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커스 보그의 눈으로 본 역사적 예수-9]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는 미국 오레곤 주립대학 교수이고,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는 ‘예수 세미나’의 대표적 성서학자이다. 그의 글은 쉬우면서 학문적 양심에 솔직하고, 신앙의 성숙을 향한 열정도 담겨 있다. 교회에서의 가르침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해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를 떠났다가 20여년만에 돌아와 지성적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여러 저작들을 통해 열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그의 책 <예수 새로 보기>(원제 Jesus : A New Version, 1987)의 요지를 추리면서 오늘날 어울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어떤 것이어야 할지 간단히 정리해본 글이다. -필자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그랬듯이, 예수도 사회적 위기 상황을 고발하고, 위기 상황의 중심에 있는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 경고하고, 이스라엘 전반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했다.(207-212) 예수는 자기 동족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던 지도자들에게 “눈멀었다” 비판하면서, 소경 인도자를 따를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지 깊은 염려가 섞인 경고를 했다. 예수의 그런 자세는 고향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드러났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예수가 어느 날 고향 나자렛으로 갔다. 그곳 회당에 들러 성서도 읽고 설교도 하고 고향 사람들을 만나 대화도 나누었다. 성서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변형된 내용들이 전해오지만(마태 13,54-58; 마르 6,1-6, 루가 4,14-30), 대체로 예수가 고향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고 전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사람들은 예수의 어릴 적 모습이나 집안에 대해 잘 알아서인지, 보잘 것 없는 시골 동네 출신 ‘요셉의 아들’에게서 나오는 놀라운 설교에 감탄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듣자하니 다른 곳에서는 기적도 많이 보여주었다는데, 네 고향에서 먼저 보여주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이었던 것 같다.(루가 4,23; 마태 13,57 참조) 출신 성분이나 배경도 시원찮은 이가 유명세를 타고 있으니 질투심이 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식의 반응이나 태도에 다소 실망했는지 예수는 이렇게 탄식했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가 4,24; 마르 6,4; 마태 13,57)

이방인을 구원하신다

특히 루가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주변 반응이 냉소적이자 마치 작심한 듯 하느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임하리라는 식의 설교를 한다. 기원전 9세기 예언자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절, 지독한 가뭄이 들어 이스라엘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속출했는데,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닌,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 엘리아를 보내 식량 문제를 해결하게 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엘리아의 제자 엘리사 때는 이스라엘에도 치료받아야 할 심한 나병환자가 많았지만, 하느님은 이스라엘인이 아닌, 시리아 사람 나아만의 문둥병을 치료해주셨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사렙다, 시리아 지역이 유대인의 눈으로 보자면 부정한 이방인의 땅이었다는 데 있다. 하느님이 의로운 이스라엘 ‘안’보다 부정한 이스라엘 ‘밖’에 먼저 구원의 손길을 뻗치셨다는 것이다.

성서학적 견지에서 보면, 이 예수의 설교는 ‘이방인’을 통해 복음이 전승되던 초기 교회의 상황을 반영하면서 생성되고 유통되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설교의 요지는 특정한 혈연에 속한다고, 습관적으로 하느님을 좀 안다고 구원까지 독점하리라 착각하지 말라는 경고가 들어있다. 하느님의 구원은 인간의 혈통, 특정 제도, 집단 안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분이나 혈연상의 이유로, 그리고 종교나 이념적인 이유로 죄인을 양산하고 배타한다면, 도리어 하느님의 구원이 더 멀어질 수 있다는 일종의 신학적 경고였던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수를 벼랑에서 떨어뜨리려

예수가 이런 식의 설교를 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중립적이거나 때로는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던 고향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는 어찌나 화가 났던지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어낸 뒤 산 벼랑까지 끌고 가 밀어 떨어뜨리려고 했다고 한다.(루가 4,29) 예수를 낭떠러지에서 밀쳐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예수는 위기의 상황을 모면하고 슬쩍 빠져나가 제 갈 길로 갔다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고향의 유대인들에게는 신이 선택된 백성인 자신들이 아니라 이방인을 구원하신다는 식의 선포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신과 자신들을 모독하는 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신이 자신들 ‘밖’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생각을 도무지 해보지 않았던 유대인들에게 이 발언은 오랜 집단적 전승과 개인적 신념을, 그리고 ‘거룩한’ 하느님과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발언이나 매한가지로 들렸던 것이다. 그래서 절벽에서 예수를 밀쳐 죽이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분명하고 분명한 것은 하느님이 혈연적, 민족적, 관습적인 이유로 자신들만을 구원하시리라는 이스라엘의 당연한 듯한 편견을 예수는 신앙과 지성의 양심에 비추어 용감하게 깨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랑과 정의의 십일조

예수의 언행은 늘 그런 식이었다. 예수는 전반적으로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율법전문가들은 “눈 멀었으며”, 그들이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려 남들마저 그 지식을 알지 못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재물의 십일조는 드리지만 정의와 사랑의 십일조는 드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관례적으로는 거룩하게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더러움의 길을 간다는 비판이었다.

문제는 율법가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당시 기준으로 보면 나쁜 사람들이나 위선자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도리어 정결한 사람들이었다.(219) 그런데 예수는 그 정결함의 대상과 내용을 관례와는 다르게 보았다.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며,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다 보면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죄인을 자꾸 양산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룩(聖)의 정치’가 아닌 ‘자비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218-220)

그러나 그러한 신념은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근거로 작용하게 되었다. 예수는 하느님이 예언자를 이스라엘 사람들 중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의 “단 한 사람도 고쳐주지 않으셨다”(루가 4,26-27)는 경고를 통해 관습적 행위가 하느님의 구원을 독점하는 근거가 된다는 생각을 착각이라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런 예수를 따른다는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끝)

* ( )속 숫자는 마커스 보그, <예수새로보기> 김기석 옮김(한국신학연구소, 2004)의 쪽수입니다.

이찬수 / 종교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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