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훈의 좌충우돌 노래야그-6]

가끔 세상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다. 다른 이들이 만들어 낸 세상살이에 관한 이해와 충고도 그저 바람소리와 함께 스쳐 지나가기를 바랄 때가 있다. ‘날좀 가만히 내버려 둬’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를 좀 제발, 제발 그냥….!’라고 말하는 좀머 아저씨처럼, 스스로 세상과 맞닥뜨려 삶과 죽음과 싸우듯 그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 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늘 다른 이의 말에 흔들린다. 삶은 좀처럼 나를 가만히 놓아 주지 않는다. 세상에 홀로 서 있길 바라지만 난 세상을 다 가진 이처럼 소리를 지른다.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둬!’

<하는 일 마다 잘 되리라> 정말? 늘 내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사자가 아니어서 큰 소리에 놀라고, 나는 바람이 아니어서 그물에 걸리고, 나는 연꽃이 아니어서 진흙에 흙 범벅이가 된다.(숫타니파타 참고) 세상을 홀로 살아가야 할 힘이 내게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아닌 것과 싸우길 즐기기도 한다. 내가 바라는 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알든 모르든 해야 하는 것들, 꿈, 의무, 책임, 정의, 사랑, 믿음.. 이런 것이 내 뜻과 다르게 움직이더라도, 누군가 나를 오해하고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 하더라도, 내게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면, 나는 애써 모른 척 스스로에게 말할 것이다. ‘하는 일 마다 잘 될 거야’

내가 하는 일들이, 내 스스로 부끄러운 바람(꿈)이 되지 않기를,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설사 누군가가 내 바람을 시기와 질투, 죽음의 눈초리를 가지고 조롱과 책망을 한다 해도, 훗날 내 바람들이 나를 부끄럽지 않게 생각해 주기를. 내 바람들이 누군가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진다 해도, 내 바람들에 대해 내 삶과 내 열정을 다 쏟아 부었다고 느낀다면, 내 바람은 나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외면한다 해도 난 멋있게 살았다고…나는 오늘도 이런 착각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리고 또 내게 말한다. ‘하는 일 마다 잘 될 거야’

<하는 일 마다 잘 되리라>를 부르며 세상과 힘껏 동행하는 친구가 있다. 오늘은 기분 좋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 늘 웃음을 머금은 이! 생활성가를 부르며 주님과 내 주위의 사람들을 위해 노래하는 이! 노래가 좋아 부산에서 무작정 서울로 온 이! 그가 자신의 생각과 기도를 담은 노래앨범을 세상에 내 놓았다. 최준익 막시모의 2집 앨범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그의 숨겨진 이야기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독자와 함께 만나보자.

늘 웃는 얼굴을 지닌 최준익 막시모를 압구정 한 까페에서 만난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시키고 두 시간 가량 그의 삶과 노래이야기를 들어본다. 시샘이라도 하듯 까페에서는 그라나도스 스페인무곡 제5번 ‘Andaluza’가 흘러 나온다. 최근 2집앨범 <하는 일 마다 잘 되리라>를 내놓고 활발히 활동중인 최준익 막시모.

그는 부산 거제동성당에서 경험한 추억의 모든 것은 미사전례와 노래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김정식 로제리오, 신상옥과 형제들의 공연이 지금의 최준익 막시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래서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무것 가진 것 없이 서울로 올라온다. 그리고 잠실성당과 문정동성당에서 각각 ‘앗숨Adsum’과 ‘아가페Agape’ 활동을 통해 노래로써 찬양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는 늘 감사하다는 말을 놓지 않는다. 낯선 서울 땅에 길을 만들어 주던 잠실성당 이충훈 베네딕토 형, 문정동성당 L’even Sky활동과 아가페 활동을 통해 내 삶 모든 것에 함께 아파해 주었지만, 그 아픔이 너무나 커서 하늘나라에 먼저 간 베이스맨 Xavier 임동욱 형, 항상 멋진 기타를 들려주는 서강희 Peter. 그리고 청년회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문정동성당 김홍진 신부님께 감사의 말과 함께 2006년에 발매되었던 최준익 막시모 1집앨범의 뒷얘기를 먼저 들어본다.

모두가 당신께서 보내주신 천사였다는 걸

"당신께서 보내주신… -비록 내게 의미 없는 소리 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생명과도 같은 말들이죠. 서울 경복궁 근처 라파엘집에서 봉사하던 때가 있었어요. 아이들인데, 밥 먹이고 볼일 봐주고, 처음엔 힘들고 무서웠어요. 그 중에 시몬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제가 특이한 소리를 내면 그 소리를 기억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아이가 저를 보면서 웃는 거예요. 쁭,쁭,쁭…이런 의미 없는 소리를 좋아하고 밝게 웃는 거예요. 그 아이가 그 소리 때문에 저와 인사도 하고 웃기도 하고, 제겐 큰 경험 이였어요. 그 아이에겐 밥,옷,따뜻한 손보다도 제 쁭쁭쁭 소리가 더 좋았었나 봐요. 그 아이를 생각하며 1집에 있던 ‘당신께서 보내주신’이란 곡을 만들게 되었어요."

