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수도승 스님, 서양의 수도승 신부가 신의 영토인 산에 올랐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올렸던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이다. 오늘은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길을 나선다. 하늘에 제를 올렸던 지리산 노고단에서 오체투지의 길을 시작한다. 티벳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웃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말이다.

노고단의 하늘은 영혼만큼이나 맑았다. 바람도 시원하고 구름도 백지처럼 깨끗했다. 전국각지에서 두 사제와 스님의 길을 축복해 주기 위해, 아니 고난의 길에 마음으로 함께 하기 위해 모였다.

두 수도자는 지리산 노고단을 기점으로 사방에 절을 하는 것으로 오체투지 순례길을 시작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시작해 계룡산까지 총 200㎞를 2개월 동안 고행하며 기도한다. 오체투지 기원제를 올릴 제단 앞에서 김지하 선생을 만났다.

“오체투지는 사회는 물론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도 유례가 없었던 수행의 길이다. 생명과 평화, 사랑의 촛불로 기어서 가는 길이다. 새로운 세상을 여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산은 신의 자리이다. 노고단에서 동서양이 만나서 오체투지의 길을 간다. 신비로운 길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생명과 평화와 사랑의 길이 될 것이다.”


노고단에는 취재진 30여명과 30여명의 여러 종단의 성직자 수도자들과 15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순례를 했던 사람들, 문정현 신부와 박남준·이원규 시인, 이현주 목사와 이부영 전 의원도 함께 모였다. 저마다의 가슴에 촛불을 켜고 모인 사람들, 광장의 촛불이 산으로 오른 것이다.

춤꿈 허경미씨의 맞이춤으로 시작된 오체투지 순례 출발 행사는 김지하 시인이 작성한 '고천문' 낭독, 이현주 목사와 김성근 원불교 교무의 연대사, 이원규 시인의 시낭송, 문규현 신부의 기도문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김지하 시인은 "광장의 촛불이 이제 산에 오릅니다, 한반도의 어머니 산들이여, 부디 우리의 흰 그늘을 받아주시옵소서"라는 우주적인 기원을 담은 장문의 고천문을 통해 온전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향한 간절한 염원을 올렸다.

이현주 목사는 연대사를 통해 "대한민국 그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성한 곳이 없다. 나라를 망치기로 작정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나라를 망쳐가고 있다. 한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새로운 나라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두 분이 생명의 땅, 어머니의 땅에 온 몸을 던질 것이다. 이로써 새로운 정신, 새로운 희망을 잉태할 것이다. 이는 고난의 길이기도 하다. 두 분의 여정이 건강한 나라를 잉태하고 출산할 수 있도록 함께 할 것이다."라고 격려했다.


생명의 강을 함께 순례했던 이 목사는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을 번갈아가면서 꼭 껴안아 주었다. 수경 스님은 이 목사와 포옹을 하면서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하늘도 울었던 것일까.

김성근 원불교 교무는 "결국 길은 새롭게 소통을 여는 역사의 시작인만큼, 몸을 낮춰서 길을 떠나는 고행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 길은 또한 우리 삶에서 내 앞에 더 작은 것을 둘 수 있는 비움과 나눔의 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원규 시인은 “지리산 자벨레의 처절한 참회의 자세로 사람의 길을 묻고 또 물으며 머나먼 길을 나서고 있다”고 마고할미에게 고했다.

문규현 신부는 출발에 앞서 “천심이 민심이고 민심이 천심인줄 알게 하소서. 하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며, 민의 앞에 겸손하고 공경하게 하소서. 인간과 자연이, 숲과 꽃이, 바위와 돌이 하나인줄 알게 하소서. 이웃과 나 또한 한 뿌리요 한 몸임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너 없이 나 없고, 타 존재가 내 존재의 지주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올렸다.

죽비로 오체투지를 인도하게 될 지관스님은 “참담하다. 60이 넘은 수도자들이 오체투지를 할 정도의 삼류 정치와 돈의 우상에 사로잡힌 사회현실이 안타깝다. 이 수행의 길이 상생과 평화의 길이 되길 간절히 기도하며 걷겠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고백했다.

오체투지 기원을 올린 제단을 탑돌이 하듯이 둘러 있던 50여개의 토기 기원상들. 두 신부와 스님의 뒤를 이어 참석자들이 노고단 돌탑 위에 토기 기원상을 바쳤다. 출발행사를 마친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은 오후 3시 10분 오체투지를 시작했다.

길 위의 두 수도자가 오체투지의 길에서 첫 번째로 땅에 엎드렸다. 뒤 따르던 사람들의 눈에서 맑은 이슬이 고이기 시작하며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삼보일배 후유증으로 무릎 관절수술을 한 스님과 회갑을 훌쩍 넘긴 노구의 사제와 병들어 신음하는 세상을 향한 연민의 눈물이었다. 오체투지는 그렇게 눈물의 기도로 시작되었다.

30여명이 뒤 따르며 시작한 오체투지를 시작한지 약 1시간의 시간의 흘렸다. 이웃과 자연과 세상을 향해 내려가는, 돌과 자갈과 흙길, 그리고 시멘트 포장길을 온 몸으로 기어서 가는 길이었다. 2-300미터를 오체투지 하고 5분 정도의 휴식을 취했다. 땅에 엎드릴 때마다 피어나는 끙끙 앓는 소리가 가슴에 못으로 박혀왔다. 박힌 못에서 피가 흘러내리듯 흐느끼는 눈물의 소리도 함께 따라갔다.


한 시간이 흘렀지만 노고단에서 대피소까지의 오늘 일정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했다. 예상했던 길이지만 오체투지의 길이 얼마나 힘든 여정이 될 것인지, 두 수행자는 온 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수경 스님은 쉬는 시간에 "삼보일배 보다 몇 배나 힘들어, 어려워 어려워"라며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을 자백했다. 생명의 강을 함께 순례했던 이원규 시인이 "스님 포기하려면 일찍 하세요"라고 농담을 건네자 수경 스님은 "포기는 무슨 이 사람아" 라고 대답하자 화들짝 웃음꽃이 피어났다.

전주에서 온 가톨릭 신자 이춘성(41)씨는 부인과 현장학습을 시키기 위해 자녀 3명을 이끌고 노고단에 왔다. 그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문규현 신부의 어깨와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 이마에서 미소가 피어났다. “신부님 사랑해요” “너희들이 있으니 힘이 난다. 고맙다”는 노사제와 아이의 대화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의 오체투지 첫째날 일정은 오후 5시 노고단 대피소에 이르렀다. 길 위의 두 수도자를 50 여명의 참가자들이 원을 만들어 둘러섰다. 2분 명상을 하고 서로의 맞절로 일정을 마무리 했다.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수행자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돌아섰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성삼재까지 걸어 내려오는 길에서 차마고도(茶馬高度)가 떠올랐다. 차와 말이 오고갔던 길, 하늘과 땅이 만나는 길, 영혼과 영원이 하나 되는 길, 이웃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티벳인들이 떠나는 오체투지의 순례의 길, 맑은 영혼의 길이 떠올랐던 것이다.



길 위의 두 수도자만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의 오체투지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은 아닐 게다. 스스로 영혼이 있다고 자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걸어가야 하는 고행의 길, 내 안에 가득한 탐욕 숲을 가로지르는 오체투지로 순례해야 한다. 그 순례의 길은 우리 사회가 몰입된 큰 집과 큰 자동차의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길이 아니라 이웃과 자연과 더불어 잘 사는 행복의 길일 것이다.

/최종수 2008-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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