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떠나야 교회가 산다-17]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는 그리스도교를 ‘노예들의 종교’라 했다. 그리스도교는 불행의 낙인이 찍힌 자들, 피압박자들의 종교이며, 이들의 갈망으로 세워졌다고 말한다.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던 프리드리히 니체마저도 그리스도교를 ‘바닥에서 기는 자들이 높은 자들에게 저항하는 종교’라고 했다. 실상 그리스도교의 모태가 되었던 이스라엘의 신앙선조들은 이집트의 노예 출신이었고, 예수조차도 노예와 다름없는 노동계급 출신이었다.

그래서 노예들의 종교는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는다. 사랑은 십자가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사랑은 급기야 십자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나자렛 예수처럼 스팔타쿠스의 지휘아래 봉기를 일으켰던 노예들도 로마의 거리를 십자가로 더럽혔던 것이다. 그렇게 십자가는 노예들의 종교 안에서 기억되고 부활에 대한 희망 안에서 경축된다.

그리스도교, 노예들의 종교

예수와 스팔타쿠스는 모두 로마의 국가 안위에 위협을 가하는 반란자로 지목되어 죽었다. 로마에도 국가보안법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들은 100% 국가보안법의 희생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쟁이들의 삶은 국가보안법과 양립할 수 없다.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물을 주고, 감옥에 갇힌 자를 찾아가 주고, 세상의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높이고, 노동자들과 빈민들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을 국가보안법은 자유시장경제-자본주의를 위태롭게 만든다고 범죄자로 낙인찍는다.  

마리아의 노래에선 하느님께서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 없는 이를 높이셨으며, 배고픈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다”고 읊고 있지만,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란 분은 “전교조 5대 강령 중 하나가 50대 기업을 까부수고 50대 교회도 파괴하라는 겁니다. 왜? 저 잘 사는 놈들, 대기업가들 다 까부수고 나눠 갖자. 좌경사상에 물든 노동자들은 사장을 노동자 피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생각해요. … 우리 정부는 온갖 세금을 잘 사는 사람들에게 붙여(내게 해서) 특별히 강남 사람들을 못살게 하려고 해요. 좌경사상은 있는 사람들 때려잡아서 다 평등하게 살자는 겁니다. … 사학법까지 만들어서 학교 세운 사람이 이사장 못하게 하고 교육이념도 다 없애버리면 장래가 없어요. 기독교 때려잡자는 얘기고 공산화하겠다는 얘깁니다”라고 원색적인 언어로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적이 있는데, 이는 정말 국가보안법이 그들 기득권층에겐 맥가이버칼 같은 만능열쇠였다는 생각을 확신하게 만든다.

교회이든, 부유층이든, 친일파이든 국가보안법은 그들만을 위한 법이었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그들에게 천부당만부당한 것이라고 우길만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를 다루었던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규정하고 윽박질렀으며, 결국 국가보안법 철폐는 무산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부끼며 시청광장에 모이고, '나라사랑기도회'란 이름으로 명동성당 들머리에 출몰하는 이들이 그렇게 옹립했던 이명박 정부 아래서 노무현 대통령마저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들의 집단적 광기와 증오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들은 이성도 양심도 ‘초월’(?)한 왜곡된 신념의 소유자이기에 경험상 말릴 재간도 없다.   

은혜전당에서 벌이는 정치놀음

최근에는 ‘천주교나라사랑기도회’를 주도해 온 김현욱이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고 장담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손잡고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암담한 현실이다. 1만7800여 명이나 되는 민주평통 조직원을 동원해 2012년 대선을 준비하려는 것일까?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2부대로 참여한 가톨릭뉴라이트 수장 김현욱은 창립식에서 “좌파정권에 짓밟힌 자유민주의 헌정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면서 “교회정신을 바탕으로 나라를 살리고 국가를 부흥시킬 수 있는 지도자"를 뽑자고 목울대를 높였다. 그리고 이 정부의 비호 아래서 정진석 추기경이 손뼉치며 명동성당 일대를 '뉴타운개발' 하려는 시점이다. 팔순이 다 된 추기경은 명동성당 개발의 첫삽을 뜨고서야, '개발을 치적으로 자랑하며' 교구장직에서 내려올 모양이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늘 넘어오던 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 위엔 개신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부흥회가 있다기에 구경삼아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귀로 들은 내용은 이러했다. 초청부흥사가 말한다.
“성도 여러분 이 교회에 대형 버스가 필요하다고 믿습니까?”
“아멘.”
“성도 여러분, 육신보다 영혼이 구원되어야 하지요? 그러면 교회에 돈을 많이 내야겠지요?”
“아멘.”

그래도 그때는 소박했다. 대형버스 한 대...정도. 그러나 이젠 사정이 사뭇 다르다.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가 한번 움직이면 5만 명의 신도가 따라붙는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되기가 무섭게 조용기 목사에게 달려가 축복을 받았다고 한다. 한기총을 움직이고 언론을 소유하고 금력과 영력(?)마저 소유한 이들은 이미 권력의 맛을 즐겼다. 돈이 권력을 낳고, 동원능력이 권력을 가름한다. 종교를 이용하여, 예수를 빙자하여 돈을 모으고, 부동산을 매입하고, 빌딩 같은 교회를 세우며, 종교-정치적 세력을 키우는 이들은 진짜배기 교회쟁이다. 그들은 묻는다 “성도 여러분 이 교회에 하느님의 권세가 드러나길 바라지요?” “아멘.” “성도 여러분, 영혼만 아니라 육신도 구원되어야 하지요? 그러면 정치권력도 교회가 움직여야 하겠지요?”“아멘.” 

이들에게 예수가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사실은 숨기고 싶은 스캔들이며, 예수가 혈육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이 히브리 노예들이었다는 것은 수치스런 과거사일 뿐이다. 그들은 십자가를 뙤약볕 내리쪼는 교회당 꼭대기로 밀아내고, 자신들은 에어컨 틀어놓고 교회당 아래 앉아서 '행복한'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목하 황제보다 더 권능하고 승리를 안겨주시는 강력한 예수만이 그들의 주님이다. 아동용부터 성인용까지 예수란 이름을 파는 기업이 곧 교회쟁이들이 말하는 은혜의 전당이다. '명품교회'를 향한 그들의 열정에 침을 뱉고 싶다.

한상봉/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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