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훈갤러리 6월 22일~7월 12일 목판화가 이철수 30년 기획초대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목판화가인 이철수는 1981년 첫 개인전을 통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폭압적인 사회에 보내는 저항의 언어들로, 서정적이면서도 격렬한 선묘 판화와 처음 본격화하던 출판 미술운동 등, 1980년대 내내 판화를 통한 현실 변혁운동에 열심이던 그는 1988년 무렵 자기 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판화영역을 확대해가기 시작한다.

80년대 변혁 운동과 판화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의 결과이기도 한 미술적 변모는 얼핏 보기에도 크고 본질적이다. 평범한 삶과 일상사를 관조하면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찾아내거나, 다채로운 자연을 소재로 삼아서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인간의 면목을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판화세계는 따뜻하고 정겹고 진지하고 때로 초월적이기도 하면서 쓸쓸하다.

조용하고 차분한 언어가 때로 세상과 일상사를 말하면서 단호해 지기도 하지만 막연히 현실사회를 향해 있던 분노는 이제 우리들의 욕심 사납고 그로 인해 황폐해진 내면을 향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연민의 눈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자 하고, 평범한 일상이 드높은 정신으로 가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 말하는 그의 판화는 이제, 낮은 목소리로 존재의 경이를 이야기하고 삶의 긍정을 말한다.

간결하고 단아한 그림과 선가의 언어방식을 끌어온 촌철살인의 화제들 혹은, 시정이 넘치는 짧은 글이 어우러져 현대적이면서도 깊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그의 판화는 '판화로 시를 쓴다'는 평판을 들으면서 갈수록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와 글씨와 그림이 한 화면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전통적 회화를 현대적 판화로 되살렸다는 평가도 받는 그의 새로운 판화들은, 삶이 곧 그림이라서 따뜻하고 깊고 건강한 삶을 통해서만 아름다움의 내용을 채워 갈 수 있으리라는 작가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가 농촌에 정착해서 흙을 일구고 사는 것도 건강한 삶에 대한 그의 생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 삶과 그 아름다움이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그는, 제천외곽의 농촌마을에서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짓고, 판화를 새기고,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지낸다.

 (출처/이철수의 집 http://www.mokpan.com/ )

▲ '새는 온몸으로 난다' (사진/한상봉 기자)

목판화가 이철수가 30년 기획초대전을 열었다. 그가 30년전 처음 개인전을 열었던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에 6월 22일부터 7월 12일까지. 목판화가로 살아온, 그렇지만 화가를 넘어서 세상사람들의 아픔의 갈피를 헤집으며 마음밭도 일구고, 몸소 농부로 살아온 그가 "새는 온몸으로 난다"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여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그는 먼저 "내 삶과 내 존재의 주인노릇을 하자"고 마음 먹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은 노릇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는 관념 안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을 항시 응시하고 농사를 지을 때마냥 몸을 부려 목판을 깍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는 게 그림 그리는 일만이 아니어서, 틈틈이 농사일도 하고, 사람도 보고, 세상 일 이것저것 참견도 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 속에서 내내, 그것 모두 내 화두고 내 공부거리거니 생각했습니다. 낯설고 힘든 일은, 어려운 경전 구절이라고 했습니다. 산하대지뿐 아니라, 일상사 하나하나를 경전으로 여기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쉽지 않아서 내내 갈지자걸음입니다. 제 판화도 꼭 그럴 것입니다. 제 판화가 제 일상의 고백이자 반성문이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럴 겁니다."

이철수의 판화를 두고 이주헌(미술평론가)은 "이철수 판화는 일상의 언저리에서 바라보는 눈의 진지함, 마음의 진지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밭일하는 사람을 그린 판화에서, 밭고랑을 지문으로 표현한 것을 지적하며 "손이 문드러지도록 일한 사람들의 지문이 땅에 박힌 것일까, 노동의 숭고함이 볼수록 묵직한 파장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돌 많은 밭 오히려 좋은 도량이지! 날 없는 괭이와 호미는 도량의 법구 중에도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니 잘 간수하여야 한다. 백장 이후에는 의발 대신 날 없는 호미로 법을 전하거니와 돌밭을 다 매고도 날이 여전한 솜씨를 높이 친다. 땀 흘려 일하고 나면 절로 한가하고 일없는 터, 어리석은 이에게는 좌복 위에서 좌불안석하기보다 오히려 나은 공부 길이다. 이 밭에서 얻는 음식은 하늘과 땅에서 받는 보시가 아니겠느냐. 여기서 몸도 얻고 마음도 얻자. 여기서 얻으면 어디서나 솜씨 있는 일꾼이라 할 게다."(백장 이후)

▲ '백장 이후' 부분.(사진/한상봉 기자)

▲ 녹색 땀 흘리는 한낮.(사진/한상봉 기자)

이철수에게 목판화와 농사와 마음공부가 하나이기에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온전히 한 세계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가능해진다. 아마도 그가 "없을 무가 불탄다"고 말하면서 무(無)와 공(空)에 공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그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기를 염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앨버트 놀런이 쓴 <오늘의 예수>라는 책에서도 예수의 영성을 한 마디로 하면 '근원적 자유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한다.

지난 6월 22일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오프닝행사에서 정희성 시인은 '꼬리를 자르면 날개가 돋을지'라는 시를 낭송해 주었다. 이 역시 이철수와 같은 바람을 담고 있는 것이다. 치열한 삶의 한가운데서 '가볍게 날아오르고' 싶은 것이다.

손에서 일을 놓았다
나도 이제 이 지상에서 발을 떼고 싶다
샤걀이 그 아내와 함께 하늘로 떠오르듯
중력을 버리고 이 병든 도시로부터 가벼이
사는 동안 꼬리가 너무 길어졌다
꼬리가 끌고 온 무거운 길을 돌아보며
이쯤에서 나도 길을 내려놓고 싶다
돌아가는 길을 지워버리고
길섶에 핀 풀꽃과 인간들의 거처를 지나온
이 보잘것 없는
흉측한 짐승같은 삶의 꼬리가 밟히기 전에
꼬리를 자르면 길이 사라질까
꼬리를 자르면 날개가 돋을까
영혼이 깃털처럼 가벼워질까

▲ 가수 정태춘이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부르는 동안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이철수 씨.(사진/한상봉 기자)

마침 중부지역에 장마가 시작된 이날, 정태춘과 박은옥 부부는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불렀다. 노래에 앞서 정태춘은 "어떻게 세상과 투쟁하지 않고 줏대있는 삶이 가능할 지, 진정한 예술이 가능할지" 물으며 "시대와 이웃과 자신에게 충실했던 이철수. 자기 자신과 투쟁하며 이웃 속으로 스며드는 선한 노력을 해온 이철수. 그의 친구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정태춘의 노래가 슬픈 아름다움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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