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전, 미사 후 청도성당 앞마당에서 분신..교회에서 장례미사도 거부돼

▲ 사진/대구노동사목

1990년 7월8일 청도 천주교 성당에서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분신자결한 최태욱(다태오) 열사의 21주기 추모미사와 추모제가 열렸다.

분신 당시 23세였던 최태욱 열사는 "사랑하는 아내와 4살박이 아들"을 두고 있었으며, 대구경북지역에서 ‘민주노조사수’를 위해 자결한 노동열사로서는 유일하다. 최태욱 열사는 1990년 2월14일 경북 청도읍 주신기업에 입사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그해 5월 두 차례에 걸쳐 해고당했으며, 노조가 와해되면서 내면적 고통에 시달렸다. 

최태욱 열사는 줄곧 본당신부였던 이성한 신부와 면담하면서 '죽을 것 같은 심경'을 고백하곤 했는데, 급기야 1990년 7월8일 청도 천주교회에서 6시 청년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성당 앞마당에서 몸에 기름을 부어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청도 대남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원유술 신부 등이 찾아와 위로해 주고 종부성사까지 주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던 최태욱 열사는 화상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도 노동운동을 할 것"이라며 '아침이슬' 노래를 불렀다.

최태욱 열사는 분신 직전에 평소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던 청도본당 이성한 신부 앞으로 유서를 남겼다. 

▲ 최태욱 다태오 열사
훨~ 훨 날아가리
영원히 안주할 수 있는 포근한 주님의 품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꽃으로 승화되리니
모든 추악한 것을 다 태워 버리고
뼈가루밖에 남지 않도록
사랑하자
지금까지 싫어했던 사람들
한낱 미생물들도 나름대로 살아가는데 방해하지말자.

노동운동, 손톱만큼의 후회도 없다.
오히려 자신이 자랑스럽다.
이제 갈시간이 되었다.
따뜻한 주님의 품으로..  

마음이 이렇게 편안할 수 있군요.
지금까지의 삶을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회사 사장님이하 몇몇 간부님들 처음엔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미워지지가 않습니다....
원망 후회따윈 하지 않겠습니다.

자신이 내린 판단이니 자신이 책임져야 하니까요
다만 제가 가는 길이 주님 뜻이라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길이 이런 길이 아닐꺼라고는 생각하지만 편하게 받아들이렵니다....
주님의 품에 안겨 행복한 표정지으며 모든 선하고 아름답고 착한 생각만 하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사제로서 존경받으시는 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1990년 7월8일 최 태욱 다태오올림

결국 최태욱 열사는 7월14일 이승을 떠났지만 장례미사조차 치를 수 없었다. 최태욱 열사가 운명하자 당시 전노협과 노동사목, 국민운동분부 측이 회사측과 교섭에 나서 합의금을 받아내고 7월 28일에야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는데, 장례식 직전에 당시 대구교구장이던 이문희 대주교는 공문을 통해 "교구내 어떤 사제도 간여하지 말것"과 "교회에서 금하는 자살이므로 사도예절을 비롯해 어떤 교회예절도 행할 수 없다"고 전달함으로써 최태욱 열사는 종부성사를 받았음에도 장례미사 없이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고, 당시 최태욱 열사의 시신은 자신이 다니던 청도 천주교회 앞에서 노제를 마친 뒤에 경북 경산 남천면 장미공원묘역에 안장되었다

이번 7월 8일에 최태욱 열사의 추모미사를 봉헌한 대구 노동사목 관계자는 "열사 가신지 21년동안 두번째 추모미사를 하게 되었다"며, 이번 추모미사가 대구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주관으로 열리게 된 데 의미를 부여했다. 덧붙여 "종부성사까지 받았지만 자살이란 이유로 아무런 교회내 이별예절을 할 수 없었던 그날의 분노와 설움이 떠오르면서 아 이렇게 세상은 변화 발전해가는구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도 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기만 하다. 정평위가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사진/대구노동사목

이날 미사에서 김영호 신부(대구교구 정평위 위원장)는 강론을 통해 "21년 전 여름 저는 이제 막 성직자가 되는 부제품을 받고 정신없이 성당에서 일할 때였다. 그리고 그해 여름이 끝나갈 쯤 최태욱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동자 한 사람이 성당 마당에서 분신을 했는데, 자살이라는 이유로 교회에서 장례미사도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그때는 그저 놀란 마음으로 분노하며 소줏잔 기울이는 것이 전부였다"고 고백하며, "교회의 한 사람으로서 용서를 청한다"고 전했다. 

"우리 교회는 왜 저 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정의와 인권을 위한 싸움과 하느님께 대한 올곧은 믿음을 보지 못하고 단순히 교회가 금한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자살은 가장 큰 죄임으로 장례미사를 할 수 없다는) 열사님의 장례미사마저 거부했단 말인가?

안식일에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먹는 주님의 제자들을 보고 바리사이들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비난하자 주님께서는 배고픈 이들의 입장을 옹호하시며 법보다는 인간의 생명, 생명의 돌봄을 법보다 더 고귀한 가치로 두지 않았는가?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교회는 모른단 말인가?"

이어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가 "당신의 소망대로 가난한 민중들 삶 속에서 부활하시는 주님과 함께 당신의 사랑이고 눈물이며 아픔이었던 가난한 민중들의 삶 속에서 거듭거듭 되살아 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최태욱 열사는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내년 22주기에는 "당신께서 신앙생활 하셨던 곳, 당신이 십자가의 주님을 보며 가난하고 힘없는 동료들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되겠다고 다짐하시며 당신 몸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신 그 곳, 불길에 휩싸인 눈으로 뜨거운 애정과 눈물로 마지막으로 보았을 당신의 성당, 청도성당에서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 미사를 봉헌하겠다"고 다짐했다. 

