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전쟁 다룬 시오노 나나미의 책 2권

<로마인 이야기>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가 십자군 전쟁과 관련된 두 권의 책을 펴냈다. 한 권은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이고, 다른 한 권은〈십자군 이야기1>이다. 앞의 것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장엄한 판화를 바탕으로 나나미가 짤막한 설명과 함께 전체적인 십자군 전쟁을 조명한 책이고, 뒤의 것은 본격적인 십자군 전쟁 이야기를 써 내려간 책이다.

▲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지음 /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그녀는 십자군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그 배경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른바 카노사의 굴욕 이후 교황과 황제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과도한 십자군 전쟁을 촉발시켰고, 자기 최면에 빠진 은자 피에르를 중심으로 무지한 군중들이 집단 최면에 이끌려 십자군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게 그것이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를 통해 '성지 탈환'에 대해 다음처럼 연설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이슬람교도는 지중해까지 세력을 확장해 너희 형제를 공격하고, 죽이고, 납치해 노예로 삼고, 교회를 파괴하고, 파괴하지 않은 곳은 모스크로 바꾸고 있다. 그들의 폭력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그들에게 맞서 일어설 때다.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그 땅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워라. 설사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너희의 죄를 완전히 용서받게 될 것이다. 신께 부여받은 권한으로 나는 여기서 그것을 분명히 약속한다(24쪽)."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를 보면 그야말로 웅장한 그림 하나가 등장한다. 거대한 십자군 무리들이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며 벅찬 감동에 전율하는 게 그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북유럽에서부터 먼 길을 거쳐 수많은 시련을 이겨 내고 당도했으니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나미는 그들 십자군 부대가 이슬람을 곧바로 공격하지 않고 십자가를 앞세우고 줄지어 찬송가를 부르며 성벽 아래를 행진했다고 말이다. 그만큼 그들도 예루살렘 땅을 신성시했던 것이리라.

더욱이 제5차 십자군과 관련된 휴전 체결 이후, 술탄을 방문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손짓을 보여 주는 판화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수도사들은 대부분의 십자군 전투에 참전하여 병사들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게 의무였다. 이탈리아 출신인 성 프란체스코도 예외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적 대장 술탄에게 직접 찾아갔던 것이다. 문제는 술탄에게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권유한 것인데 그가 외친 평화는 어떤 의미였을까?

"당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기 위해 신이 보내서 왔노라고 말하는 수도사에게 술탄도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을 그만두고 평화를 확립하는 길이라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것을 권유하는 젊은 수도사에게 술탄 휘하 사람들은 더할 수 없이 격양했다. 그러나 술탄은 미소 지으며 수도사를 그리스도교군 진영으로 무사히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140쪽)."

▲ <십자군 이야기1> / 시오노 나나미 지음 /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다시〈십자군 이야기1>로 돌아와, 1099년 7월 15일에 드디어 십자군 부대가 예루살렘 성읍을 탈환하게 된다. 그야말로 원정을 떠난 지 3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었는데 문제는 그 이후에 나타난다. 성을 점령하기 전까지는 서로가 한데 뭉쳐서 하나로 공략해 들어갔지만 성을 함락시킨 이후 18년 동안의 주도권 다툼이 그것이다.

"이어서 대주교가 열중했던 것은, 예루살렘에 감추어져 있다고 전해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혔던 십자가였다. 사실은 그저 평범한 나뭇조각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이 나뭇조각을 끼워 맞춘 십자가는 '성십자가(True Cross)'로 불리며 이후 십자군이 군사 행동을 할 때면 어디에나 받쳐 들고 다니게 된다(243쪽)."

이 이야기가 내게는 너무 재밌게 다가왔다. 물론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경외감을 불러일으켰을 법하다. 어쩌면 이때 발견된 나무 십자가 덕에 1571년 때까지, 최초의 십자군으로부터 5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레파톤 해전까지, 피 터지는 전투에 임했는지도 모른다. 본래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힌 십자가는 자유와 해방의 십자가였다. 하지만 교황과 결탁한 권력의 수뇌부들은 그 당시의 나무 십자가를 그처럼 전쟁을 위한 십자가로 미화시켰던 것이다.

재밌는 것은 그런 이야기가 구약성경에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투가 임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전투에 법궤를 메고 간 게 그것이다. 법궤만 있으면 블레셋을 능히 물리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법궤를 부적처럼 여긴 꼴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블레셋에게 완전히 패하고 말았다. 어쩌면 십자군 전투에 사용한 십자가도 그렇게 부적처럼 여겼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성찰해야 할 부분이지 싶다.

<기사제휴/뉴스앤조이 07월 26일 권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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