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하늘을 보다 - 3]

여러 일들로 바빴던 어제 하루를 정리하고, 이른 잠을 청했다가, 이마저 얼마가지 않아 포기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은 주교의 신원과 주교단에 대해 살펴보고, 주교회의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주교회의의 입법권과 관련하여, 보수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한 4대강과 관련한 주교회의 성명의 효력적 측면을 밝혀보고자 한다. 조금은 딱딱하고 지루한 여정이 될 것 같다. 용서와 인내를 청해 본다.

주교

한 나라의 가톨릭교계를 대표하는 단체나 직권자는 누구일까? 전편에서 살펴보았듯이, 추기경이라는 직분만으로는 결코 한 나라의 가톨릭교계를 대표하지 못하는 것일까? 대표할 수 없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대답이다.) 그렇다면 대표할 수 있을까? 대표할 수 있다. (이 또한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대답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주교회의가 한 나라,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지역교회의 대표성을 지닌다. 이 문제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주교회의의 구성원들인 주교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주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교회법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의 제정하심에 따라 성령을 받아 사도들의 지위를 계승하는 주교 즉 감목(監牧)은 교회 안에서 세워진 목자들로서 교리의 스승들이요 거룩한 예배의 사제들이며 통치의 봉사자들이다.”(제375조 1항)

교회법에서 밝혔듯이, 주교는 사도들의 지위를 계승한 교회의 목자들로서 스승들이요 사제들이며 봉사자들이다. 또한 1965년 10월 28일 공포된 <주교들의 사목 임무에 관한 교령>(이하 주교교령)에서는 “지역교회의 사목 책임을 맡은 주교는 교황의 권위 밑에서 정상적으로 직접 교회를 돌보는 목자로서 교도직(敎導職)과 사제직(司祭職)과 사목직(司牧職)을 수행함으로써 주의 이름으로 자기 양들을 양육한다.”(제11항)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헌장> 제18항과 제19항에서는 주교직의 교의적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주교직 자체가 하나이요 갈림이 없는 것이 되도록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를 다른 사도들 위에 두시고 그 안에 신앙의 일치와 상호 교류의 볼 수 있는 원리와 기초를 마련하셨다."(마태 16:18, 에페 2:20 참조).

주교단

▲ La Descente du Saint-Esprit 15c
이를 배경으로 주교단이 탄생하게 된다. 그 토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하나의 사도단으로 조직하셨다는 사실에 있다. 이에 대해 교회법에서도 주교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주께서 정하신 대로 성 베드로와 그 외의 사도들이 하나의 단체를 구성하듯이 같은 이치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들도 서로 결합되어 있다.” (제330조)

그리고 이러한 주교단의 권한에 대해 교회는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주교단은 신품권과 교도권과 협의의 사목권에 있어서 사도단을 계승한 단체이며 그 안에 사도단이 존속하므로 전체 교회에 대하여 권한을 가지고 의무를 진다.” (교회헌장 제22항, 주교교령 제4항)

“주교단은 그 단장이 교황이고 그 단원들은 성사적 축성 및 그 단장과 단원들과의 교계적 친교로 주교들이고 그 안에 사도단이 계속하여 존속하며, 그 단장과 더불어 보편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력의 주체로도 존재한다.” (교회법 제336조)

이는 주교단 안에 사도단이 영구히 존속하므로 주교단은 세계 교회에 대한 최고전권의 주체라는 뜻이다. 이런 주교단의 성격을 현 교황이신 베네딕토 16세께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시절 “이러한 단체성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성질이다”라고까지 표현하셨다.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이 단체성이 지니고 있는 의미로 인해 주교단은 세계 교회 뿐만 아니라 지역 교회를 대표하고 이에 대한 권한과 의무를 진다. 그 권한과 의무를 지는 장소가 바로 지역교회 주교단 즉 “주교회의”인 것이다.

주교회의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1988년 5월 21일에 반포된 “주교회의의 신학적 법률적 성격에 관한 자의 교서”를 통해, 교회법 조항을 인용하면서 주교회의에 대하여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상설 기관인 주교회의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선익을 더욱 증대시키기 위하여 해당 지역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한 어떤 사목 임무를 특히 시대와 장소의 상황에 적절히 적응시킨 사도직의 형태와 방법으로 법 규범에 따라 공동으로 수행하는 한 국가나 특정 지역의 주교들의 회합”이다(교회법 제447조).

