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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다[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마지막회] 상업주의 시대의 교회와 영성
한상봉  |  isu@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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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8.14  13: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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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이제 몸이 없습니다, 당신의 몸밖에는.
그분에게는 손이 없습니다. 당신의 손밖에는.
그분에게는 발이 없습니다, 우리의 발밖에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눈을 통하여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발로 뛰어다니시며 선을 행하십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의 손으로 우리를 축복하고 계십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우리가 그리스도를 입어 그분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여 지금 여기에서 당장 그분의 부활을 경험하라는 것이다. 그분의 눈빛으로 사물을 보고 그분처럼 길에서 마을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울고 웃고 절망하면서 그 안에 서려 있을 희망을 아울러 나누어 가지라는 요청이다. 우리의 손으로 우리 자신을 위로하고 다른 이들을 섬기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온 마음이 온 육신이 그분을 갈망함으로써 그분을 닮아 그분의 착한 성정(性情)을 차지하라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글쎄, 아마도 ‘상업주의’ 시대라고 부르는 게 가장 적절할 듯싶다. 후기 산업사회라느니 포스트모던 시대라는 표현도 있지만, 결국 우리 시대에는 흙과 물과 공기까지도 상품화의 세례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는 ‘자본과 상업’의 천하통일이 달성된 것이다. 이 흐름에 거슬러 인간을 회복해야 하는 게 우리 시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문득 정말 그러한 지 안부가 궁금해진다.

   
▲ 상업주의와 자본이 교회마저 삼켜 버린 듯하다. '가톨릭일꾼운동'의 공동창립자인 미국의 예언자 피터 모린은 "상인들이 교회를 저당잡았다"고 표현했다. (사진/한상봉 기자)


교회 밖에서 더 영적인

우리는 교회의 실상을 분명하게 바라보기 위해 먼저 우리의 시선을 한 걸음씩 그 울타리 밖에서 보아야 한다. 이처럼 교회 울타리를 떠나보아야 교회의 실체가 보이고, 마침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심정과 이유를 따뜻한 시선으로 들어줄 채비를 갖추게 된다. 시대가 각박할수록, 삶이 생존경쟁에 무자비하게 내몰릴수록 사람들은 잃어버린 영적 갈증을 되새긴다. 이게 아닌데, 성찰할 기회를 얻는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그네들의 요구를 받아 안고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비전을 그들에게 주어야 한다. 아니, 그네들의 갈망 안에서 그 비전의 실마리를 찾아내어야 한다. 그들과 동반자가 되어 지금 여기라는 이승의 세월을 잘 건너가야 한다.

교회는 상업주의 시대에 쌍생아처럼 등장한 ‘영성의 대중화’ 흐름을 잘 살펴야 한다. 교회마저도 실상 자신감을 잃어버린 영성의 문제를 교회 밖에서 목숨 걸고 직면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새로운 도전이다. 우리 교회가 잃어버린 영적 보물을 다시 닦아 세우라고 요구하는 표지다. 교회는 겉으로 선포하는 것과 다르게 세상에 너무 깊이 침식되어 있다. 상인(商人)의 정신이 교회의 리더십을 완전히 삼켜버리기 전에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바람 속 갈릴래아의 예수에게로 우리는 달려가야 한다. 그분에게로 가서 ‘어찌하오리까?’ 여쭈어야 한다.

요한 23세 교황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문을 열었던 40년 전의 그 신선한 바람을 다시 새겨야 우리에게 살 길이 열릴 것이다. 이제는 성령의 시대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낡은 옷을 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그 낡은 옷을 고집하는 가톨릭근본주의의 늪을 지나 그분과 투명한 눈빛을 맞추는 땅으로 가야 한다.

가톨릭근본주의, 유아적 신앙 강요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다.”

