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박병상]

국토가 폭넓은 위도에 걸쳐 있는 일본은 생물상이 우리보다 다양하다. 식물도 그렇지만 동물도 다양한데, 희한하게 우리나라에 있지만 일본에 없는 동물이 있다. 수달이다. 그래서 우리 하천을 부러워하는데, 원래 수달이 일본의 하천에 없던 건 아니었다. 우리처럼 난폭한 사냥으로 그 수가 급격히 줄었지만 그 때문도 아니다. 아무리 사냥이 집요했다 해도 수달처럼 깊은 골짜기에 숨어 지내는 작은 동물을 한순간에 절종시킬 수 없었을 터. 일본의 학자들은 강폭을 줄이고 직선으로 만들면서 강과 육지의 생태계 연결고리를 무자비하게 단절시킨 게 치명적 원인이었다고 진단한다.

예년보다 강수량이 많았던 올 장마철과 장마 뒤에 들이닥친 이번 국지성호우에도 4대강에 홍수 피해가 없었다는 걸 자화자찬한 정부당국과 한나라당은 본류에 이어 지천도 정비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언론을 보도했다. 그 자리에 동석한 신임 환경부장관까지 의견을 함께했다고 하니 현 정부의 정체성을 더 물어 뭐하겠나 싶은데, 무려 20조 원에 달하는 예산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22조를 퍼부은 결과 본류에 피해가 없었는지 그 정확한 인과관계를 결코 밝히지 않은 현 정부가 권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홍수 피해가 지천에 집중되었다는 걸 들먹이는 저의가 새삼 궁금하다. 결국 토목자본과 정치의 끈끈한 동맹, ‘토건마피아’의 이익을 지류 사업으로 연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아야겠지.

▲ 심하게 오염된 광주천의 모습. 전문가들은 수질개선을 위해서는 4대강 사업의 주요 공사지역인 강 본류가 아닌, 지천의 오염을 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사진제공/민중의 소리)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일관되게 부정했던 전문가들은 홍수 피해는 제방 정비가 거의 마무리된 본류가 아니라 지류에서 95퍼센트 이상 발생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강조해왔다. 이번 장마와 국지성호우에서 그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나. 본류에 발생한 사고는 대형 보 공사를 위해 강물의 도도한 흐름을 무모하게 차단한 임시 물막이 보에서 발생했고, 강둑 너머 강바닥에서 6미터 깊이로 긁어모아 산더미처럼 올린 모래더미가 빗물에 다시 쓸려들어간 일이 사건이라면 사건이었다. 지류는 달랐다. 본류가 전과 달리 깊어지자 물살이 더욱 거세진 까닭에 바닥이 깊게 패였다. 그로 인해 지류에 놓인 다리의 교각과 상판이 무너지고, 제방이 물살에 휩쓸렸다. 일찍이 없던 현상이 발생한 이른바 ‘역행침식’으로, 벌써 누차 입 아프게 지적해왔던 일이다.

결국 4대강 사업으로 피해가 엉뚱하게 지류에 전가되자 얼씨구나 예산을 막대하게 편성하자며 군침을 흘리는 꼴인데, 그런 토건마피아는 본류에 이어 지류에서 발생할 생태계 재앙과 후손에게 돌아갈 감당할 수 없는 피해에 눈을 질끈 감는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두둑한 배짱이 자식 둔 이로서 심히 부담스러운데, 그들은 이 땅에 제 자식을 키울 생각이 아예 없는 모양이다. 지류마저 긁어내면 그 상류의 생태계마저 무너지고, 재난은 영속화될 수밖에 없다. 큰비가 올 때 거세지는 지류의 물살은 거대한 바위와 자갈을 사정없이 밀고 내려올 텐데, 어떻게 정비하겠다는 겐가. 강바닥과 둑을 두툼한 철근콘크리트로 싸바르겠다는 겐가.

4대강 사업으로 지천이 침식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거듭되자 정부는 ‘하상보호공’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현실은 어떠했던가. 올록볼록한 철근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든 알량한 하상유지공마저 바닥과 제방에서 처참하게 떨어져나가지 않았나. 그렇게 드러난 강바닥은 생태계의 근간인 모래와 자갈을 잃고 더욱 패이며 인근 농경지와 가옥의 축대마자 위협했다. 지구온난화가 이끄는 국지성호우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될 텐데, 정부는 지천을 어떻게 정비할지 아직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천도 본류처럼 바닥을 파고 커다란 보로 흐름을 차단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거세게 범람하는 빗물에 휩쓸려 보와 제방이 무너질 것이다. 만일 ‘100년 빈도의 강우에도 끄떡없는’ 하상보호공을 바를 거라면, 댐처럼 무지막지한 철근콘크리트로 바닥과 제방과 보를 준비해야 할 텐데, 그 수명도 그리 길지 않겠지만, 완공 전후 우리나라의 강은 돌연 한낱 수로로 저주받게 될 것이다. 수서곤충 하나 품지 못한 채 비가 약간만 내려도 거센 물길을 본류로 인도하기만 하고 그치면 졸졸졸 약한 물이 오염돼 흐르는 콘크리트 수로가 예상된다. 이후 강 주변 생태계는 크게 위축될 것이고 수달은 일본처럼 사라지고 말 테지.

4대강 사업으로 멀쩡했던 강이 콘크리트 수로가 되면 이 땅의 시인은 어디에서 시를 읊어야할지 탄식한 이가 있는데, 생태학적으로 볼 때 문화와 역사를 이어주는 강은 삼라만상의 생물을 이어준다. 상류와 하류만 이어주는 게 아니라 주변 지하수와 연결돼 있고 강 좌우의 숱한 생태계와 이어지면서 선조의 기억을 후손에게 희로애락을 담아 넘겨준다. 세월까지 이어주는 거다. 이 땅의 토건마피아가 공식적 22조 원을 챙겨 올 10월 안에 완공하겠다는 4대강 본류와 앞으로 20조 원을 더 챙기겠다는 4대강 지천의 운명은 어떻게 되려는가. 콜레스테롤에 막혀 탄력을 잃은 대동맥과 소동맥처럼 굳을 테고, 생태계의 역동성을 잃은 국토는 얼마 견디지 못하고 파탄나고 말겠지. 그때 거룩한 표정을 관리하는 토건마피아가 생태하천 운운하며 더욱 늘어난 예산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

강가에 콘크리트를 쳐서 수달을 사라지게 만든 일본은 우리와 달리 1억 톤 정도의 강물을 담는 10미터 이상의 대형 보로 흐름을 무자비하게 틀어막지 않았다. 지천을 철근콘크리트 수로로 저주하지 않았기에 분포 상황이 위태로워도 아직 다양한 담수어류와 수서곤충을 남기고 있다. 토건마피아의 영속된 이익을 위한 우리 4대강 사업과 이후 전개될 지천 사업은 하천 생명체의 위협을 넘어 후손의 생명까지 위협할 게 분명하고, 수달은 그 지표가 될 텐데, 최근 4대강 사업에 지장이 생길까 그러는지 환경부는 수달을 멸종보호 대상 동물의 명단에서 삭제하는 친절을 베풀려 든다. 눈앞의 돈벌이를 위해 후손을 거듭 욕보이는 선조, 과거에 없었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