주교회의는 대체적으로 국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 교회법은 후속 조항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천명하고 있다. “주교회의는 원칙적으로 제450조의 규범에 따라 동일한 국가의 모든 개별 교회들의 (교구)장들을 포함한다” (제448조 1항).

그렇다면, 주교회의는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곳일까? 우리는 그 해답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관”을 통해서 구할 수 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필요한 때마다 사도좌에 문제의 공동 해결을 청원하고, 사도좌의 교령이나 결정을 시행하며, 그 밖에 보편 교회와 한국 교회의 공동선을 위하여 할 것들이나 사도좌에서 요청한 것들을 다룬다”(제2조). 다시 말해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사도좌와 긴밀한 관계 안에서 한국 천주교 내 문제를 공동 청원하고, 사도좌의 교령이나 결정을 시행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그 구성원은 “그 지역의 모든 교구장 주교들과 법률상 그들과 동등시되는 이들, 그리고 부교구장 주교들과 사도좌나 주교회의의 위임을 받아 그 지역에서 특별 임무를 수행하는 그 밖의 명의 주교들을 포함한”(교회법 제450조 1항) 한국 천주교회 내 최고위 성직자들이다. 그리고 그 의장과 부의장은 주교회의 회원인 교구장 주교들 가운데서만 선출하여야 한다. 또한 의장은 주교회의를 대표하고 주교회의의 대변인이며 총회뿐만 아니라 상임위원회도 주재한다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누리집을 통해서 밝히고 있다.

자, 이제 명확해 졌는가? “한국 천주교회 주교회의”를 제외한 어떤 조직이나 인물이 한국 가톨릭교계를 대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제1편에서 언급했던 질문에 대한 해답도 나왔다. 추기경 개인이 한 국가의 가톨릭교계를 대표할 수 있는가? 만일, 정진석 추기경님께서 주교회의 의장이셨던 1996년 10월부터 1999년 10월까지라면, 주교회의를 대표하실 수는 있을지 모를지언정, 한국 가톨릭교계를 대표할 수는 없다. 

주교회의의 입법권

▲ modele representant la ville de Tver
마지막으로 주교회의가 지니는 입법권에 대해 살펴보자. 이는 4대강 문제에 대한 주교회의 성명의 법적 효력성에 대한 논란도 잠재울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줄 것이다.

2011년 3월 4일, ‘교구장의 교도권을 지키려는 천주교신자들’이라는 단체가 정진석 추기경님의 발언에 대한 '정구사' 반박성명을 빌미로 서울대교구법원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청원서는 주교회의 성명의 위법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국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님은 서울대교구장인 정 추기경의 교도권에 의한 가르침 말씀에 거슬러서, 본건 4대강 문제에 관하여 모든 주교들의 이름으로 성명을 내거나 발언하거나 행동할 수 없습니다 (교회법전 제455조). 주교회의의 4대강사업에 대한 위 성명서는, 보편법이나 교황의 위임에 의하여 처리하는 안건이 아니므로, 주교회의 의장이, 위 주교회의 성명의 시기와 그 이후에, 신자들에게 4대강 사업에 관하여 서울대교구장을 포함한 해당 교구장의 교도권에 따른 가르침 의견과 상치하는 가르침 발언을 한 것(별첨 A)(입증서류 10. 12.)은 교회법전 제455조 제4항 위반이며 무효입니다. 저희는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님에게, 정중하게, 이 잘못을 지체 없이 취소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청원서 내용에 대한 오류는 잠시 뒤에 밝혀 보기로 하고, 우선 주교회의 입법권에 대해서 살펴보자. 주교회의는 정규 통치권, 곧 법 자체로 수여된 직권을 가지지만 (교회법 제131조), 법 자체로 입법권을 가지지는 않는다. 주교회의가 입법권을 부여받고 일반 교령, 곧 지역 교회법을 제정할 수 있는 경우는 보편법이 규정하는 경우, 또는 사도좌가 자의 교서로 주교회의가 입법하도록 특별히 위임한 경우나, 사도좌가 주교회의의 청원에 응답하여 주교회의에 입법하도록 특별 위임한 경우이다 (교회법 제455조 1항).

