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의 필름창고]작전명 발키리Valkyrie, 브라이언 싱어 감독, 2008년 작


고등학교 다닐 때에 대학 다니던 형들이 이런 노래를 불렀다. “파쇼의 제왕 히틀러에겐 7명의 아들이 있었는데요. 그중에 하난….” 뭐 이런 노래였는데 여기서 지칭하는 게 누구인 줄 아는 사람은 다 알 테다. 히틀러는 이처럼 어떤 악의 화신, 독재자의 대명사처럼 우리 머릿속에 박혀 있다.

히틀러는 원래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버트런드 러셀 경이 격찬한 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그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화가를 꿈꾸던 이 가난한 오스트리아 청년은 어찌 하다 독일까지 흘러 들어가고 군의 첩보활동을 하면서 당원이 모두 7명이었던 한 군소정당을 기웃거리다 거기에 매료되어 가담한다. 그 군소정당이 훗날 독일을 장악한 이른바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 바로 나치다.

게르만족의 영광을 부르짓던 히틀러는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을 모방한 뮌헨 폭동을 일으키는데, 사실 제일 먼저 도망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일로 형을 사는데 감옥에서 <나의 투쟁(Mein Kampf)>을 저술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1차대전의 패전과 베르사유 조약의 압박 속에서 깊은 콤플렉스에 빠져 있던 독일사람들에게 히틀러는 독일의 위기를 극복해줄 구세주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나치는 결국 선거를 통해 독일을 장악한다. 이로써 인류역사상 가장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정치체제가 탄생한다.(그럼에도 한 편의 코디미 같은 사실이 있으니, 1939년 히틀러가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고 하는.) 에리히 프롬이 지적했듯이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예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나치즘은 히틀러에게 복종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면서, 유태인을 학대함으로써 욕구 불만과 열등감을 해소하는 집단심리의 표현으로, 마조히즘과 새디즘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 역사 속의 악의 화신이요, 독재자의 전형인 히틀러도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다.

▲ 1935년 나치 집권 이후 뮌헨 폭동을 기념해 발행된 우표

 

 

 

 

 

 

 



인민의 의지가 곧 총통의 의지였던 이른바 나치의 제3제국[1934∼1945, 껍데기만 번드르 했던 신성로마제국(962∼1806)이 제1제국,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으로 통일된 독일제국(1871∼1918)이 제2제국이다.]은 독일민족의 열등감과 우월의식(열등감의 동전의 한 면이었던)의 범벅이요, 자유보다 질서와 힘을 갈망했던 두려움의 산물이었다. 대독일주의자요, 결과적으로 실천적 케인스주의자가 된 히틀러는 독일을 완전히 꿀꺽 삼켰고, 오른손 높이 쳐들고 ‘하일 히틀러(Heil Hitler: 히틀러 만세)’를 외칠 정도로 그 자체가 독일과 동일시되고 만다.

훗날 나치의 경험에 버거워했던 누군가 이런 말을 할지 모른다. 멕시코의 한 독재자가 미국 때문에 신음하면서 남겼던 말을 흉내내어 ‘아 불쌍한 독일이여, 하느님은 너무 멀리 있고, 광기어린 인간들만 너무도 가까이 있구나.’ 독일의 풍성한 문화를 예찬했던 이라면 이럴 만하다. ‘아, 독일 어쩌다 이렇게 되었니, 베토벤, 칸트, 헤겔, 괴테가 있던 독일은 어데로 가고, 그 찬란하고 풍성했던 바이마르의 독일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허무하게 저물어가고 광기에 찌든 세력들이 독일을 꿀꺽했노라고.’ 어떤 말을 하든 나치 독일 시절을 한탄할 때는 그 시대의 광기를 거론할진대, 근대이성의 한계와 야만성을 지적하는 일부 지식인들은 나치는 광기의 집단이 아니라, 이성의 극단화를 보여준 집단이라고 말한다. 그 거대한 수용소와 소각 시스템, 반체제 인사를 처형하고 유족들에게 재판비와 시신 소각비까지 청구하는 그 철저함은 오히려 광기어린 인간들에게 나타날 수 없다고.

히틀러는 독일을 장악한 뒤에 오스트리아를 합병했고, 주변의 여러 나라를 손도 대지 않고 코 푸는 격으로 잠식해갔다. 그것도 양에 차지 않아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비극적인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한다. 실제 히틀러 암살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배경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때 ‘사막의 여우’ 롬멜이 잘나갔다가 고전하기 시작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시작된다.

 

▲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참전한 북아프리카 전선. 갑작스런 공습이 시작된다. 톰 크루즈의 절제된 연기가 높은 평을 받았다.


