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평화의 순례길을 만들자

▲ 구럼비 앞바다.(사진/한상봉 기자)

얼마 전 강정을 방문한 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는 구럼비 해안가에서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교구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80년 5월은 고립된 섬이었다. 지금 강정은 고립된 섬이다. 같은 마음으로 연대하며 평화가 필요하다.”

‘고립된 섬과 연대’ 그렇다. 지금 강정의 주민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인간을 배제한 채 독점과 이익으로 무장한 토건자본 세력과 권력의 앵무새로 전락한 악의와 왜곡의 기술자인 언론이라는 삼각동맹으로부터 고립된 채 4년이 넘는 세월을 처절하게 살아왔다.

김 대주교가 말한 대로 지금 강정의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의 가치와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연대라는 두 글자이다. 고맙게도 지난 4년 동안 외면당하고 무시되었던 강정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게 된 것은 강정에 거주하는 평화 운동가와 제주교구 사제 등 종교인들의 깊은 헌신 때문 이었다. 공사장 트럭을 움직이지 못하게 쇠사슬을 차에 묶고, 공사 강행을 하기 위해 해안에 접근하는 바지선에 올라 온몸으로 공사를 저지하다 구속되며, 강정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70여일의 단식을 하는 사람, 구럼비에서 텐트를 치고 이것을 지키자고 호소하는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 덕분 이었다. 이들에게 평화의 문제는 관심과 선언이 아니라 당위이고 저것을 잃으면 내가 살 수 없다는 생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온몸을 던질 수 있었다.

강정을 지키고자 했던 또 하나의 연대는 강우일 주교를 비롯한 제주교구 차원의 강정에 대한 관심이었다. 교구차원에서 강정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연대의 호소에 한국 가톨릭 전체가 동의하고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 어쩌면 강우일 주교 역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평화를 지켜야 하는 교회의 중요한 가르침이 실천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이 많았을 것이다.

‘길위의 신부’가 지난 7월 강정에 주소를 옮기고 거처를 마련하자, 강 주교는 문정현 신부가 사는 집을 방문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평화를 원하면 평화가 되라’고 삶으로 보여주었던 문정현 신부의 강정 생활은 제주교구와 주민, 평화운동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문정현 신부의 구체적 행동이 마을 주민들에게 싸워 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평화는 이렇게 연대를 통해 만나고 연대를 통해 지켜지는 것이다.

이렇듯 지금 필요한 것은 ‘연대를 통한 힘으로 강정을 지키는 것’이다. 강정 마을을 지키는 상징적 장소가 중덕 삼거리라는 곳이다. 말이 삼거리지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농수로 길이다. 이 길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삼거리 입구에 앉아 쇠사슬을 묶고 지낸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그 입구에 누군가 이렇게 써놓았다. "평화.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옳은 말이다. 강정의 평화는 강정만의 평화가 아니다. 강정의 평화는 한반도의 평화이고 한국사회의 평화이고 제주의 평화이고 나의 평화이다. 그래서 우리의 평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구럼비와 인간이 공생하는 평화, 무기를 내려 놓은 평화, 차별이 없는 평화, 잘못된 권력이 사용하는 공권력으로 부터의 평화. 이것은 바로 평화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강정은 긴장되어 있다. 이제 평화의 순례가 강정의 구럼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강정주민들 혼자서는 힘들다. 바다를 건너 하늘을 날아 강정에서 들리는 평화의 울림이 얼마나 위대한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9월 3일은 평화의 배, 평화의 비행기가 전국 곳곳에서 강정으로 향해 평화를 만나러 오는 날이다. 평화는 몸짓이고 행동이고 기도이다. 강정이 그리스도의 평화를 믿는 사람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평화의 순례길이 된다면 평화가 이긴다. 기다리고 기다려 본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당신의 힘이 필요하다.

한상욱/ 프란치스코,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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