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사빠띠스따 여성 원주민의 말)

카페 마리, “함께 살자”는 또 하나의 외침

명동 재개발 계획은 2년 전부터 추진되어 왔지만, 세입자(지역 상인)들의 반대에 부딪쳐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던 지난 4월 26일 명동 재개발 시행사인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주)는 세입자들에게 ‘5월 31일까지 명도를 하지 않으면 강제 명도를 단행하겠다’는 통보문을 보냈다.

세입자들은 2구역 대책위원회와 함께 이미 4월 중 명도집행이 끝난 3구역의 ‘카페 마리’에 상황실을 마련, 6월 14일부터 생계를 건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세입자들의 요구는 용산, 두리반 때의 그것과 같았다. “어디서든 장사를 계속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곧 생계에 대한 절박한 외침이다.

▲ 사진/정현진 기자

6월 19일 오후 3시30분, 용역 직원 70여명이 서울 명동 ‘카페 마리’에 들이닥쳤다. 통유리를 부수고 난입한 그들은 세입자들을 이불에 싸서 내던졌다. 당시 세입자들과 함께 그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은 침탈당한 카페를 지키며 촛불과 이야기, 기도와 노래로 밤을 지새웠다.

공권력보다 사적 폭력이 우세한, 공공성과 상식보다 대기업의 이익이 우선인 모순이 극대화된 공간에서 공고한 연대의 약속이 맺어졌다. 그로부터 평균 100여명의 시민들은 서로를 독려하고 더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카페 마리’를 지키기 시작했다. 불시에 들어오는 포크레인, 용역, 수수방관하는 행정기관, 심지어 불법 폭력을 외면하는 경찰과도 싸워야 하는 형편이 슬프고, 불법이 득세하는 싸움에 분노했지만, 이들에게 힘이 되는 것은 두리반의 승리와 이들을 지원하는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였다. 

쫒겨나는 이들의 작은 해방구 ‘카페 마리’

용산의 남일당, 홍대 두리반의 ‘슬픈 계보’를 잇는 ‘카페 마리’와 명동 재개발지역 세입자는 물론, 지금 다른 곳에서도, 앞으로 또 어딘가에서 생겨날 ‘세입자’들의 온전한 삶을 지키기 위해서 이 순간에도 트위터의 글은 끊임없이 올라가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의 손길이 미치고 있다.

‘카페 마리’의 연대는 또한 이미 아픈 이들이 서로를 보듬는 일이다. 어느날은 포크레인이 들이닥친 ‘카페 마리’앞에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이 함께 앉았고, 같은 싸움을 하고 있는 발레오공조의 노동자가 연대의 메시지를 띄운다. 아직도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두물머리의 농민들은 ‘카페 마리’의 사람들을 위해서 오이지와 양배추 김치를 담갔다.

명동성당이 가까이에 있어 오히려 안타까운 이들

@ngo**** “신부님.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기 힘들어 생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형제 중 한사람입니다. 명동성당 바로 턱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용역 폭력까지도 추기경님은 계속 침묵만 하고 계실 건지 좀 물어봐 주시면 안될까요?” (한 트위터의 글)

지난 6월 19일, 첫 침탈을 당했던 날부터 지금까지 ‘카페 마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향린교회의 목사들과 신도들이 있다. 향린교회는 2구역에 포함되어 있지만, 생존권을 위한 세입자들의 싸움에 동참하며, 매 주 특별기도회를 진행하고, 쉼터와 회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향린교회 임보라 부목사는 “자본과의 싸움이 이미 시작이 되어 있고 향린교회에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자본에 저항하는 것을 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 사진/정현진 기자

그러나 이에 반해 ‘카페 마리’의 싸움이 시작된 지 3개월이 되어가도록 어떤 반응도, 관심도 보이지 않는 명동성당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실망과 안타까움의 말을 남기고 있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이 평범한 일상, 살던 대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고통 받고 있는 곳, 가난하고 딱한 이들이 제 처지의 사람들을 알아보고 서로 끌어안고 위로하는 곳, 예수는 그런 이들과 함께 했던 사람이라는 믿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곳, 우리의 하느님과 우리의 신앙은 그곳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일까?

“재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 세입자와 서민의 처지를 도외시한다면 그 정책은 보완돼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이고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물질주의는 현대사회의 큰 문제입니다. 또한 자신에게만 피해가 없으면 이웃,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는 극도의 이기주의는 더 큰 문제입니다.”

지난 2009년 7월 19일, 철거위기에 놓였던 가좌동 천주교회를 방문한 정진석 추기경이 미사 중에 하신 말씀이다. 하지만 구구절절 옳은 저 말씀의 어디에 명동 재개발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본의 횡포를 수수방관해도 좋다는 근거가 있는가.

추기경의 말씀에 ‘단, 성당이나 교회관련 건물 철거의 경우에만’이라는 숨은 단서가 붙은 것이 아니라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불의에도 얌전히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저 말씀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함이 옳지 않은가.

이는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가톨릭 신앙인들 모두의 문제다.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내리고 있는데, 오히려 우리가 지극히 인간적인 기준으로 선을 긋고 말씀을 전파할 영역을 한정짓는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믿음을 배반하고 신앙에 누를 끼치는 일이 될 것이다.

‘카페 마리’앞에서 연대의 촛불을 드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용산에서, 두리반에서 그러했던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본다. 비록 서로의 처지가 여의치 않아도, 폭력이 두려워도 연민과 용기로 함께 하는 사람들. 그들이 진정 가난한 이들이며,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이들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 그것의 적극적인 실천이야말로 교회가 바라고 바라는 복음화의 길이다. 누군가 ‘악은 쉬운 길을 택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가, 나 자신이 쉬운 길에 대한 유혹에 빠져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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