영화의 주인공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조국과 국민에게는 충성스런 장교로 히틀러에게는 강한 반감을 가졌다. 연합군의 공습으로 한쪽 눈과 한쪽 손을 잃은 채 독일로 귀향한다. 그는 예비군 사령부에 들어가 비밀 저항세력에 가담하여 히틀러 제거 작전에 참여한다. 저항군부는 단순히 히틀러의 암살뿐만 아니라 이후 임시정부를 세워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 이를 위한 쿠데타 시나리오를 짰다.

여기에 틈새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발키리 작전’이다. 그것은 히틀러가 암살을 비롯한 자신의 신상 변화로 인한 소요 사태가 발생했을 때, 자신과 자신의 정부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 질서가 회복될 때까지 독일 예비군이 주요 정부 기관을 장악한다는 내용의 국가비상대책이었다. 저항군부는 더욱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거사를 도모하고자 발키리를 수정하는데, 슈타우펜베르크는 안대 대신 의안을 집어넣고 조금 긴장된 기색으로 히틀러를 만나 사인을 받아낸다. 

 

▲ 히틀러 암살 작전의 주역들. ‘총통이냐, 독일이냐’의 기로에서 정의와 독일을 선택한 이들의 운명은 과연?


 

▲ 발키리는 전사자를 저세상의 궁전으로 데려가 접대한다.(그림 성주삼 화가)

영화에서는 발키리로 표기되지만, 발퀴레(Die Walküre)는 본래 북유럽 신화에서 유래하는 반신녀(半神女)들로, 인간 세상의 전쟁터에서 용감한 전사자(戰死者)가 생기면 저세상에 있는 ‘전사자들의 궁전’으로 데려와 접대를 한다. 이처럼 용감하게 싸우다 죽으면 복락을 얻는다는 생각이 게르만족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토록 히틀러가 찬양했던 바그너, 그의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 제2부가 ‘발퀴레’다. 들어보면 매우 익숙한 음악인데, 영화 속에서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을 아이들이 맞이할 때 이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온다.

저항군부는 히틀러를 제거하고 독일을 재편하기 위해 끊임없이 거사를 시도한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조마조마하며 간신히 폭탄을 터트려 히틀러를 암살했다고 생각한다. 히틀러의 사망소식이 타전되고, 바로 발키리가 가동하여 예비군 병력은 히틀러의 친위부대인 게슈타포, SS친위대 등을 체포하여 무장해제시킨다. 그 막강 위력을 뽐내던 친위세력들이 아주 무기력해지기 시작하는데, 그게 바로 발키리의 힘이다. 여기서 차분하게 진행되는 쿠데타의 양상은 마치 12·12를 연상시킨다. 물론 쿠데타 세력의 의도는 사뭇 다르겠지만.

차분하게 이들의 계획이 성사되는 듯했고, 서서히 독일을 장악해갔다. 모든 일은 아주 숨 가쁘게 돌아갔다. 그런데 히틀러는 살아 있었고,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서 전세는 뒤집어진다. 저항세력은 하나씩 둘씩 체포되고 곧바로 처형된다.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독일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총성과 함께 사라져간다.

 

▲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그는 히틀러가 총통이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1차대전 패망 후, 이토록 독일국민의 사기가 앙양된 때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독일제국 국민들의 힘을 결집시킨 지도자의 취임에 기뻐하지 않을 독일국민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갈수록 총통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그 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저항세력에 가담하게 한다.

영화상에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독일과 유럽의 운명을 생각하여 히틀러 암살에 가담했다고 묘사한다. 정작 그가 히틀러를 제거하고자 했던 중요한 이유는 아마 더 이상 자신의 지도자를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게다. 롬멜의 전차부대는 뛰어난 지략과 매혹적인 리더십으로 약소한 병력에도 불구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선전했다. 히틀러가 여기에 조금만 더 지원해도 밀려나지 않았을 텐데, 히틀러는 무모하게도 러시아를 침공하기 시작한다.

역사상 몽골을 빼고 그 누구도 감당 못했던 러시아. 후퇴하면서 집 안의 곡식도 다 태워버리고, 심지어 공장 기계까지 다 뜯어 후퇴해 다시 지으면서 저항하고, 게다가 스탈린이 교전 중인 곳에서 앞서 지휘를 했다니. 이런 러시아를 무슨 재간으로 이길 수 있겠나. 독일은 러시아를 침공함으로써 칸트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칼리닌그라드로 개명된다)를 비롯한 영토 상실과 수많은 인명피해 등 쓰디쓴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다.

