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순(요셉, 52세), 윤원례(헬레나, 52세)부부

8월19일자 독자투고란에 올라온 글(공주 촛불 배후인 우리마누라)을 보고 알콩달콩 건강하게 살아가는 가족을 취재해 보라는 편집장의 권유에 퇴근을 서둘러 공주로 향했다. 공주를 대전의 위성도시쯤으로 여기기엔 곳곳에 있는 고도(古都)의 흔적들이 정신없이 달려가기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제동이 되어준다.

대전의 경계를 막 벗어나면 계룡산의 위용이 눈앞에 선명하고, 상신리 도예촌을 지나면 유유히 흘러가는 금강이 반겨주고 선사시대 유적지 석장리 박물관 표지판을 만난다. 공산성, 황새바위 성지를 거쳐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를 옆으로 하고 직진을 하니 웅진동 청실 아파트가 보였다.


요셉씨의 차분하고 안정된 전화 목소리는 왕초보 취재자를 살짝 긴장하게 하였는데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부부의 넉넉한 품새와 정갈한 집안 분위기 그리고 소박한 밥상을 앞에 놓고 앉으면서 이웃사촌이 되어버렸다. 밥 한 끼를 나누는 인연의 소중함 앞에 초면의 어색함은 자리를 감추고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데 쑥스럽다시며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 주셨다.

<지금여기>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가 몹시 궁금하였던 터였다. 한나라당 집권 반대 모임이라는 카페에서 지금여기에서 퍼온 글을 읽게 되면서 지금은 누구보다도 열심한 독자가 되셨단다. 그는 정치개혁,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해서 정치활동을 활발히 하신다. 열우당 공주시 상무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민주당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 노동 청년회(J.O.C.)활동

팔불출을 자처하면서 아내 자랑을 하시는데 그 사랑은 어디서 왔을까? 요셉씨는 소신학교를 가고 싶었으나 아버지 반대에 꿈을 접어야했고 중학교 때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 진학이 어렵게 되고, 방송통신고등학교 1회 졸업생이다.

두 분 다 고향은 대전이며 유천동 성당에서 JOC활동을 하였다. 활동 중에는 그저 안면만 있는 정도로 지냈는데 부인의 대모님이 좋은 청년이 있다고 누누이 말씀하셔서 군복무를 끝내고 돌아와 신학교에 갈까 고민하던 요셉씨는 헬레나씨의 안다리 기습공격(?)에 1982년 혼배를 한 이후 오늘까지 손발은 물론 마음까지 척척 맞는 일심동체의 삶을 산다.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라치면 어느새 아내는 이웃들을 불러 함께 한다면서 나눔이 몸에 베인 사람이라며 다시 팔불출이 되신다. 자모회, 구역장, 부녀회장직을 맡아하며 공주 교동성당의 일꾼이다.

결혼 6년 만에 딸(박지은, 보나/대학3학년)을 얻은 후 늦둥이 아들(박주상, 스테파노/초등5학년)을 얻은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신다.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어머님의 지극한 기도가 기적처럼 이루어진 것이다. 스테파노는 복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최근에는 가수가 되고 싶단다. 촛불문화제에서는 자유발언도 하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랐다는 뉴스를 보면서 겨우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신빙성이 없다고 당차게 의사를 표현한다. 누나는 필리핀 유학 중이고 늦둥이가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평신도의 역할

그는 공주시 장기면에 있는 남양유업에서 기관실설비 일을 28년째 하고 있다. 통신교리를 통하여 교리신학원을 마치고 장기공소에서 예비신자 교육을 담당하여 13년 동안 100여명이 넘는 영세자를 내었고, 일의 특성상 3교대 근무다 보니 아침 7시에 퇴근하여 8시가 좀 지나 공소에 가서 학생 청년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교리를 끝내면 다시 출근할 시간이 되곤 했는데, 각 본당에서 제몫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면 가슴 뿌듯하고 지금도 만남이 이어지고 있단다.

3교대 근무이다 보니 주일 지키기도 만만치 않지만 미사를 빠진 적은 없다. 본당 활동은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봉사활동에 시간을 할애 한다. 성모의 마을(중증장애인 시설), 소망의 집 등 종파를 초월하여 한 달에 3번 봉사를 놓치지 않으신다. 직장에서도 교우들 모임을 만들어 솔선수범이 되시며 꼭 단체에 들면 총무나 회장자리를 일부러 맡아 하시고 각자 고유의 몫을 나누는 연대를 통하여 효율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하고 계셨다.


어쩌면 요셉씨 부부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보편적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봉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힘든 역할이나 직분은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일진데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행하는 이들의 모습은 화려하지 않더라도 주변인들에게 감동이 되고 밀알이 된다.

촛불에 대한 본당 신자들의 반응을 여쭈어보자 보수적인 신부님의 영향도 무시 할 수 없는 듯하고 시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없지 않아 보였다. 본당 활동이며, 사회참여도 열심인 부부의 저력은 아마도 청년시절 JOC활동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 고장난 보일러, 에어컨은 요셉씨의 손길 앞에 꼼짝하지 못한다. 복지시설에서는 너무 좋아하신단다.

공주의 촛불, 연대성의 원리

“촛불은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자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며, 국가와 자본에 더 이상 기대하지 말고 자주적 협동운동으로 자주적 네트워크을 형성해야한다”는 녹색평론 100호 기념강연(대전)에서 김종철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촛불문화제때 비가 오자 헬레나씨가 된장국 끓여서 저녁을 하자면서 모인사람들과 집으로 가서 함께 하는 모습이야 말로 우리가 실천해야할 연대가 아닐까.

찬반론을 떠나서 촛불정국에 예외인 국민은 없으리라. 생명과 평화라는 구체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향한 한 자루의 촛불이 된다면 다시 희망으로 시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셉씨는 대전의 둘이나 셋 공동체의 조세종 선생님을 만나보고 싶어 하셨다. 흔쾌히 좋은날 잡아서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요셉씨 부부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고향인 대전으로 이사를 예정에 두고 계셨는데 공주의 촛불로 남아 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뷰가 토요일에 잡혔더라면 촛불문화제에 함께 할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집을 나서는데 꼭 다시 놀러 오라는 말과 함께, 헬레나씨가 다슬기와 먹거리를 한보따리 손에 쥐어 주었다. 난 이 선물 보따리를 또 나누어야겠지.

/홍성옥 2008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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