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하늘을 보다 - 4]

한국 사회, 정치적인 환경에서 보수입장의 단체들은 자신들과 뜻을 달리하는 단체를 평가하는 기준에 ‘색깔론’적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 이 잣대는 아주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교회 내에서 활동하는 보수단체들도 '색깔론'이라는 잣대를 아주 즐겨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에 더해 상대 단체의 교회법적 ‘불법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톨릭 교회에서 한 단체가 교회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 필요할까? 교회법은 교회 내 “축성 생활회들과 사도 생활단들과는 구별되는 단체들” (제298조 1항 참조)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단체’에는 교회의 관할권자, 곧 사도좌, 주교회의, 교구장 주교가 설립한 공립단체와, 그리스도교 신자들, 곧 평신도들과 성직자들이 각기 또는 함께 사적 협정에 따라 결성한 사립단체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교회법 제301조, 제312조: 제298-299조 참조).

공립단체는 관할권자에 의해서만 설립이 가능하기에 별도의 인준 절차가 필요치 않지만, 사립단체는 신자들 스스로 자유로이 설립할 수는 있으나, 그 정관이 관할권자의 인준을 받지 않는다면, 교회 안에서 사립단체로 인정되지 않는다 (교회법 제299조 3항 참조). 반드시 관할권자의 인준을 받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립단체와 사립단체에 더해 ‘전국단체’라는 것이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2009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승인한 <한국 천주교회 전국 단체 설립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전국 단체’는 교구장 주교의 승인을 받은 교구 단체들로 그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제3조 1항 참조). 다시 말해서, 공립단체만이 전국단체로 승격될 수 있다는 것이며, 결국 전국단체는 교구단체들의 합의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단체의 정관에 규정된 사도직 활동 내용이 전국적으로 중대한 선익을 제공할 만한 것인지 심의하여 인준여부를 가린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 전국단체를 승인하고 그 활동을 지도하는 것은 주교회의 총회의 소관 사항이라고 밝히고 있다 (제5조, 주교회의 정관 제15조 참조).

▲사진/한상봉 기자

정의구현사제단은 '천주교' 내 교도권의 기반인 '사제들'의 모임

보수단체들이 교회 내 불법단체로 규정한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이하 정구사)는 어떨까? 법적인 요건만 놓고 본다면, ‘정구사’가 불법단체라는 보수단체들의 주장은 옳다. 왜냐하면 교회 내에서 공식적으로 ‘관할권자’의 승인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구사’가 불법단체라는 그들의 근거는 교회법 제300조와 제312조 규정들이다. 2011년 3월 4일, “좌편향적 천주교 신부들에 대한 평신도의 반발”이라는 제하로 서울대교구 법원에 ‘정구사’를 심판해 달라는 취지로 제출된 ‘교도권을 지키려는 신자들’의 청원서에서 그들은 “이른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사제들-이 단체는 그 자체가 교회법전 제300조, 제312조를 계속하여 위반하고 있는 교회 내 불법조직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교회법 제300조는 ‘가톨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대한 규정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단체가 ‘가톨릭’ 또는 ‘천주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관할권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동의를 얻지 않고 단체명에 ‘가톨릭’ 또는 ‘천주교’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면, 이는 불법이다. ‘정구사’의 공식명칭은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다. 과연 사제단은 관할권자의 승인을 얻어 ‘천주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본인은 '정구사'가 '천주교'라는 명칭을 사용함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정구사'는 '천주교' 내 교도권의 기반인 '사제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며, 결성의 동기가 바로 지학순 주교님 구속사건이었고, 1974년 9월 23일, 원주에서 열린 전국 사제세미나에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창립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또 당시 김수환 추기경님, 그리고 윤공희 대주교님을 비롯한 여러 주교님들의 지원에 힘입어 활동을 시작했기에, 이는 교도권의 묵시적 승인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법 제312조는 공립단체 설립에 관한 규정이다. 현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인정하는 공립단체는 주교회의 산하 기관과 단체들, 그리고 사도좌, 교구, 본당들의 사목평의회와 재무평의회 등이다. 이는 ‘정구사’가 공립단체의 자격을 지닐 방법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보수단체들은 애초부터 전혀 타당치 않은 근거로 ‘정구사’의 불법성을 논하고 있다. 엄격히 따지자면, '정구사'는 교회 내에 단체를 설립할 자격이 되질 않는다. 왜냐하면 지도부를 제외하고 회원제가 아니라, 전국의 사제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 사진/평화바람

교회내 보수단체, 규정에 따르면 불법단체

자, 이제 눈을 돌려 교회 내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펴는 보수단체들의 사정은 어떤지 살펴보도록 하자. 지난 번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주교회의 성명과 이에 대한 정진석 추기경님의 발언으로 그 실체가 세상에 드러난 ‘가톨릭 뉴라이트’, ‘천주교 나라사랑 기도회’, ‘교도권을 지키려는 신자들’ 등이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다. 여기서 지난 2006년 ‘사학법 개정’ 논란과 관련해서 등장한 ‘가톨릭학교법인연합회’ 등 몇몇 단체들에 대해서는 논의에서 제외하기로 하자.

보수단체들이 가톨릭교회 내 합법적인 단체라고 한다면, ‘사립단체’여야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여기 저기 살펴보아도, 이들이 교회 내 단체로써 합법적 지위를 취득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 단체도 결국 ‘불법단체’인 셈이다. 이들이야 말로 교회법 제299조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으며, ‘가톨릭’ 또는 ‘천주교’라는 명칭을 사용함에 있어서 교회법 제300조를 매우 심각하게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교회 내 합법적인 ‘사립단체’로 인준을 받았다 하더라도, 사립단체가 공립단체로 바뀌는 것이 아니기에, 그 발언이나 활동이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될 수는 없다 (교회법 제322조 2항 참조). 심지어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은 전국단체 마저도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대표할 자격을 갖지는 못한다 (한국 천주교회 전국 단체 설립에 관한 규정 제9조 참조). 결국 그들은 교회의 이름으로 활동할 수 없는 단체라는 의미다.

이들의 불법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1998년 추계 정기총회 를 통해 승인하고, 2011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개정한 <신앙과 도덕에 관한 저작물의 출판 승인 규정>에 따르면, 그들이 게재한 신문광고 등은 교회법 제823조와 제824조에 의거 교회 관할권자의 승인을 얻고 개재했어야 마땅하다. 만일 교회 관할권자의 승인을 얻어 개재했다고 한다면,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일치를 꾀해야 할 관할권자가 교회의 분열을 부추기는 행위에 가담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이 답할 차례다. 그대들은 가톨릭교회 내 합법적인 단체인가?
만일 아니라면 더 이상 '법'을 들먹이지 마시라.

김인보 (金隣保)/ 천주교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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