한창 전쟁 중일 때 독일을 위해 싸웠던 군인들은 저 인간을 놓아두었다가는 우리 독일 말아먹겠다 생각했겠다. 독일과 총통을 동일시할 것인가, 독일과 총통을 분리시킬 것인가, 이것이 문제가 되었을 법하다. 자신의 지도자에게 더 이상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이 실질적인 암살의 동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형사 콜롬보’라는 놀이가 있어 범인을 지목하고 형벌을 정하여 팔뚝을 때리거나 하면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 범인으로 ‘히틀러, 레닌, 모택동, 김일성’이 있었다. 그런 놀이를 하면서 막연하게 히틀러가 나쁜 사람이라 생각했다가 뭔가 폼이 나서인지 그에게 매료되기도 했다. 한쪽 손을 가슴에 붙이고 대중을 향해 열변하는 그 카리스마 그리고 독일군 군복은 세상 어느 나라 군인의 군복보다 멋있었다. 게다가 나치 독일과 관련된 많은 퍼포먼스는 웬지 뽀다구가 난다.(야만적이지만 훗날 생각해 보아도 괴벨스의 분서 퍼포먼스와 퇴폐로 규정된 화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불로 싸지른 탄핵미술전은 형태상으로는 아방가르드적이다. 나치즘은 여러모로 미학적이다. 고도로 연출된 현란함에 대중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지금의 우리라고 예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가 한 민족을 파멸로 이끌고, 결국 자본의 앞잡이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뒤 히틀러가 얼마나 극악한 인물인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점은 유시민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히틀러라는 지독한 개인 하나가 독일을 완전 파국으로 이끌었다 할 수 없다. 유대인 학살과 관련해서도 사실 히틀러가 개인적으로 유대인에게 원할 가질 이유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심하게 앓았을 때 잘 치료해주고 치료비도 미루어준 게 유대인 의사였고, 가난한 3류화가 시절에 그의 그림을 사준 것도 유대인 화상이었다고 하니 말이다.(물론 부유하고 뛰어났던 그의 유대인 동기동창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어떤 콤플렉스가 있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최근 일상사 연구에 따르면 독일민족 전체가 유대인 학살에 공범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 개인의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해도 역사는 수많은 인과관계와 무수한 갈등의 접점에서 그에 맞는 ‘역사적 역할’을 배태하는지 모른다. 주연 히틀러, 조연 괴링, 괴벨스 기타 등등, 수많은 배역 한참 멍청해지고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며 자신을 내팽개친 독일사람들. 그래서 역사는 그 결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간단하게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E. H. 카의 말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할 때, 대화의 주체, 시점, 수준에 따라 아주 다양한 대화가 가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치지 않는 역사적 물음이 존재하게 된다.

어쨌거나 수많은 사람들이 억압받는 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네가 아니지’ 하며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할 때에 가만있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설령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광야에서 피를 쏟고 사라진다 해도 이것은 아니지 않은가 외치고 저항했던 많은 사람들. 히틀러에 맞서 산화한 본회퍼, 백장미단의 한스 숄과 그의 여동생 조피 숄 여기 슈타우펜베르크를 비롯한 저항군부, 그 외에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 히틀러와 그 일당이라는 악역의 주연과 조연이 있었다면, 크게 보이지 않았을지언정 이들이야말로 역사의 진정한 주연들이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집에서 이 영화 본 얼마 뒤 귄터 그라스가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던지)에서 오스카로 표상된 것처럼 성장을 멈춘 독일에게 성장의 씨앗을 남겨준 이들이다. 이들은 참으로 안타깝게 사라졌지만, 그들의 숭고한 삶과 죽음은 독일 정신의 희망이요, 승리였다.

 

▲조피 숄, 한스 숄, 본회퍼. 그들은 잠들면서 이내 독일을 깨웠다.

 

 

 

 




저항 그것은 예전의 일도 남의 나라 일도 아닌 현재진행형의 우리 일이기도 하다. 백장미단의 편지는 언제라도 우리를 기습할 수 있고 현재도 그러한 인간성 파괴 세력에 맞선 굳건하고도 숭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깊게 생각해보면 오히려 짐승보다 더 잔인하고 끔찍할 수도 있는 게 인간이건만, 그럼에도 ‘인간다움’에 숭고하고 위대한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한 가지가 우리가 꿈꾸는 인간성 회복을 위한 저항이다.

"우리들은 우리 자신의 능력이 가능한 한 인간성을 파괴하는 자들과 독재체제와 그리고 그와 유사한 모든 절대국가의 체제에 저항해야만 한다. 우리들은 어디에 있든지 간에―비록 무기는 들지 않았지만, 이 무신론적인 전쟁조직의 계속적인 활동을 막기 위해 저항, 또 저항해야 한다. 자, 너무 늦기 전에, 모든 도시들이 쾰른처럼 폐허가 되기 전에 모든 청년들이 한 사람의 천박한 오만 때문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기 전에 저항의 대열을 정비하자. 또 우리들은 결코 잊지 말자. 모든 민족은 그들이 선택한 정부를 세울 권리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라!"(잉게 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정암,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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