당신께서 보내주신

(최준익 글, 장동석 곡, 서강희 편곡)

 

 

 

 

대추 한알
-장석주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 볕 두어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알’의 시다. 잘 익은 대추 한 알은, 저절로 붉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온갖 시련들, 태풍, 천둥, 벼락.. 그런 모든 것들에 의해 붉게 만들어진다. 대추하나가 그렇게 자라듯, 나 또한,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 나에게 시련을 주었던 사람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내가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로 인해 삶이 만들어진다. 내 얼굴은, 내 거울 속 얼굴 뿐만 아니라, 나 아닌 그들의 얼굴 속에 내 모습 또한 녹아 있다. 모든 노래는 나만의 노래가 아닌 그들의 노래 일 수도 있다. 그와 두시간 가량 얘기가 끝 나갈 무렵 그와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 몇자 적어본다.

너가 참 품이 넓다

“마음의 짐을 버리고 나서 내 주위에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였어요. 감사라는 단어도 내게 오는 거예요. 이형진, 권성일, 나정신 누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제 곁에 늘 함께 있어 주셨어요. 누군가를 용서할 교만은 없지만, 용서를 내 삶으로 받아들이니까 행복과 평화라는 말 또한 알게 되었어요. 아주 편한 마음으로 군대를 가게 되었고, 문정동성당에서 활동할 당시 드러머였던 김형수 사도요한 소개로 군종교구 박근호 알렉산델 신부님을 알게 되었고, 생활성가그룹 For로 활동하시는 대전교구 연광흠 바오로 신부님의 도움으로 멋진 군생활과 2집 앨범을 낼 수 있었어요. 대방동 부주임 배원일 세례자요한 신부님께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구요. 그래서 저는 행복해요. 그리고 감사하구요. 그래서 웃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모든 것이 제것을 버리기 시작하면서 부터죠.”

그와 얘기를 하면서 감사의 인사가 끝없이 나온다. 아마 감사의 이름만으로도 A4용지 4장은 거뜬히 채울 기세다. 누군가에게 감사한다는 것은 그를 향해 감사해 하는 이도 많다는 뜻이다. 사랑은 사랑을 몰아 오고, 미움은 미움을 몰아 오고.. 내가 말한다.

“막시모, 내가 너와 두 시간 가량 얘기를 하면서 느낀 건데, 너가 참, 품이 넓다. 그리고 미소가 있다. 그리고 편하다. 그리고 친절하다. 긍정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너를 늘 옆에서 지켜주는 이가 많구나. 부럽다. 누군가 널 도와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은 너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 한듯 해. 너가 품이 넓어!. 내가 이런저런 성가 판에서 사람들을 만나보지만, 품이 넓은 사람이 생각만큼 많이 없어. 너를 보니 내가 기분 좋아 진다. 너의 웃음 덕분에 이 까페가 깨끗해 보이고, 이 음악소리와 옆 테이블의 대화소리 조차 예쁘게 보이네. 오히려 내가 감사한걸…”

"하는 일 마다 잘 되리라,  혹시 차동엽 신부님께서 후원하셨니?"

그와 만나기 전 그의 2집 앨범을 듣는다. 3번 트택곡인 ‘My Lord’가 가슴 깊게 스며든다. ‘사람이 무엇이건데 십자가에 못 박히시나이까..’ 내가 묻는다.

“막시모, 2집 앨범 자켓 텍스트가 ‘하는 일 마다 잘 되리라’이네, 혹시 차동엽 신부님께서 후원하셨니?”

“아니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안성준 형께서 주신 곡이 ‘하는 일 마다 잘 되리라’ 였어요. 이 곡을 처음 받았을 때 ‘아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성준이 형에게 처음 만나 처음으로 인사하고 처음으로 부탁했는데 그걸 들어 주셨어요. 그래서 감사해요. 그리고 그 곡이 제 2집앨범 타이틀 곡이 되었어요. 좀 전에도 말했듯이, 내 안에 모든 것을 버리니까 하는 일마다 잘 됐어요. 성준이 형에게 감사할 뿐이죠. “‘My Lord’는 경수(이경수)가 준 곡인데, 제게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그 자리에서 만들어 준 곡 이예요. 경수의 감수성이 돋보인 곡이예요”

하는 일 마다 잘 되리라
(글,곡 안성준 / 편곡 윤순)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사람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며 살아가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풍성한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서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악인들은 그렇지 않으며 바람에 흩어지는 겨와 같아라
죄인들은 의인들이 모인 자리에 감히 서지 못하리라


그와 이야기를 마치고 길을 나선다. 길 가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파도가 잔잔한 이유는 바다가 스스로 깊어지기 때문이다. 분노와 무표정의 파도가 우리 삶에 많은 까닭은 스스로 깊어 지려고 노력하지 않은 삶을 사는 까닭이다. 파도의 잔잔함과 사람들의 웃음은 닮아 있다. 웃음을 머금은 이와 만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사뭇 다르다. 그로 인해 버스 차창 밖 사람들이 다 웃는 얼굴로 보인다. 웃음과 미소는 그런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를 변화시키고, 앞에 있는 나까지도 변화 시킨다. 그리고 늘 하듯, 다짐한다. ‘그래 웃으며 살자’ 내일 아침, 그 기억을 갖지 못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이 순간만은 웃으며 살자. 그리고 웃는다. 앞에 있는 할머니가 나를 미친놈 취급하더라도..웃자. 그래 웃자. 그리고 감사하자!
 

