화, 자유의 나라이며, 그 나라는 당신의 영상과 모습으로 창조된 당신의 아들 딸 들이 서로를 존경하기 시작하는 곳, 아낌없이 주는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이들에게 정당한 댓가가 주어지는 곳, 당신과 당신의 나라가 그 어느 것 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러한 곳”이며 그 때는 “우리가 당신을 우리의 매일 생활 속에서 발견할 때이며, 그때는 모든 이들을 위한 보다 나은 나라를 이룩할 때이며, 그때는 빈민가에서, 농촌에서, 마을에서, 들판에서, 공장에서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이웃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할 때”라고 하였다.

한편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을 우리가 돌보는 것이며, 우리에게 대한 당신의 단 하나의 표징은 우리가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이며 그 반대는 “이 풍요의 땅에서 반 이상의 인간이 빈곤에 허덕이는 것. 많은 이들이 생존의 기본적인 필요도 채울 수 없는데도 새로운 백만장자를 만들어 내는 것. 많은 이들이 판잣집에서 살고 있는데도 수억짜리의 집을 짓는 것. 많은 이들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는데도 무기생산에 수천억을 낭비하는 것.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이들을 감옥에 쳐 넣는 법률을 만드는 것.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자신들의 권력의 안전을 위협한다 하여 탄압하는 것들”이라고 고발하였다. 아울러 참석자들에게 우리자신의 이기적 꿈과 야심을 밀어제칠 사랑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천주교 인천교구 교구장 최기산 주교가 축사를 보내온 이번 기념행사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안경환 위원장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임기란 전 상임의장의 축사가 있었고, 그동안의 활동을 보여주는 영상물과 더불어 박준씨의 노래공연, 김형태 이사장의 감사 인사 등 자축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상봉 2008-11-03


이영우 신부 강론 (전문)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 - 이사야 61,1-2.

오늘 복음 말씀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이사야서 61,1-2을 인용하면서 당신의 사명을 알립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졌다고 힘 있게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예수님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바로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 세상에 오셨을까요. 예수님이 이루시고자 했던 꿈과 희망은 무엇이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하느님 나라이지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세상. 그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도 이루어지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안토니오 로저스 수사님은 주님의 기도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 나라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이 세상 속에 세우신 나라이며, 사랑과 평화, 자유의 나라이며, 그 나라는 당신의 영상과 모습으로 창조된 당신의 아들 딸 들이 서로를 존경하기 시작하는 곳, 아낌없이 주는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이들에게 정당한 댓가가 주어지는 곳, 당신과 당신의 나라가 그 어느 것 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러한 곳입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고, 당신의 사랑과 정의가 지배하게 하소서.

그때는 우리가 당신을 우리의 매일 생활 속에서 발견할 때이며, 그때는 모든 이들을 위한 보다 나은 나라를 이룩할 때이며, 그때는 빈민가에서, 농촌에서, 마을에서, 들판에서, 공장에서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이웃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할 때이며, 그때는 끊임없는 대중매체의 왜곡으로 계속 희생당하고 경쟁적인 교육제도의 연약한 희생자로 전락하는 젊은이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될 때이며, 그때는 약물중독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려고 노력할 때이며, 그때는 고도의 실업율과 사회의 어린 낙오자들의 문제를 해결키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입니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 당신의 나라는 정녕 임하실 것입니다. 단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이기심과 탐욕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그 나라는 우리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대한 당신의 단 하나의 뜻은 바로 당신께서 우리를 사랑하듯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대한 당신의 단 하나의 바라심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이들을 우리가 돌보는 것이며, 우리에게 대한 당신의 단 하나의 표징은 우리가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당신의 뜻과, 바램과 꿈이 아닌 것은 이 풍요의 땅에서 반 이상의 인간이 빈곤에 허덕이는 것. 많은 이들이 생존의 기본적인 필요도 채울 수 없는데도 새로운 백만장자를 만들어 내는 것. 많은 이들이 판잣집에서 살고 있는데도 수억짜리의 집을 짓는 것. 많은 이들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는데도 무기생산에 수천억을 낭비하는 것.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이들을 감옥에 쳐 넣는 법률을 만드는 것.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자신들의 권력의 안전을 위협한다 하여 탄압하는 것들입니다.

당신의 뜻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려면 우리는 권세 있는 자들의 야합을 흩어버려야 하며, 우리는 당신의 뜻에만 따라 살아야 할 거룩한 의무를 자각하여야 하며, 이 땅에 당신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용기를 가져야 하며, 우리자신의 이기적 꿈과 야심을 밀어제칠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진심으로 당신 하늘의 뜻을 바로 여기 이 자리에서 실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 중풍병자, 마귀 들린 사람, 소경, 벙어리, 손이 오그라든 사람, 하혈병에 시달리던 여인들을 고쳐주셨다. 또 간음하다 잡혀 죽을 위험에 처한 여인도 구해주시고, 과부의 죽은 아들과 죽은 소녀를 살리시고, 죽은 나자로도 살려주셨습니다. 그 외도 예수님이 가까이 한 사람들은 세리와 창녀, 거지, 가진 것 없고 힘없고 배운 것도 없어서 죄 속에 빠져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즉 밑바닥 인생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생명이 있으되, 생명이 생명답게 살 수 없었던 사람들로 절망과 좌절로 죽음의 세계 속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외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던 사람들입니다. 즉 가난하고 힘없고 배운 것 없어 사회에서 밀려난 병자처럼, 죽은 사람처럼 희망 없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마음대로 걸을 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어 묶인 사람처럼, 절름발이처럼, 벙어리처럼 삶을 강요당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기득권자들은 이런 사람들은 이 사회를 위해서라도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들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죄인으로 규정하여 비인간적인 대접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병자들은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좌절과 절망에 죽음과 같은 삶을 하루하루 힘겹게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망과 좌절 속에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한없이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믿었던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편이 되어 그들의 상처와 한을 꿰뚫어 보시고 함께 아파하셨습니다. 천덕꾸러기처럼 환영받지 못한 삶을 살아온 그들을 끌어안고 한 형제로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인간이면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한 사람들... 예수님은 그들을 끌어안으시고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하며 인간 선언을 해 주신 것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선언하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끌어안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조건 없는 사랑과 받아들임 속에서 치유가 일어납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고 들어주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어둠과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곧 인권이 회복되고 생명력이 넘치는 삶,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삶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넘어가는 삶, 이것이 바로 치유이고 해방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와 해방이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통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은 제도권이 아니었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도 제도로서의 교회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힘없고 억울하고 하소연 할 곳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치유와 해방을 선포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라는 말씀처럼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선포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바로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통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또 이겨내야 할 일들고 많고 어려움도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이명박 정권에서는 인권위원회의 활동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서기도 합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할 일이 없어 자동으로 해체되는 세상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력해 오신 많은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한 분 한 분의 삶과 땀과 피가 모여 15주년이라는 시간을 이어왔지만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해체되는 아름다운 세상이 빨리 오기를 기도 하면서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2008.10.29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