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심명희]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새벽 종소리가 울린다. 어둑어둑한 예배당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더듬더듬 자리를 찾아 앉는다. 여기저기서 낮고 어눌한 소리가 피어오른다. 긴 의자들 위로 손때 묻은 낡은 성경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뭉툭한 손가락으로 힘들게 성경을 편다. 웅얼웅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모습이 희끄무레 보인다.

대학시절 의료봉사활동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이곳은 한센병 환우들의 요양원이다. 시간을 멈추고 나의 생각까지 정지시킨 소중한 분들이 산다. 손가락이 없어서 성경을 양다리에 걸쳐 놓은 사람, 왼손과 턱 끝을 사용하여 책장을 넘기지만 여간해선 힘들다. 그들 중 어느 한 사람 온전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일그러진 얼굴들뿐이다. 그들중 여든의 김 장로님이 계신다.

“소록도에 가고 싶으냐?”
아버지의 탄식 섞인 질문을 그는 평생 잊지 못한다.일본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발령받자마자 이상증상이 나타났다. 자고나면 눈썹과 머리털이 한 웅큼씩 빠졌다. 손가락 발가락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종가집 외아들 장손에게 저주가 내렸다고 동네는 쑤군거렸다. 한센병이었다. 약혼중인 사돈댁은 파혼을 선언했다. 아버지는 독한병은 독한 약으로 고쳐야 한다며 좋다는 약은 닥치는 대로 썼다. 백약이 무효였다. 자존심 강한 아버지는 창피했다. 온 가족이 고향을 등졌다. 일그러지는 아들의 얼굴 앞에서 다른 선택이 없었다. 소록도에서는 가족이 있다고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요양원으로 아들을 보냈다.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취미삼던 학구파 청년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요양원에 온지 3년만에 아버지는 홧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어머니는 정신착란증세로 여기저기 떠돌아 다닌다고 했다. 집도 재산도 가족도 풍비박산이 났다.

그는 요양원에서의 첫날을 잊을수 없다. 공포의 얼굴들이었다. 칼로 코를 잘린 듯 두 구멍만 빠끔히 뚫려 있는 사람들. 그것은 해골을 연상케 하는 괴물이었다. 눈이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사람, 머리가 벗겨져 군데군데 섬과 같이 털이 남아 있는 사람, 차라리 대머리가 되었으면 나을 걸! 이마가 뒤통수까지 밀려 올라간 여자, 아직 젊은 만큼 더욱 통절한 느낌이었다. 운명을 저주했고 세상이 미웠고 자신이 싫었다. 그러나 돌아갈 데도 기다리는 가족도 없다.

그렇게 13년을 지옥처럼 보내던중 드디어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방황하는 그를 향해 외국인 선교사가 던진 한마디였다.
“당신은 이곳에서 성경을 읽어줄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요양원 환자들 대부분 시력을 잃은데다 문맹이었기에 그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이제 시력마저 그를 떠나가고 있었고 성경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무작정 그가 만든 ‘성경공부반’은 공부가 아니라 듣는 모임이었다. 희미하게 남은 시력으로 그는 성경을 읽어주었고 환자들은 그가 읽어주는 성경을 들었다.

어느덧 그들은 성경을 외우기 시작했다.매일 각자 외운 성경을 낭독하면 자신의 몸으로 한 권의 성경이 되었다. 그들은 살아있는 성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새벽마다 모여 성경을 깨우쳐 나갔다. 성경을 통째로 외우는 보잘 것 없는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감격했다. 그들의 감격은 새벽 예배당 안을 강력한 전염병처럼 감염시켰다. 웃고 울며 찬송가를 흥얼거렸다. 나환자인 그들은 아무 일도 할수 없었지만 자신들의 낡은 몸뚱아리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돼지도 치고 닭도 길렀다. 뭉툭한 손이 닳아 피가 나도록 밭을 일궜다. 달걀을 팔고 채소를 길러 생계를 꾸렸다. 적은 벌이로 가난하지만 그들은 독립했다.

그에게 요양원은 더 이상 지옥이 아니다. 함께 일하고 공부하고 노래하고 기도하는 천국이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읽고 쓰고 가르치는 자랑스런 선생님이다. 요양원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능숙한 영어로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그를 보면 비참한 나환자가 아니었다.

오늘도 그들의 새벽기도회는 변함이 없다. 새벽종이 울리면 예배당의 같은 자리를 찾아 앉는다. 누군가 하모니카로 찬송가를 연주한다. 또렷하지도 온전하지도 않지만 날마다 예배당 안에 모여 웅얼거리고 노래한다. 하늘에 옅은 구름이라도 끼면 예수님이 오시나 설레는 이상한(?) 문둥이들이다.

그해 여름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젊은 몸으로 낡아버렸음을, 그들은 낡은 몸으로 젊었음을 그들은 나에게 보여주었다. 비로소 나도 그들이 외워 삶의 희망으로 삼은 ‘성경’ 을 열기 시작했다. 김 장로님의 ‘위대한 탄생’이 내게 전염되었기 때문이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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