최준익 막시모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성가 활동 시작
2006년 12월12일 Maximo&jesus story 1집 발표
2007년 8월 군입대
2009년 7월 전역전 전 장병대상으로 1번째 콘서트 장소: 육군 부사관학교
2009년 8월 ~ 현재 매주 육군훈련소 토요일 영세식 및 주일미사 지원
2009년 9월 ~ 현재 매주일 대방동 밤9시 찬양 미사
2009년 10월 ~ 2010년11월까지 pbc 사노찬노 中
“우리는 하나 코이노니아 지기로 1년간 활동”
매년 여름과 겨울 음악캠프 및 피정
현재 가톨릭 교리 신학원 2학년 재학중... 올해 졸업 예정
2011년 7월7일 최준익 막시모 2집 “하는 일 마다 잘 되리라” 발매

행사,음반구입 문의-최준익 막시모
akrtlah@hanmail.net
HP. 010-2631-0574



♣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최준익 노래

 

   
 

신상훈 / 현재 한국가톨릭문화원 음악팀장으로 활동. 서강대 철학과 졸업. SBS 효과실 음악감독(1998~98년). '신상옥과 형제들' 창단멤버(드럼, 1992년). 연극 및 무용극 음악작곡. 2011년 안중근 기념 연극작품 <그대의 봄> 음악감독 및 작곡. 무용극 <그대 흘러라 기쁨의 강물이 되라> 음악조감독.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최준익 막시모 1집앨범 자켓사진

미웠어요 아파 하는 모습에 왜 그 아픔 남기신 건지
해맑은 아이들의 눈 감당하기 작은 몸
지켜주지 못할 세상인데 사랑은 자꾸만 커져가
그런 웃음 속에 행복함. 우리에게 전하려…
My Jesus, 이제 알았어요.
당신께서 보내주신 천사였다는 걸
나의 주님 그 깊으신 뜻을
하느님 아버지 안에 내 형제라는 걸
My Jesus, 이제 알았어요.
당신께서 보내주신 천사였다는 걸
나의 주님 나를 보내소서
하느님 아버지 안에 나 무릎꿇으며
기도해요

  

1집 앨범은,서울에 올라와 7년 만에 낸 앨범이죠. 시련,아픔,외로움 그것이 다 내 것이었다고 생각했죠. 머리 속엔 온통 안 좋은 생각 뿐이었고, 늘 삶이 부정적이었죠. 그리고 원망했죠. 사람, 하느님, 친구, 지인…그들 모두를 원망의 대상이였어요. 아주 우연한 사건으로 삶의 창이 바뀌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 그거구나! 라는 거 있잖아요. 그리고 하나 둘 버리기 시작했어요. 마음의 병들을…. 내게 시련을 준 사람들의 이름과 그 기억들, 그것들을 차창 밖으로 버리는 순간 자유라는 뭔지 모를 기쁨이 찾아오는 거예요.”

살다 보면 큰바위에 넘어지진 않아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 아주 작은 돌부리. 그런 돌부리들은 평탄 했던 삶을 통째로 헝클어뜨리기도 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 씨 이야기>에서 소년은 피아노 올림바(F#)에 묻어있던 코딱지와 피아노 선생인 미스풍켈선생 때문에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좀머 아저씨의 죽음 앞에선 삶의 열정을 목격한 순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 진다.

"난 내가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그까짓 코딱지 때문에 자살을 하다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불과 몇 분 전에 일생 동안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을 보지 않았던가!"(파트리크 쥐스킨트. 좀머 씨 이야기, 열린책들. P98)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1집 앨범이 나오기 전엔 아픔의 모든 것을 버리지 못했는데, 1집앨범을 함께 만든 임동욱 형과 서강희 형과 창세기 연수를 다녀와서 모든 것을 내어 놓고 버릴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이를 위해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고, 원망이 감사로 바뀌고, 무감각이 미소로 변해가는 거예요. 창세기 연수 마지막 날 제 울음을 타고 모든 아픔들이 함께 씻겨 내려갔어요. 가장 힘들었을 때, 그때 내 모든 것을 길에다 버리기 시작했어요. 7년이 걸렸죠. 마음의 짐들…7년의 방황과 마음의 짐을 버린 후 7개월간의 새로운 만남이 제 삶이죠. 저는 7-7사건이라고 해요. 내 스무 살부터 나와 함께 있던 내 마음의 모든 짐들이 노래로써 만들어 지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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