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없는 세상 만들기 촛불문화제, 강남성모병원 파견노동자들도 참여

지난 9월 23일 광화문 일대에서 87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사회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 차원에서 여러 가지 행사가 진행되었다. 오전 10시에는 서울 안국동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사회원로들의 기자회견이 있었으며, 오후 4시에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민주노총의 집회, 그리고 오후 7시에는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날 <촛불문화제>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일만선언 운동에 동참한 이들이 보내준 성금을 기륭전자와 이랜드 노동조합 등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전달하였다. 전달식에 나선 송경동 시인은 “이 성금은 비정규직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문제이기도 하다. 평등하여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시민들이 참여한 것”이라면서 감사를 표하고, 10,550명이 이 선언에 참가했으며, 이번에 모은 성금 3천127만원으로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 일만선언 광고를 게재하고, 남은 돈 1천여 만원을 이랜드와 기륭전자 등 장기투쟁 사업장에 전달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춧불문화제 끝에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만인선언’이 발표되었는데, “모든 인간에게는 노동의 결실을 누리며 미래를 꿈꾸고 개척할 권리”가 있으며, “미래를 꿈꾸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기에, 이것은 사회가 보장해야 하며 어떤 이유로도 침해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라고 밝혔다. 이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물신 신화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며 “비정규직은 사회의 부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노동의 대가를 고소득층에 이전시켜 사회를 돌이킬 수 없이 분열시키고, 정신적․물질적으로 더욱 안정되고 풍요로워야 할 미래 세대의 꿈을 훔쳐 현재의 물질적 소비로 탕진하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한편 “비정규직으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과 사회 분열,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좌절과 절망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다음 세대가 짊어질 상처가 될 것”이며, “비정규직이 횡행하는 사회는 결국 부자도 가난한 자도 안전하지 않고 만인이 만인에 대해 폭력을 휘두르는 앞날로 향할 것”이기에 “이런 악순환을 정지시키는 길은 지금 당장 비정규직을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하는 것뿐”이라면서 “비정규직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함께 투쟁하고 연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날 행사에는 ‘만기 전 파견근로자 계약해지’로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서울강남성모병원의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들이 참석하여 발언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호소하였다. 강남성모병원 파견직 노동자들은 지난 9월 17일부터 계약해지에 항의하며 병원 행정실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으며, 그동안 병원측에 의해 두 번이나 천막이 뜯기고 현재 간이텐트를 치고 농성 중이다. 이미 병원측에서 아무런 대책도 재고의사도 없다고 밝힌 가운데 이들 노동자들은 현재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발언에 나선 이영미 대표는 “2003년부터 직접고용되어 2년 넘게 일해 오다가 2006년 갑자기 병원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간접고용(파견직)으로 전환되었지만, 계속 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비정규직이 얼마나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지 실감했다”고 하면서 “간접고용 2년 보내고 이제와서 병원에서 나가라고 하는데, 우리를 일회용이나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있다”고 말했다. 이영미 대표는 천막 농성 7일차에 들어선 오늘 밤에도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해서 텐트마저 헐어낼지 모른다고 걱정하면서, “이제는 울분이 솟구쳐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에 참가한 강남성모병원 조현숙씨(43)는 “그동안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2002년 병원의 정규직 노동조합조차 이백일 넘게 사측과 싸웠지만 결국 협상테이블에 앉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움츠러들 때가 있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조현숙씨에 따르면, 외부에서 방문해 주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병원 내부에서는 제 일처럼 느끼고 찾아주는 이들이 거의 없고, 몇몇 환자들이 오히려 지지해 주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현재 28명의 계약해지 당사자들도 모두 완전히 단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용역업체에서 이런 상황을 처음 경험하는 노동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다른 좋은 데 연결시켜준다고 회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현숙씨는 “결국 다른 사업장으로 가도 비정규직들은 철새처럼 차별대우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말한다. 다만 농성하는데 힘을 주는 것은 오히려 병원측에서 “사설경비업체를 동원해서 윽박지르고, 인사팀장이 감시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전혀 무관심한 것보다 더 힘을 얻게 한다”고 말했다.

현재 강남성모병원 파견직 노동자들의 농성을 지지하고 방문하는 사람들은 민주노동당 관계자들과 보건의료노조 등으로 제한되어 있는데, 특별히 이들 노동자들이 환영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은 서울대 학생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동아리에서 십여명이 돌아가며 성모병원 농성장을 찾아가고, 밤샘지킴이 역할도 자청하고 있다. 경비업체 직원들이 천막을 강제철거할 때도 그들이 나서서 항의하였다. 마침 만인선언 촛불문화제 행사에 참석한 송선우(23) 학생은 “비정규직 문제는 불안한 일자리가 전체적으로 늘어나는 것인데, 결국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 후엔 우리 문제도 된다”고 느껴서 이 싸움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대학생이지만 좋은 일자리는 문턱이 높아지는 게 안타깝고,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에 공감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고민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천막지키기뿐 아니라 주간에 병원을 돌아다니며 환자들에게 유인물 등을 나눠주고 있다.


이들 파견노동자들은 교회사업장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해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농성이 희망없는 싸움이 되지 않도록 바라고 있다. 그래서 다음 토요일 조계사 우정국공원에서 열리는 시국미사에도 참석하여 자신들의 처지와 요구를 호소할 예정이다.

/한상봉 2008-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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