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별미사를 하면서

내 안에 그렇게 큰 눈물의 바다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소리없이 흘러내린 눈물, 콧물은 고드름처럼 흘러내려 모은 두 손 위로 자꾸 떨어졌습니다. 16일 토요일 4시 초등부 미사 때부터 시작된 송별미사는 떠나는 이 보내는 이, 모두에게 가슴 저미는 연민의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장미꽃 한 송이씩 들고 나오는 유치부와 초등부 아이들을 품에 안아줄 때까지 감정을 잘 조절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울면 덩달아 울기에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송별식이 끝나고 다시 현관 앞에서 한 아이씩 품에 안아 주었습니다. 성지우는 품에 안겨 어깨를 들썩이더니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겨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간식도 먹지 않고 봉고차에 올라가 고개를 쳐박고 우는 아이. 저 또한 유리창의 빗물처럼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말았습니다.

7시 30분 중고미사, 강론을 시작하면서부터 뜨거운 이슬이 두 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전부터 오래 건강하라는 기원을 담아 종이로 접은 거북이를 담은 유리병과 화분, 사진과 짤막한 편지로 장식한 '신부님 사랑해요!' 피켓을 선물했습니다. 울먹이는 학생회장의 송별사는 여러 차례 끊어지고 이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함께 손잡고 부른 이별노래에 콧물과 눈물이 고드름처럼 흘러내렸습니다.

17일 주일 10시에 팔복성당에서 드린 마지막 미사. 70대 이상 할머니들이 비닐하우스 식당에서 회합을 하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 할머니들과 손바닥을 마주칩니다.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들, 지금부터 눈물을 흘리면 마지막 미사를 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아 아랫배에 힘을 주고 참았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떨리는 목소리에서 금방이라도 헉헉 울음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무를 자르듯 자꾸 감정을 잘라냈습니다. "4년의 세월은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행복이었습니다. 4년 동안 참으로 행복햇습니다. 그 행복은 세상이 주는 행복이 아니라 복음, 가난한 성당이 주는 행복이었습니다. 그 행복의 주인공은 여러분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좋은 일을 계획했더라도 여러분이 따라주지 않으면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간 행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이서 멀리서 와주신 모든 분들 또한 여러 도움과 기도로 함께 하신 분들이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떠나듯이 여러분도 좋은 추억만 간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4년 동안 저희 공동체에 많은 사랑과 축복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미사를 봉헌하도록 하겠습니다."

강론시간 드디어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자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엉엉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요. 원고를 보고 읽어내려간 강론은 제의에 눈물과 콧물을 자꾸 떨어뜨리게 했습니다. 흘러내린 짭짤한 콧물은 자꾸 입으로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콧물이 5Cm 정도로 매달려 있었지만 닦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을 닦으면 신자들이 더 슬프게 울것 같아서요.

강론 끝에 타인의 계절을 개사한 곳을 불렀습니다. 콧날이 시큰해지며 한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비디오 촬영을 해주신 형제가 송별미사를 마치고 "신부님 왜 그렇게 많이 우세요. 많은 신부님들 송별미사를 봤지만 신부님처럼 눈물을 많이 흘린 신부님 처음입니다."라는 소감을 들어야 했으니까요.


영원한 사랑
여러분이 보여주신 사랑을 어떻게 잊을 수 있나요
세상을 향한 우리 사랑이 너무도 깊은 까닭에
우리 사랑 하늘 끝까지 영원하니까
오늘이 가고 먼 훗날에 영원합니다
사랑이 깊어 가면 갈수록 우리들 영혼은 즐겁고
우리의 우정 우리의 사랑은 영원이 되어 흐르네

송별식에서 중고학생회를 대표해서 김소담 학생이 송별사를 읽었습니다. '난 왜 눈물이 없을까?'라고 자책하던 형제님도 송별사 내내 울고 말았답니다.

"풀이 무성한 가운데 작은 조립식 건물에서 첫 미사를 드린지가 엇그제 같은데 눈 깜짝할 사이에...,
팔복성당이 생겼을 때 저는 할머니와 많이 싸웠어요. 절대 팔복성당 다니지 않겠다고...,
솔직히 인터넷에 검색해서 봤던 신부님의 사진과 달리 흰머리가 너무 많아 실망했어요. 신부님과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아! 신부님은 이팔청춘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주일미사 반주할 때는 정말 하기 싫을 때도 많았고 그만 때려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신부님의 잘 했어, 수고했어 한 마디에 큰 힘을 얻었어요. 보는 사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신부님의 웃음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그 아쉬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요. 작년에 학생회 임원들과 선생님과 많은 트러블이 있었는데도 화 한번 내지 않으시고 따뜻하게 대해 주셨던 신부님 너무 감사해요. 'We are the one & alwayz No 1' 우리는 하나 그리고 항상 최고 넘버원이라는 말인데 신부님과 저 그리고 팔복 모든 신자들이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하나, 넘버원일 것입니다. 신부님 어딜 가셔도 지금처럼 기분 좋은 웃음 잃지 마시고 신부님과 함께 아름다웠던 팔복성당도 잊지 마시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신부님! 이제 다시 볼 때까지 저희 보고 싶다고 울지 마시고 정말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시작된 회장님의 송별사는 눈물콧물 보따리를 풀게 했습니다. 그동안의 추억들을 회상하게 했으니까요.

"2004년 8월 25일 발령 소식을 듣고 성당을 찾았습니다. 호랑이가 새끼를 쳐서 나가도 모를 잡초 밭 사이에 조립식 노동자의 집이 있었고, 쓰레기는 폐가의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첫 미사를 봉헌하기까지 저희 공동체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쁜 봉사의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신부님을 선두로 우리 공동체는 할 수 있다, 하고야 만다, 해야만 한다, 진복팔단의 참된 행복이 가득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며 나누는 공동체, 기도하는 공동체, 선교하는 공동체라는 사목방침 아래 기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신부님의 '사랑합니다'의 사랑나누기 강복기도는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습니다. 노동자의 집을 쓸고 닦아 광을 내고 칸막이를 성당 제의방으로 개조하고 뒤쪽 출입문 주위를 막아 고백소로 감실, 제구, 제대, 독서대, 해설대, 종, 음향시설, 의자 등 미사전례에 필요한 물품을 빌리고 얻어서 성당을 꾸미셨습니다. 그래서 팔복성당은 모두가 중고품 성당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잡초밭을 일궈 공동체 협동농장으로 아름다운 본당, 행복이 가득한 본당으로 가꾸는 기쁨과 희망, 눈물과 은총이 가득한 본당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일은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일을 만드셨습니다. 바로 전신자 오병이어 정신으로 점심나누기와 전신자 레지오 단원화로 모든 신자가 기도생활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최종수 2008-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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