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스님(불교환경연대)과 문규현·전종훈 신부(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가 “이명박 정부의 폭압정치에 맞서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겠다”며 오체투지 전국 순례에 나선다. 오체투지 순례단은 오는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해 내년 상반기 북한의 묘향산에 도착하는 ‘사람과 생명,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에 나선다고 29일 밝혔다.

오체투지(五體投地)란 불교에서 절하는 방법 중 하나로 몸의 다섯 부분(이마, 왼쪽 팔꿈치, 오른쪽 팔꿈치, 왼쪽 무릎, 오른쪽 무릎)을 땅에 닿게 하는 인사법이다. 일반적인 절이 양손을 먼저 땅에 짚은 후 절하는 것과 달리, 오체투지는 먼저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한다. 그만큼 힘든 인사법이다.순례단은 9월 4일 오후 2시 지리산 노고단에서 오체투지 순례 출발행사를 열고 이날부터 시작해 지리산, 계룡산, 임진각을 거쳐 내년 상반기 북한의 묘향산까지 순례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 순례에 참가하는 문규현 신부가 <지금여기>에 오체투지를 떠나며 글을 보내왔다. 그는 이 글을 보내는 메일에서 “가슴아리 긴세월 뒤로하고 이 한마디 남기고 먼길 떠납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온누리에 기도 청하고, 우리 평화동 신자들에게 함께 기도 청하고 떠납니다.”하고 말하였다.

-편집자


다시 순례 길을 떠납니다. 다리 불편한 스님과 늙은 사제입니다. 이 둘이 오체투지, 온 몸을 땅에 내리고 보듬으며 갑니다. 가늠도 안 되게 고되고 하염없이 느린 길을 기꺼이 갑니다. 허나 우리의 고행이 도리어 생명의 길, 희망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이 순례가 위로의 길, 용기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이 여정이 민족의 길, 화해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과 삶, 공동체와 사회에 존엄과 존중심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사랑과 자비, 공존과 평화, 정의를 행하고 이루려는 선한 마음들이 더욱 힘내길 기도합니다. 낙심과 냉소, 쉽게 얻고 누리려는 마음은 내려놓고, 애쓰고 헌신하며 서로 돌보고 격려하는 가운데 기쁨과 충만함을 누리길 기도합니다. 양심과 인간애, 진실과 진리에 목말라하는 자세를 굳건히 지켜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체투지, 이 여정은 특히 손에 가슴에 생활 속에 촛불을 피어올린 청소년들과 수많은 국민들에게 드리는 사랑과 존경의 표현입니다. 수난과 상처, 모욕과 폭력, 수배와 구속에도 굴하지 않고 이 순간에도 묵묵히 진리의 길을 가는 그 모든 고결한 정신에 드리는 감사의 표현입니다. 촛불이 밝히는 것은 생명의 귀함과 꿈이 있는 미래입니다. 자존과 품위이고, 신뢰와 진정성입니다. 주권과 민주주의입니다.

그 아름다운 불빛들에게 무엇으로 응답해야 할지, 더불어 무엇을 해야 할지 수없이 고뇌하고 기도했습니다. 하여 이제 아주 단순하고 응집된 표현으로 이 길을 갑니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을 향해 절합니다. 여러분의 따뜻하고 진정한 마음들, 그 착하고 여린 마음들을 품고 기억하며 이 길을 갑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민주주의를 지키고 생명력 있고 희망이 있는 사회를 위해 끝까지 가겠노라는 맹세의 길을 갑니다. ‘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이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제 용기의 원천입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이념과 정치행태에 오체투지로 항의하고 저항합니다. 저들이 숭배하는 경쟁과 실용으로 보자면 극단적으로 바보스럽고 누추합니다. 그러나 오로지 돈과 일등놀이에 몰두하는 사회에는 결코 희망이 없음을, 성공지상주의와 이기심이 뒤덮은 사회는 죽은 공동체임을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몸짓으로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천지간에 불통이고 사방이 ‘명박산성’입니다. 정권 스스로 무법탈법이요 공권력을 앞세우지 않고선 그 무슨 일도 행하질 못하는 지경입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20년 전 30년 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더 추해지고 초라해질 자멸의 길을 그만가길 기도합니다. 정녕 종교인이라면 진정한 참회와 속죄의 길을 가야할 것입니다. 소수 기득권층만을 위한 정치, 신독재와 신공안정국, 신냉전주의, 신종교전쟁으로 이룰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경기부양을 앞세워 대운하를 재론하고 부동산투기판을 재연합니다. 핵발전소 증설을 ‘저탄소 녹색성장’이라 위장합니다. 21세기를 살며 22세기를 준비하는 국민을 우습게 여기며, 고작 20세기에 잡아두려는 천박한 발상입니다. 나라의 조화와 균형, 지속가능한 발전을 파괴하는 행태에 반드시 냉정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촛불은 조용히 불씨요 홀씨가 되어 번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들불이 되고 횃불이 될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섭니다(草上之風草必偃 誰知風中草復立).

남과 북 사이조차 단절과 분단심리가 견고해지는 오늘의 현실이 가슴 아프고 우려스럽습니다. 현 정권은 아예 민족통일이나 평화 문제엔 관심 없는 듯합니다. ‘국지전 가능성’ 같은 용어조차 쉽게 입에 올리며 적대감과 긴장을 격화시킬 뿐입니다. 애절한 아우성은 남에도 있고 북에도 있습니다. 남과 북은 공존과 화해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서로 협력하고 함께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산맥과 강 길에는 단절이 없고 벽이 없습니다. 시간과 역사를 초월하여 온 민족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온 산하를 따라가며 남북 사이에 소통과 화해의 길이 열리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참된 변화와 희망의 바람은 우리 자신에게서 불어옵니다. 우리 현실을 짓누르고 힘들게 하는 것들은 우리 자신의 태만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왜곡된 형상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내면과 생활을 바꿔갈 때만이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경, 감사와 돌봄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서로에게 빛이 되고 거친 바람 막는 병풍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믿음과 희망을 절대 놓지 마십시오. 인내와 끈기로 영혼을 단련시키십시오. 각자의 자리와 모양새는 다르나 영혼을 나누고 마음으로 연대하며, 더불어 즐겁게 진리를 구하는 순례의 길을 함께 갑시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요한 8,32).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제 몸과 마음은 1976년 사제수품을 받던 그 순간으로 돌아갑니다. 바닥에 온몸을 엎드리곤 가장 겸손한 태도로, 모든 세속적 욕심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처럼 이웃과 세상을 섬기겠노라 다짐하던 그 때입니다. 이제 사제수품 32년을 훌쩍 넘어 황혼 길에 든 이 시간, 다시금 더 비우고 더 버리고 더 낮춥니다. 첫 마음에 저를 세웁니다.

2008년 9월 2일
천주교 전주교구 평화동 성당 문규현 신부 드림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