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 비정규직 노동자가 곧 하느님의 성사다

8월 26일 기륭전자 앞에서 처음으로 시국미사가 봉헌되었다. 그동안 기륭전자측에서는 여러 차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종교계가 나서 줄 것을 호소해 왔지만 대체로 종교계의 반응은 무심했다. 한 두 분의 천주교 사제와 스님과 목회자들이 모여 종교인기도회를 가진 적이 있었지만 참가자들은 대체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1000일 이상 호소해도 반응이 냉담한 세상에 대하여 김소연 분회장 등 기륭노동자들이 단식이라는 마지막 수단에 호소해서 자신의 입장을 세상에 알리려고 했을 것이다. 이들은 세상에 대해 분노하는 대신에 자신의 몸을 봉헌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가산디지털단지역(예전 가리봉 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가 충남슈퍼 앞에서 내리는 공단거리 한 모퉁이에 기륭전자가 있다. 농성장 위에는 세 갈래로 티베트에서나 볼 수 있는 색색가지 천들이 하늘에 매달려 나름대로 바람에 뒤집히며 제 처지를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이곳은 일상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엔 어려운 구석진 곳이다. 따라서 김정대 신부가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를 통해 “기륭전자 문제 해결과 이들 노동자들을 위하여 독자들에게 9일 동안 하루 한 끼를 단식하며 하루 5단씩 묵주기도를 드리고, 그 9일째 되는 날에 시국미사를 함께 올리자”고 제안하여 이루어진 미사였다.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이 김정대 신부와 미사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미사 중에 그 자리에 참석하여 마음을 모왔다.


이날 미사는 기륭전자 정문 앞에서 오후 8시 가까이에 시작되었다. 미사에 앞서 문화공연과 노동자들의 자유발언이 있었고, 뒤이어 1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를 포함한 200여 명의 노동자, 시민, 교인들이 모여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김정대 신부와 부산교구의 김인한 신부 등 8명의 사제들이 공동집전하여, 사뭇 이들 참석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듯하였다.

미사에 앞서 주례를 맡은 김정대 신부는 앞에 놓여진 작은 탁자로 마련한 제대를 가리키며 “보통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제단의 화려함에 비할 바 안 되지만 이렇게 노동현장에서 초라하지만 소박하게 미사를 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면서 농성장 콘테이너 위에 풍선을 불어 장식한 것을 보면서 “그런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김신부는 “바로 이렇게 초라한 제대 위에 기륭 노동자들의 절박함을 올려놓고 미사를 봉헌한다”고 입을 떼었다.


김정대 신부(예수회, 노동자쉼터 ‘삶이 보이는 창’ 대표)는 손가락에 밴드를 하고 나왔는데, 당일 아침에 음식을 준비하다 칼로 손을 베었다고 했다. 손가락처럼 작은 부분이라도 다치면 아프고, 우리의 삶은 그런 작은 아픔에 굴복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강론을 통해 김신부는 “우리사회가 우리 몸처럼 유기적이어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도 그 고통에 함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 사이에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른바 보수적인 사람들은 실제로 어떤 가치관이나 철학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천박한 사람들처럼 보인다”고 했다.

어느 모임에서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토론에 있었는데, 김신부는 여기서 교회의 어떤 응답이 결론으로 나오길 기대하였으나, 고통받는 우리 현실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초를 쳐서” 아무런 결론도 없는 시간이 되어 버렸다고 탄식하였다. 그들에게는 “우리 사회의 아픔이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모양”이라면서 사회와 교회의 지도층들에게 “그들의 신앙 내용이 무엇인지 의구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부정하거나 무시하고 있는데, “가난한 사람이 저기 있네.”하고 말하는 것과 “그들은 왜 가난한가?” 묻는 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김신부 생각에는 “정치적 판단보다 고통의 현실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정대 신부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감명을 준 스승으로 예수회 정일우 신부를 꼽으면서 그분이 “세상을 거꾸로 보라”고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사제가 교회를 평신자의 눈으로 보고, 기득권자가 세상을 가난한 자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우리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으로 들렸다. 신앙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으려면 가난한 이를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해 준 것이 내게 해준 것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우리가 가난한 이들에게 어떤 태도로 대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정대 신부는 “우리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이 곧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하면서, 이들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곧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게 해 주는 성사”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고 앞날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라는 말로 강론을 맺었다.


미사가 봉헌되는 동안, 한동안 병원을 실려갔다가 다시 농성장으로 돌아온 김소연 분회장이 링거를 꽂은 채 한쪽에 앉아 미사에 참석하였다.

/한상봉 글, 김용길 사진  200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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