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명동 재개발 3구역 세입자 박근준 씨]
“매일 찾아와주는 성공회 청년들에게서 희망 느껴”

▲ 명동성당 앞 먹자골목에서 '이모낙지' 가게를 운영해 온 박근준 씨.(사진/ 고동주 기자)

“매일 저녁 6시 30분에 성공회 청년 6,7명이 와서 3,40분씩 기도를 해준다. 저도 레지오를 20여 년간 하면서 병원과 상갓집을 돌며 기도를 많이 다녔다. 하지만 이 친구들처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열심히 한 것 같지는 않다. 종교를 떠나서 이 젊은이들을 우러러보게 됐다.”

서울 중구 명동성당 앞 ‘명물거리(먹자골목)’에서 27년간 ‘이모낙지’라는 간판으로 장사해온 박근준 씨(그레고리오, 62세)는 매일 찾아와 주는 학생들의 “힘내세요!” 한마디에 갑갑하던 마음이 가시고, 내일을 살아갈 희망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는 1992년 아현동에서 장사하다가 IMF를 맞이하면서 크게 손해를 보게 됐다. 앞길이 막막한 가운데 기도도 많이 했고, 꾸르실료 교육을 받으면서 삶의 지표가 무엇인지 하느님께 많이 물었다고 한다. 박근준 씨는 “정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는데, 하느님께서 가게 하나를 내려주셨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이모낙지’다. 친척이 가진 가게였는데, 인수받아서 다시 생업을 열어가게 된 것이다.

박근준 씨는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70년대부터 전통적인 먹자골목인 명물거리가 사라진다는 것도 가슴 아프다고 말한다. 그는 ‘이모낙지’를 통해서 아들 둘을 교육하고 장가보냈다. 이 먹자골목의 다른 상인들도 이곳에서 땀과 눈물로 생업을 꾸려왔을 것이다. 이제 그 거리가 사라지게 생긴 것이다. 박근준 씨는 그 모든 게 안타깝다.

재개발 소문이 들리기 전에는 장사가 잘됐다고 한다. ‘서울대교구 운전기사회’ 회원 등 명동성당 신자들도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지금도 사정을 잘 모르는 신자들이 ‘이모낙지’ 언제 다시 문을 여느냐고 묻기도 한다. 가게를 팔라고 문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매매하고 싶어도 재개발 구역은 그냥 앉아서 당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재개발된다는 걸 알고 나면 양심상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없어요. 모르고 당하는 사람은 무슨 죄야. 내가 희생하고 말지.”

재개발은 그렇게 박근준 씨를 옭아매 버렸다. 그리고 4월 8일 새벽 5시 30분 그의 가게는 강제철거를 당했다. 7시 30분에 소식을 듣고 가게를 찾아갔지만 이미 용역회사 직원들이 주인도 들어가지 못하게 골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법원 집행관이 인적도 없고 본인이 없어서 다른 증인 2명을 세우고 철거를 진행했다”고 말했다며 “새벽에 무슨 인적이 있겠느냐? 다 변명”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 박 씨는 자신의 가게 앞에서 철거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경기도 양주까지 버려진 집기를 찾으러 갔다. 그곳에서 버려진 십자고상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말한다.(사진/ 고동주 기자)

현재 박근준 씨는 집에 못 들어간 지 한 달이 넘었다. 강제철거를 당하고 나서 천막을 세우고 노숙생활을 2개월 넘게 했고, 그마저 철거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와 지금은 철거된 커피숍(카페 마리) 한 곳을 점거해서 생활하고 있다. 아내 역시 아들 집에서 살고 있다.

현재 법원이 조정해준 보상가는 1,400만 원이다. 박근준 씨는 가게 월세 10개월 치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1,400만 원 가지고는 어는 곳에서도 새로 장사를 시작할 수 없다.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권리금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드린다.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기약 없는 내일이지만 힘을 낸다.

아현동천주교회가 본당인 박 씨는 1987년 세례를 받고 ‘그레고리오’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세례를 받으신 아버지의 세례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소중하게 이어받은 신앙으로 20여 년 넘도록 레지오 활동과 사목회, 연령회에도 열심히 나갔다고 한다.

IMF 때 크게 망한 후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셨다는 가게 ‘이모낙지’에 다시 한 번 큰 시련이 닥쳐오고 있다. 이번에도 하느님은 박근준 씨를 도와줄 것인가?

그를 포함해 현재 명동 재개발 3구역에는 11명의 세입자가 ‘적절한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박근준 씨는 다른 10명의 세입자도 각자 종교가 있고, 동료 신자들이 와서 위로를 많이 해주고 간다고 전한다. 하지만 정작 박근준 씨를 찾아주는 천주교 신자는 없다. 그는 “저 혼자 천주교 신자인데 섭섭한 마음도 든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성공회 청년들이 하는 말이 명동성당 자매님들이 길을 내려가면서 무슨 글자를 사진으로 찍는 걸 봤대요. 여기 농성장 벽에 쓰인 ‘품’자를 발견하고 ‘여기에 있다!’고 말하며 그것만 사진을 찍고는 가더라는 거예요. 그 청년들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겠어요? 봉사한다는 사람들이 저렇게 행동을 하니 굉장히 부끄러웠지요.”

철거를 당해보기 전까지는 이런 아픔을 몰랐다는 박근준 씨. 세상이 각박해도 농성장 생활을 하면서 정을 느끼기도 한다. 매일 찾아와주는 학생, 시민들이 밤을 새우면서 지켜주고 위로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큰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박근준 씨는 끝없는 하루하루를 이들에게서 얻는 힘으로 살고 있다.

▲ 매일 저녁 기도하러 찾아온다는 성공회 청년들이 두고 간 십자고상(사진/ 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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