최태욱 열사 21주기 추모미사 강론 (김영호 신부)
오늘 이 미사에는 당시 청도성당 이 신부님과 그리고 최 열사의 마지막을 지켜보셨던 원 신부님께서 오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쉽네요.

21년 전 여름 저는 이제 막 성직자가 되는 부제품을 받고 정신없이 성당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이 끝나갈 쯤 최태욱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노동자 한 사람이 성당 마당에서 분신을 했는데, 자살이라는 이유로 교회에서 장례미사도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그때는 그저 놀란 마음으로 분노하며 소줏잔 기울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21년이 흐른 오늘 이 자리에, 열사님의 작은 영정 사진을 앞에 두고 추모미사를 하며 이렇게 열사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열사님께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그동안 너무 오랜 세월동안 잊고 살았음에... 열사님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했음을... 열사님을 하늘로 떠나보내는 장례미사 조차도 거부했음을 교회의 한 사람으로서 용서를 청합니다.

열사님의 유언에 절절히 묻어있는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 당신의 한 몸을 불살라 온전히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과 품위와 권리를 외치고자 했던 그 뜨거운 마음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하느님께 울부짖는 간절한 기도를 보니, 참 마음이 아파옵니다.

우리 교회는 왜 저 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정의와 인권을 위한 싸움과 하느님께 대한 올곧은 믿음을 보지 못하고 단순히 교회가 금한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자살은 가장 큰 죄임으로 장례미사를 할 수 없다는) 열사님의 장례미사마저 거부했단 말인가?

안식일에 배가고파 밀 이삭을 잘라먹는 주님의 제자들을 보고 바리사이들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비난하자 주님께서는 배고픈 이들의 입장을 옹호하시며 법보다는 인간의 생명, 생명의 돌봄을 법보다 더 고귀한 가치로 두지 않았는가?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교회는 모른단 말인가?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 주교님이 생각납니다.

남미가 해방신학의 영향아래 너무 급진적인 방향으로 흐른다는 판단아래 로마 교황청은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로메로 신부를 주교로 임명합니다. 로메로 주교도 한 동안은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죠. 그러나 로메로 주교는 당신이 사목해야 할 엘살바도르 구석구석을 맨 몸으로 순례하기 시작합니다. 그 걸음에서 로메로 주교는 권력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 쓰레기장에 버려진 사람들, 옥에 갇히고, 폭력으로 찢겨진 사람들, 정의와 인권과 평화와 민주를 절규하는 가난한 민중들을 맨 몸으로 만나게 됩니다. 또한 그 가난한 민중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하는 성직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가난한 민중들, 핍박받는 민중들, 참된 삶을 열망하는 민중들, 그 민중들의 삶과 절규와 희망이 로메로 주교를 진정 회개의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맨 몸에 영대만 걸치고 길 거리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고문으로 죽임을 당해 쓰레기장에 버려진 시신을 수습하는 그 쓰레기장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살해된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 이곳에서 부활하고 계십니다.”

로메로 주교는 보수적인 교회와 군부로부터 압박을 받고 살해의 위협을 당합니다. 그럴 때마다 로메로 주교는 말씀하십니다. “나를 죽이면 나는 살바도르의 민중들 속에서 부활 할 것입니다. 육신은 죽지만 가난한 민중들 삶 속에서 부활하시는 주님과 함께 나도 살바도르의 민중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로메로 주교는 미사 도중 저격당해 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주교님은 당신의 소망대로 가난한 민중들 삶 속에서 부활하시는 주님과 함께 당신의 사랑이고 눈물이며 아픔이었던 가난한 민중들의 삶 속에서 거듭거듭 되살아 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당 마당에서 자신의 몸을 불살라 정의와 인간의 고귀한 품위를 주장하던 한 노동자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죽음으로도 우리 교회를 변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 다시 열사님을 추모합니다. 열사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주님의 부활이 무엇인지?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로메로 주교님의 말씀처럼, 열사님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 안에서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그 부활에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열사님과 같은 꿈을 꾸고, 열사님과 같은 희망을 가지며,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우리를 바치고자 한다면 분명 열사님은 죽지 않고 우리 안에서 부활 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께서 부활하십니다. 살해된 젊은 청년 예수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우리의 노동과 투쟁과 헌신 속에서 거듭거듭 부활할 것입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오늘 이 추모미사를 열사님께서 마지막으로 당신의 몸을 불살랐던 청도성당에서 봉헌했을 것입니다. 열사님! 너무 늦게 알아서 죄송합니다. 내년 22주기에는 당신께서 신앙생활 하셨던 곳, 당신이 십자가의 주님을 보며 가난하고 힘없는 동료들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되겠다고 다짐하시며 당신 몸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신 그 곳, 불길에 휩싸인 눈으로 뜨거운 애정과 눈물로 마지막으로 보았을 당신의 성당, 청도성당에서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 미사를 봉헌하겠습니다. 그때 환한 웃음으로 저희 안에서 부활하여 저희를 안아 주십시오.

당신의 부활을 믿고, 당신이 열망하던 꿈과 희망을 저희들의 꿈과 희망으로 가질 것입니다. 힘듦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도록, 지침과 무기력으로 포기하지 않도록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당신을 기억합니다.

열사님! 당신을 기억하며 눈물 흘리는 당신의 벗들의 삶에 늘 함께 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하길 빕니다. 아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