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 인터뷰
2007년 한 해 동안 나온 그림책이 고작 한 권김현옥 씨, “일반 시장과 세계 시장을 내다보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
   
아직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가 있는 집에는 대체로 대물림된 책, 이웃에게 얻은 책들로그림책들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얼마 전 여섯 살배기 막내딸이 보던 그림책들을 정리해서 두어 상자를 사촌 동생에게 주었다. 그러고도 우리 집에는 몇 상자는 족히 될 만큼 그림책이 많다. 막내를 앞세워 가는 집 근처 도서관 유아 열람실 사면 벽에도 각종 그림책들이 가득하다. 서점에 가도 한 구석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게 그림책들이다. 그만큼 그림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팔리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에 따르면 2005년 현재 한 주에 출판되는 그림책이 전집을 빼고도 70권 정도라고 하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만하다(한겨레신문 2005년 4월 29일자).

그런데 우리 집에 있는 그림책들 가운데 가톨릭계 출판사에서 낸 그림책을 찾으면 열 권이 조금 넘는다. 아주 적다. 우리 집이 특별히 가톨릭계 출판사 그림책을 홀대해서 그런 게 아니다. 2007년 9월 현재 가톨릭인터넷서점 바오로딸에서 어린이 그림동화로 분류되어 판매되고 있는 책들은 모두 56권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책을 미니 북으로 다시 만든 두 종을 뺀다면 실제 54권이다. 일반 그림책 시장에서 한 주 동안 내는 책보다 적은 수다.
 

   
일반 그림책은 한주에 70권 정도가 쏟아져 나온다. 전집은 뻰 숫자이다.



그 54권 가운데 28권을 바오로딸출판사에서 펴냈고, 성바오로출판사(다솜출판사 포함)가 13권, 가톨릭출판사(으뜸사랑출판사 포함)가 8권, 분도출판사가 4권, 성서와함께가 1권을 펴냈다. 바오로딸출판사와 성바오로출판사를 뺀 다른 출판사들은 모두 외국 그림책을 번역 출판하였다. 바오로딸출판사는 28권 가운데 27권이, 성바오로출판사는 13권 가운데 최근 낸 5권이 창작 그림동화이다. 더욱 심각한 건 최근 들어 그림책이 거의 출판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한 해 동안 출판된 그림책은 바오로딸출판사의 <바오로야 땅 끌까지 가볼까>(김유미 글, 김옥순 그림)가 유일하다. 2006년에도 모두 4권이 출판되었을 뿐이다. 그 4권 가운데 1권은 스테디셀러인 <마르첼리노의 기적>의 개정판이었다. 현재 가톨릭계 출판사에서 그림책이 어느 정도로 홀대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김현옥 씨


이 같은 현실을 짚어보기 위해 위 54권의 그림책 가운데 9권을 쓴 동화작가이며 출판 기획자인 김현옥 씨를 만나보았다.

동화작가이자 출판 기획자인 김현옥 씨는 일반 시장과 세계 시장을 내다본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현재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 왜 이렇게 그림책들을 거의 펴내지 않는가?

거기엔 여러 원인이 있다. 좋은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림책 시장이 성장하면서 그림 값이 크게 올랐다. 그런데 가톨릭 도서 시장은 아주 좁다. 그림책 시장은 더욱 좁다. 많이 찍을 수 없다. 일반 그림책에 비해 제작 부수가 적으니 책값이 비싸다. 그러면서도 일반 그림책처럼 입체 책, 고급 인쇄 등 다양화, 고급화를 할 수 없다. 경쟁력이 없다. 비싸면서도 일반 그림책보다 품질이 떨어지니 신자들이 사지 않는다. 결국 그림책을 펴내면 적자를 봐야 하니 꺼리는 거고, 펴내도 안전하게 번역 그림책을 내는 거다.

- 작가들도 크게 제한되어 있는 거 아니냐? 김현옥 님이 쓴 책만 9권이고, 서진선 님이 그린 책만 10권이다.

사실이다. 전과 달리 가톨릭계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문단에서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 대우도 좋지 않고 평가도 좋지 않으니 신자 작가들도 신앙 동화가 아닌 일반 동화를 쓰려고 하고 일반 출판사에서 책을 내려고 한다.

- 전에는 그렇지 않는 적이 있나?

70,80년대만 해도 출판 시장을 교과서, 참고서를 만드는 출판사들이 잡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가톨릭계 출판사들은 그래도 규모가 큰 출판사들이었다. <소년> 잡지를 통해 발표된 이석현, 마해송의 동화를 단행본을 펴냈다. 분도출판사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꽃들에게 희망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 그림 우화를 펴냈다. 좋은 어린이 책들이 없는 상황에서 인식이 좋아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가톨릭계 출판사 책을 많이 사봤다.

그런데 90년대 들어서면서 출판 시장에 변화가 왔다. 출판도 돈이 된다고 생각하고 기업형 출판사들이 생겨났다. 어린이 책 출판사도 늘고 시장도 크게 늘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가톨릭계 출판사들은 일반 시장에서 물러나 가톨릭 신자들만을 위한 책을 내게 되었다.

- 앞으로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톨릭 시장만 보지 말고 가톨릭 영성을 바탕으로 일반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과거처럼 신자 아닌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 책을 내야 한다.

멀티미디어 사고도 필요하다. <강아지똥>이나 <오세암>처럼 책으로 펴내는 거에 그치지 말고, 이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영화도 만들고 해서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세계 시장도 겨냥해야 한다. 우리만의 가톨릭 영성을 바탕으로 세계에 수출할 수 있는 작품을 내야 한다. 기획 단계부터 외국 출판사와 공동으로 기획할 수도 있다. 지난해 성바오로출판사에서 펴낸 <성모님과 함께 기도해요>를 일본과 공동으로 기획하면서 어떤 점들이 한국적이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이질감을 주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 좋은 책이라면 외국 책을 번역하는 것도 좋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번역물을 내려고 하는 마음이다. 수익성만 고려한다. 좋은 외국 그림책을 소개하려면 출판사 책임자들이 직접 국제 도서전에 가야 한다. 실무자들이 가면 책의 가치보다 수익성만을 따지게 된다. 번역 출판을 했다가 잘 팔리지 않으면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번역물에 의존하는 건 수입쌀을 사다 먹는 거랑 같다. 수입쌀이 우리 농업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번역물에 의존하는 건 국내 작가들을 발굴하고 길러내는 토양을 사라지도록 하는 거다.

- 일반 출판사에서 <내친구 까까머리>(임정진 지음, 시공주니어)처럼 불교 관련 그림책들을 내는 경우도 있는데, 가톨릭도 가능하지 않을까?

좀 어렵다. 일단 불교 신자는 많아서 장사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또 가톨릭은 불교처럼 일반인이 궁금하게 생각할만한 내용이 없다는 거다.

- 지금처럼 가톨릭 어린이 그림책이 침체되는 게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하는가?

가톨릭에서 내는 그림책이 부족하니 개신교에서 나오는 성서 그림책들을 본다. 그림도 조잡하고 성서를 자구적으로 해석하는 게 대부분이라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거다.

어릴 때 뭘 보면서 자라는가가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가톨릭 영성을 바탕으로 본보기로 삼을만한 걸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일반도서만 보면 어려서부터 가톨릭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