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측, 용역깡패 동원 천막 철거 시도

 

서울 강남성모병원(병원장 황태곤)에서 의료물품 이송, 의료기구 세척․소독․교환, 약품정리, 환자대소변 치우기, 환자목욕, 환자이송 등 간호보조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9월 17일부터 병원 행정동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비정규직 계약해지 철회와 고용안정 보장,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였다.

강남성모병원은 정규직이 담당하던 간호보조업무에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했다가, 지난 2006년 10월 파견직으로 전환한 후 2년이 되는 시점인 2008년 9월 30일자로 계약만료되는 28명의 비정규직 파견노동자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하였다.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르면 간접고용 파견직 노동자들은 2년 이상 근무하면 직접고용하거나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는 이 법을 악용하여, 2년 기한을 보름 정도 남겨두고 직접고용이나 정규직화를 회피하기 위해 ‘계약해지’를 함으로써 파견근로자들을 결과적으로 해고시킨 사례이다.

보건의료노조의 최용 조직부장에 따르면, “대부분 대학병원들이 문제인데, 한양대학병원의 경우엔 비정규직이 없으며, 경희대병원의 경우에도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들을 정규직화시키고 있는데, 유독 고려대 의료원과 강남성모병원에서만 파견직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집하고 있으며, 2년 만료기한에 임박해서 이렇게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은 성모병원이 처음”이라면서 “내년 4월 30일에 강남성모병원이 병원신축을 마치고 ‘서울성모병원’으로 탈바꿈하는데, 그야 좋은 일이지만 가톨릭 병원으로서 근로자들, 특히 자기 병원에서 일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과 그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는 책임있는 태도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성모병원측의 반응은 9월 17일 당일 밤 11시경에 20여명의 사설경비업체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동원한 천막 강제철거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한 명이 허리를 다쳐 응급실에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9월 18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서는 “강남성모병원이 병원경영이념으로 삼고 있는 가톨릭정신보다는 비용절감과 돈벌이를 위해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삼는 모습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고 하면서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소외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는데 앞장 서야 할 강남성모병원이 2년 이상 근무한 파견직을 직접고용해야 하는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비정규직법을 악용하는 모습에 실망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또한 19일에는 오전 11시 30분경에 민주노동당 등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안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강남성모병원 정문 앞에서 가졌으며, 당일 저녁에 농성장 앞에서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번에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해고될 위기에 놓인 농성자들의 대표로 나선 이영미(32)씨는 “부려먹을만큼 부려먹고 필요없으니 버리는 걸 보고 참담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영미씨는 특히 사건 발생후 사측과 면담을 하면서 보여준 교회의 태도에 대해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노동자들이 사측에 하소연하자, “의사인 황병원장은 ‘여러분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기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경영관리실장, 강남성모병원 행정부원장)는 ‘여러분이 혹시 기대할 것 같아서 하는 이야긴데, 대책없다. 나가라’하고 딱잘라 말했다”고 하면서 재고의 가치가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고 한다.

이영미씨는 다른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빌려 “일회용 주사기도 유효기간이 3년인데, 우리는 왜 2년이냐? 이건 아니다”라고 억울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미 병원측에선 파견업체에 요구해서 대상자 중 5명을 벌써 ‘파견업체 본사발령’을 냈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농성에 참여하는 이들은 갑자기 신분상 ‘외부인’이 되어 병원 내에 머무는 것이 불법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이영미씨는 “우리에게 불법딱지가 붙는 것보다 더 억울한 것은 병원측에서 볼 때 우리가 전혀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내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투쟁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그동안 기륭전자와 이랜드, KTX여승무원 등 비정규직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이 시작되고, 오는 9월 23일(화)에는 이를 호소하는 사회각계원로들의 시국선언과 일만인선언, 일만행동 촛불문화제 등이 예고된 가운데 비정규직 문제가 교회내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상봉 200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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