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20]

몇년전 일이다. 언젠가 처갓집에 갔더니 장모님께서 보시는 책이 한 권 있었다. 천주학쟁이가 되어 천주학쟁이에게 시집 장가들 간 딸 아들 때문에 가톨릭에서 세례를 받게 된 장모님은 천성이 성실한 분인지라, 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안경을 끼고 성서를 틈틈이 공책에 옮겨 쓰고 계시는 장모님 말씀이 "요즘 성당 구역반모임에서 쓰는 교재가 바로 이 책"이란다. <나의 신앙 우리 공동체-3단계/신앙인격다지기>. 차동엽 신부가 애써 꾸리고 있는 ‘미래사목연구소’에서 나온 소공동체 모임 교재다.

그 교재의 1과 ‘왜 자연종교가 아니고 계시종교인가’는 너무도 선명하고 섬찟한 어떤 흐름을 읽게 한다. 이 교재는 맨 처음에 이런 성서구절로 시작한다. 미래사목연구소가 교재 전체를 장악하고, 신앙인격을 다지는데 핵으로 삼고 있는 구절일 것이다.

“나, 내가 곧 야훼이다.
나 아닌 다른 구세주는 없다.
내가 미리 말하였고 그 말한 대로 구원하였다.
이렇게 될 줄을 일러 준 신이 나 말고
너희 가운데 있느냐?
너희가 곧 나의 증인이다. 야훼의 말이다.
나, 내가 곧 하느님이다.”
(이사 43,11-12)

그리스도교의 여러 종파 가운데서 가장 근본주의적 집단이 표방하고 있는 게 “내 종교가 유일무이한 참 종교이며, 다른 모든 가르침은 설령 그가 그리스도교를 표방해도 다 이단이며 사탄의 하수인이다”라는 식의 공세적 표현이다. 그들은 자기 종교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그들이 소속된 종교집단에 따라서 구별짓고 밀어낸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타종교에 대하여 전투적 태도를 갖는다.

무속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교과서에서 고등종교로 분류하는 불교조차도 거론할 가치 가 없다고 느낀다. 이들은 다원주의 개방 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른 종교의 가치에 대하여 대화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들은 정신적으로 봉쇄된 종교관을 지니며, 다른 신앙 가치에 접속하면 언제든지 제 신앙이 무너질 위험이 있는, 그래서 강력한 후견인이 필요한 금치산자(禁治産者)로 신자들을 몰아간다. 이들은 ‘이것 말고는 없다’고 말하지만, 천주교와 타종교에 대한 성격 규정이나 해석 자체가 자의적이거나 일방적이다.

“세상에서 한 권의 책밖에 읽지 못한 자를 경계하라”

내가 중학교 때 사서 쓰던 일기장은 맨 하단에 명언/금언 들이 한 가지씩 적혀 있었다. 그중에서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세상에서 한 권의 책밖에 읽지 못한 자를 경계하라”는 말이었다. 그 사람은 제가 본 그 한권의 책, 한 부류의 책만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는 그의 무식함을 확인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고 있다. 만약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말한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게 지식이다”라는 말을 인용한다면, 그 역시 소크라테스가 그리스도교를 몰랐던 철학자였기에 그 말을 이단사설로 치부하고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에 대한 개념조차도 이스라엘과 교회 역사를 통하여 확장되어 왔음을 고백하고 있다. 우리 자신이 완성된 존재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듯이, 그렇게 과정 속에서 성장하는 인간에게는 하느님 역시 언제나 답안지의 정답처럼 선명하지 않다. 그리고 누가 정답을 보여주어도, 신앙은 자신의 체험 속에서 확인될 때까지 그 정답을 받아들이길 유보한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사목연구소에서 발간한 이 교재에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만인이 종교/인종/성별/빈부의 차별이 없이 자매형제로 평화를 누릴 날을 고대하는 게 미래에 대한 우리의 비전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그것도 ‘하느님’이란 엄청난 존재를 볼모로 삼아 ‘이것은 신의 계시다’라는 식으로 인류 지혜의 소산인 여타의 종교사상을 이단시하려는 분위기를 전파하는 것은 그 자체로 수구적이며 인류 진보의 장애물이 된다.

결론부터 말하고 시작한다면, 미래사목연구소에서 표방하고 있는 신앙의식은 ‘가톨릭근본주의’라고 불러 마땅하다. 그들은 사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미래사목연구소야말로 우리 교회 안팎의 이단사설에 대항하고 참 진리를 선포하는 유일한 구세주이며, 이런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이 우리 말고 누가 있겠느냐? 두고 보면 알 것이다. 이는 야훼의 말이다.”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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