주교회의가 일반 교령인 지역 교회법을 제정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곧 의결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재적 총회 참석자 및 결석자 전체 회원들의 3분의 2 찬성표를 얻어야 하고, 사도좌로부터 인준을 받아야 하며 (교회법 제456조), 합법적으로 공포되어야 한다 (교회법 제455조 2항).

‘교구장의 교도권을 지키려는 천주교신자들’이 제출한 청원서의 주장에서 그 근거로 내세운 교회법 제455조는 명백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4대강에 대한 주교회의 성명은 “지역 교회법”을 제정하는 문제가 아닌, “주교 직무의 공동 수행” 가운데 가르치는 직무에 관한 사항이다.

그들이 인용했던 같은 교회법전에는 “가르치는 직무”에 관한 그 근본 규범을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주교단의 단장 및 단원들과의 친교 안에 있는 주교들은 개별적으로든 주교회의나 개별(지역) 공의회에 모여서든 가르칠 때 무류성을 지니지는 아니하지만, 그래도 자기들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위한 신앙의 유권적 스승이며 교사들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기들의 주교들의 이 유권적 교도권을 종교적 순종의 정신으로 집착하여야 한다”(교회법 제753조). 이 “순종의 정신으로 집착하여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상하게 풀어드리자면, “순종의 정신으로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교구장의 교도권을 지키려는 천주교신자들’께서는 교회법전이 너무 방대한 나머지 여기까지는 미처 살펴보지 못하셨던 걸까? 아니면, 애써 외면하셨던 걸까?)

주교회의의 교도직무

더 나아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자신들의 “교도직무”에 대해 누리집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주교들의 유권적 교도권, 곧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아 가르치는 것들은 주교단의 의장과 그 회원들과 일치하여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여, 주교회의의 교리적 선언이 만장일치로 승인될 때 그 선언은 주교회의의 이름으로 발표될 수 있고, 신자들은 자기 주교들의 유권적 교도권에 종교적 존경의 정신으로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4대강에 대한 주교회의 성명이 만장일치였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효력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주교회의 “교도직무”에 대한 내용을 더 들어보자. “그러나 만장일치가 아닐 때, 사도좌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주교회의 주교들의 다수만으로 그 지역의 모든 신자가 따라야 할 선언을 주교회의의 유권적 가르침으로 발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주교들은 주교회의를 통하여 공동으로 그 직무를 수행할 때, 주교들의 교도 직무는 그 본질에 따라 총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만장일치'에 대한 해답은 주교회의 성명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춘계 총회에 모인 한국 천주교의 모든 주교들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이 나라 전역의 자연 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중략]...우리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자신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성찰과 회개를 촉구하며, 정부 당국자들과 국민 모두가 우리 자신과 미래의 세대에게 책임있고 양심적인 길을 택할 수 있기를 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자, 이 성명을 들여다 보면 "한국 천주교의 모든 주교들은..." "우리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한국 천주교 주교단 일동" 등의 표현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주교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우일 주교님께서 이 성명을 독단적으로 추진, 발표하셨던 것일까? 우리 주교님들은 그렇게 간단하신 분들이 아니다.

‘교구장의 교도권을 지키려는 천주교신자들’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신 강우일 주교님께 “정중하게, 이 잘못을 지체 없이 취소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그 근거로 제시한 교회법 제455조 4항도 오역의 소치임이 드러났다. ‘교구장의 교도권을 지키려는 천주교신자들’ 가운데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드리고자 한다.

교회법 조항은 이렇다. “보편법이나 사도좌의 특별 위임이 제1항에 언급된 권력을 주교회의에 부여하지 아니한 안건들에서는 각 교구장의 관할권이 온전히 보존되고, 주교회의나 그 의장이 모든 주교들의 이름으로 행동할 수 없다. 다만 각 주교들이 모두 동의하면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455조 4항).

4대강에 대한 주교회의 성명은 “각 주교들이 모두 동의”하였기에 주교회의에서 의결된 내용에 대한 “각 교구장의 관할권”은 “온전히 보존될”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이는 주교들의 교도 직무에 관련된 사항이며, 사도좌로부터 인준을 받은 정관에 따라 “그 본질에 따라 총회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4대강에 대한 주교회의 성명은 한국 천주교 모든 영역에 걸쳐 유효하다.

신새벽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잠결 반 생시 반으로 두서도 없이 장황하게 썼습니다. 쉽지 않은 글, 인내로 함께하여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른 주제로 뵙겠습니다.

김인보 (金隣保)/ 천주교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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