   
▲ 붙에 타서 숯검정이 된 성모자상. 부서진 손 목 사이로 여전히 새살이 드러나 있다. 왜관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 소성당 안치.(사진/한상봉 기자)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중요한 것은 바라보는 지점이다. 우리가 천국을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는 마침내 천국에 이를 것이다. 우리는 미래의 관점에서 지금여기를 바라보고 있다. 내 발끝만 쳐다보고 있는 자는 오래 걷지 못한다. 발부리에 걸릴 만한 돌멩이를 피하느라 너무 많은 기력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먼 길을 가는 동안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적이 아니라 벗으로 볼 줄 알아야 삶은 견딜 만하고 여행은 그 자체로 즐거운 리듬이 된다.

우리는 유아적 신앙에서 어느덧 어른의 말을 배워야 하는 신앙의 단계로 성큼 올라와 있다. 당장에 요한23세 교황 덕분에, 교회 안의 많은 현자들의 지혜에 기대어 우리의 믿음도 남달리 성장하는 것이다. 다시 엄마의 자궁으로 돌아가려는 자폐아동이 되지 않으려면 ‘두려움 없는 사랑’에 몸을 맡겨야 한다. 낯선 세상조차도 새로운 배움의 순간으로 여기고 환대하며, 어른이 되려면 좀 힘들더라도 자신과 다른 생각조차 다시 새겨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가톨릭근본주의는 그런 점에서 유아적 신앙에 사로잡혀 제 고집만으로 억지를 부리며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태도로 보인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는 아이들의 말을 하게 되지만, 어른이 되면 새로운 언어를 배워 나이에 걸 맞는 노래를 부르고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단맛은 삼키고 쓴 맛은 뱉어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것을 어른들은 경험으로 알고 행동한다. 그러니 단순히 내 입에 달고 칭찬받을 일만 골라서 하려는 기회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업주의 시대에 걸맞게 교회를 이해타산으로 셈하여 운영하고, 고객의 입맛에 복음의 일부를 전부인양 꿰어 맞추려는 태도도 문제려니와, 교회장상들의 비위를 살피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어린아이들이 단순하면서도 영악한 것처럼 그렇게 처신하지 말고, 믿는 대로 ‘오롯한 주님’이신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눈치를 살피고 부르심에 응답하려는 지조와 뚝심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절임을 절감한다.

   
▲ 우리 교회는 '낡은 옷을 고집하는' 가톨릭근본주의의 늪을 지나 하느님과 투명한 눈빛을 맞추는 땅으로 가야 한다, 기도와 실천 안에서.(사진/한상봉 기자)

그리스도인, 세상 안에서 천상의 등불처럼

천국으로 가는 모든 길이 천국이다. 우리 교회는 더 깊숙이 세상에 들어가야 하겠고, 그러나 세상과 전혀 다른 가치를 살아야 하겠다. 로마제국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박해받던 시절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서로를 형제자매로 불렀으며, 특히 가난한 하층민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느꼈다. 특히 과부와 고아와 노인과 병자들,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 실업자들과 옥에 갇힌 이들과 쫓겨난 사람들, 순례하는 그리스도인과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각별한 도움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교부 테툴리아노는 “보라, 저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지!”라고 하였다. 260년경 알렉산드리아에 흑사병이 창궐하였을 때도 그리스도인들은 도망가지 않고 남아서 신자 비신자 가릴 것 없이 병자들을 돌보았다. 이를 두고 교부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곳곳에 공동체를 일으키시어 미신과 무례함과 불의에 젖은 인간들의 공동체들에 대항하도록 하셨다. 사실 그런 따위의 사람들이 어디서나 도시공동체들의 시민대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스승과 교육자 노릇을 하는 하느님의 공동체들은 뭇 겨레의 공동체에 비하여 세상 안에서 천상의 등불처럼 그들 속에서 낯선 사람들로 살고 있다.”

세상속에서 낯선 여행자로 사는 것, 자비의 실천으로 타인과 구별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니 우리는 생각뿐 아니라 행동으로 우리의 신실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물며 교회의 가르침이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교리와 신학은 성채가 아니라 성긴 울타리가 되어 무고한 어린 양들이 이 울타리에 받쳐 죽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 시간 다시금 교회를 위해 성령강림을 기대해야 한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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